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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독을 품고 빵끗 빛나는 별. 거성 박명수 : 2부. 한없이 이기적인 우리들의 초상 (2)



제자리에 서 있던 박명수 곁으로 흘러간 시대 (2) – 패배에 대해 수긍하기 시작한 시대

한편, 방송 밖에서도 세상은 빠르게 변했다. ‘갱제’를 최우선 순위로 생각하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꾸준히 ‘세계화’를 강조했다. ‘세계화’는 선진을 의미했고, 선진국으로 들어가는 당연한 순서인 것처럼 여겨졌다. 김영삼의 임기 말, 한국은 OECD 국가에 가입하는 데 성공했지만 바로 다음해 IMF의 직격탄을 맞았다. 그리고 정권교체.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영삼에 비하면 대중문화에 대해선 선구안이 있었지만 세계화의 기조는 변하지 않았다. 한국은 빠른 속도로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몸을 맡겼다. 정부 차원의 IT 산업의 육성과 카드 산업의 호조, ‘BUY KOREA’의 구호 아래 증권시장의 자금 유입과 같은 밝은 면만 보이는 것 같았지만, 양심수 출신의 대통령 치하에서 IMF의 권고에 따른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바람은 더욱 거세졌다.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엔 경쟁력이 없으면 도태된다는 것을 멀쩡하던 기업들이 하루아침에 픽픽 쓰러지는 것을 보며 체득했다. 세상에 밝은 일만 있진 않다는 걸, 어쩌면 잠시 반짝했던 90년대 초의 단꿈은 그냥 꿈일지도 모른다는 불온한 기운이 스멀스멀 사회를 감쌌다. IMF 조기 졸업에도 불구하고 복직되지 못한 사람들이 서울역으로 몰려들었고, 목숨을 스스로 끊어내는 모진 사람들의 행렬도 계속 되었다. 그래도 월드컵 개최와 남북정상회담은 새 시대의 희망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고졸의 인권변호사, 고집불통 노무현이 온갖 흑색선전과 선거 직전의 후보 단일화 결렬을 이겨내고 극적으로 당선된 것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인권변호사’ 출신 노무현 대통령의 시대는 유례없는 소용돌이다. 3김이란 단어가 함축하고 있던 보스정치의 시대가 청산되면서 사회를 감싸고 있던 권위 또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위에서부터의 권위청산’보다, 더 이상 상명하복의 서열과 권위가 자신의 생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당대 시민들의 ‘아래서부터의 권위청산’이 더 강력했다. 이제 나이가 많고 경력이 많은 것은 먼저 정리해고될 대상이라는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권위를 쫓아 줄을 서는 일들이 모두 무의미해졌다. 권위가 사라진 자리에 그 어떤 의사소통의 규칙도 대안으로 제시하지 못한 시대는 오로지 실리를 향해서만 달리기 시작했다. 권위의 빈자리에 토론과 국민의 활발한 정치참여라는 발판을 대고 새 시대를 열어보겠다고 자신 있게 출범한 노무현 행정부는 추진하던 개혁에서 연신 패배했다. 국가보안법도, 정치개혁도 실패했다. 심지어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사태까지 겪으며 꺼내든 대연정마저도 실패한 후, 노무현 행정부는 북유럽식 복지국가에 대한 비전과 함께 ‘토론과 참여’라는 모토까지 같이 패배했음을 사실상 인정하고 급속도로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몸을 맡겼다. 경제지표는 유례없는 성장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실제 내수 경제를 몸으로 체감하는 일반 서민들은 더욱 각박해진 삶을 살고 있다. 양극화가 가속화되면서 국가단위 경제와는 상관없이 일반 서민 대중의 삶이 더 처참해진 것이다.

경쟁에서 유리하다면 초등학생 아이의 혀를 째서라도 영어 발음을 잘하게 만들어주는 게 부모의 사랑인 시대. 서서히 사람들은 희망이라는 것에 대해서 심각한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관심마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들이 노부모를 잔인하게 살인’, ‘독거노인 죽은 지 두 달 만에 악취 때문에 발견’ 따위의 뉴스는 이제 놀라운 축에 끼지도 못했다. ‘죽은 지 삼일 된 시체가 찜질방 수면실에서 뒤늦게 발견되었다.’라는 뉴스 정도는 되어야 대중들의 기억 속에 잠시 각인될 뿐. 이제 아무리 예능프로그램에서 ‘세상은 밝고, 우리의 이웃들은 선량하며, 우리는 힘들더라도 꿈과 희망을 품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라고 떠들어대 봐야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날, 한참 인기의 상승 곡선을 그리던 유재석은 파탄의 지경에 빠진 MBC 토요일 저녁 버라이어티의 구원투수로 스카우트된다. 그 탄생은 심히 창대했으나 끝은 미비하기 짝이 없었던 비운의 2시간짜리 버라이어티 쇼, <토요일> MC 군단의 일원으로 말이다.





유재석은 자신이 <외인구단>에서 보여준 바 있었던 ‘유재석식(式) 오합지졸물(物)’의 연장선상인 코너 <무(모)한 도전>을 맡는다. 말 그대로 황소와 줄다리기를 한다거나, 순간 스퍼트로 전철과 달리기 시합을 하는 따위의 무모하기 짝이 없는 도전들을 하는 것이 코너의 포맷이었고, 처음엔 어느 정도 인기를 얻는 듯했던 이 프로그램은 연이은 도전 실패와 산만하기 짝이 없는 구성 때문, 그리고 <토요일>이라는 프로그램 자체의 실패로 말미암아 4%라는 민망한 시청률로까지 전락했다. 쫄쫄이를 입은 30대의 남성들이 매주 전철 / 유람선 / 동전분류기 / 자동세차기 / 배수구, 수도꼭지 따위와 싸워서 패배하곤 하는 모습을 대중들이 즐겁게 보는 건 가능하지만, ‘매주’ 패배하는 것을 ‘열광적으로’ 즐겁게 봐서 실질적으로 시청률이 상승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무(모)한 도전>은 <토요일>이 <강력추천 토요일>로 바뀌면서 덩달아 <무(리)한 도전>이 되었다. 그리고 아마 보통의 프로그램이었다면, 그렇게 자연소멸했을 것이다. (실제로 <무한도전>이 오래가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예능국에선 이미 대체할 프로그램에 대한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한다. 매주 패배하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더 이상 이 사내들이 성공할 거라고 예상하면서 쇼를 보지 않았다. 남아있던 4%의 매니아들은 이 쇼에서 새로운 쾌락 중추를 찾아냈다. 어차피 패배할 건데 뭐. 새로 주어지는 도전과제의 황당함과 이 사내들의 한심한 작태를 즐겨보자 하는 심산으로 TV 앞에 앉은 사람들에게 제작진들은 희망을 걸었다. 점점 훈련은 도전과 아무 상관없이 허무한 웃음을 유발하는 데만 치중하며 무의미의 영역을 향해서 달려갔다. 턱없이 말도 안 되는 도전과제 앞에서 패배는 더 이상 쓰디쓴 게 아니었다. 패배는 당연히 찾아올 예상된 결과였다. 그리고 차츰 이 막장 루저들의 리그라는 개념은 강력해져서 <무(리)한 도전 시즌 2 – 거꾸로 말해요 아하>에 이르러선 노골적으로 ‘저희는 좀 많이 모자랍니다. 육체도, 정신도.’가 쇼의 모토가 되었다. 더 이상 예의 차리면서 세상의 밝음과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도 않았고, 젊고 아름다움의 찬란함과 선량함의 가치에 대해서 강조하지도 않았다. 지켜야 할 규율을 상실한 세대에게 예의범절 따지며 선량한 가치를 설명하는 건 무의미한 일이었다. 이미 슬슬 <야심만만>의 감동 도가니 눈물 고백에 진력을 내는 사람들이 등장하던 때였다.





그리고 그들은 어느 순간 ‘패배하는 게 뭐 어때’ 하면서 패배를 수긍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무한 경쟁의 시대, 그 경쟁의 장에서 낙오된 패배자들이 스스로를 자조하던 그때, 시청률 막장, 멤버 구성 막장, 전적 막장의 기묘한 루저들의 리그가 ‘패배하는 건 당연하다.’라면서 손을 내민 것이다. 그리고 그 패배를 향해서 몸부림치는 루저들의 행렬에 시청자들은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기 시작했다. 서로 아옹다옹 잡아먹을 듯 싸워도 결국 의지할 곳이라곤 서로뿐인 이 ‘참 못난’ 사람들은 차츰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게 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비방하는데 거리낌이 없고, 오로지 살아남는 것에만 중점을 두며, 누구 하나 낫다고 하기엔 다들 눈부시게 막장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승리를 바라는 것도 아닌 것만 같은, 자기 파괴적이고 퇴행적이기까지 한 루저들의 리그는 그 뒤로 기적적으로 시청률 반등에 성공하고, 나아가 독립편성되어 매 순간 카멜레온처럼 포맷을 변신하면서도 동 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고야 마는 MBC 예능국의 절대강자, 시청자들의 금지옥엽, 주말 버라이어티계의 일인자가 된다. <무한도전>의 탄생이다. 그리고 바로 그 루저들의 리그 한가운데, 패배자 인생이라면 둘째도 서러울 자기 파괴적인 사내, 인생이 <무한도전> 그 자체인 사내 박명수가 있었다. 그렇게 정말이지 기적적으로, 긍정적인 가치만을 부르짖던 시대가 패배를 수긍하는 순간 박명수와 조우한 것이다.



MC 꿈나무 박명수의 울렁증 발원지. 최고의 파트너 유재석

여기서 박명수의 오늘을 가능케 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파트너, 유재석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필자는 CQ에서 연재하던 <무한도전> 리뷰 서문에서 유재석에 대해 ‘늘 수모를 당하는 피해자’ 컨셉이라고 말한 바 있다. 유재석이 진가를 발휘하는 순간은 자신보다 강한 캐릭터 옆에서 상대방의 구박과 위협 속에서 위태위태하게 중심을 잡고 자신에게 날아오는 수많은 공격에 휘청거리면서도 어떻게든 난장판을 정리하곤 유려하게 마무리를 짓는 그 과정 자체에 있다. 그는 난장판을 조직하고, 그 난장판에 휩쓸려 한바탕 정신없이 놀다가 어느 순간 정색하고 그 난장판을 정리하는 데 탁월한 소질을 보인다. 그런 식으로 유재석은 쟁쟁한 선배 이경실, 이성미가 진행하던 <진실게임>을 자기 친구들과 벌이는 수다와 참가자들의 장기자랑 쇼로 유재석화했고, 캐릭터 강하기로는 첫 손에 꼽히는 강호동과의 황금 호흡을 과시하며 와 <엑스맨>을 성공적으로 런칭했다. 유약하고 덤벙거려서 타인의 공격에 쉽게 휘청거리지만, 동시에 재빠르고 날쌔게 도망치고 반격하는 유재석은 <톰과 제리>의 제리와 같은 캐릭터다. 이런 캐릭터는 옆에 자리한 톰이 얼마나 ‘톰’답게 티격태격을 할 수 있는가에 따라서 실력발휘를 하는 정도가 달라진다.





비록 제리 캐릭터이긴 하지만, 성공적으로 유재석과의 티격태격 구도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 <해피투게더-학교 가는 길>의 김제동이나, 적재적소에서 유재석의 급소를 공격하면서 궁지로 몰아넣는 <진실게임>의 송은이, 김한석도 유재석의 훌륭한 파트너다. 하지만 상대가 좀 더 강하게 나올수록, 요컨대 <놀러와>의 김원희처럼 좀 더 짓궂게 유재석을 몰아붙일수록 파트너쉽은 더욱 강력해진다. 상대가 강호동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강호동과 함께라면 굳이 방송이 아니더라도 일상 자체가 만담이고 코메디인 경지에 이른다. (궁금하신 분들은 MBC 홈페이지 <정선희의 정오의 희망곡> BEST 다시 듣기 코너에서 ‘자양강장 토크쇼’를 다시 듣기 해보시라. 라디오 다시 듣기는 회원가입만 하시면 공짜다.) 상대방이 강하게 몰아붙이면 몰아붙일수록 유재석이 곤란함을 모면하기 위해 벌이는 쇼는 더욱 화려해지고, 유재석이 잽싸게 반격했을 때 터져 나오는 웃음의 강도 역시 더 강력해진다. 유재석이 사랑하는 야구로 비유하자면, 유재석은 상대방의 장점과 강함을 잘 받아주는 포수인 동시에 상대방의 약점을 적시에 공략하는 기습번트의 달인이고, 난장판 전체를 펼치고 정리하는 과정을 총괄한다는 점에서 팀의 감독인 셈이다. 그리고 박명수가 대중들의 시야의 한가운데 서게 된 그 시절, 박명수의 옆에서 박명수의 파괴적이고 저돌적인 개그를 받아주면서, 박명수의 단점을 가장 효과적으로 웃음의 요소로 승화시켜준 파트너가 다름 아닌 유재석이다. 강호동만큼이나 유재석과의 합이 맞아떨어지는 가장 이상적인 파트너. 가장 파괴적인 조합인 것이다.

MBC <무(모)한 도전>이나, <놀러와>만큼이나 SBS <엑스맨>이나 <반전드라마>로 쌓아둔 두 사람의 호흡은 이미 어느 정도는 완성 단계였다. 박명수는 예전 <강호동의 천생연분>에서 윤정수나 신정환이 도맡아 하던 괴짜 폭탄 멤버의 역할을 <엑스맨>에서 톡톡히 해내며 적당한 시점에 적당한 난장판을 펼쳐주었고, 육체의 부실함과 암울한 외모 등에서 MC 유재석과 시의적절하게 비교할 수 있는 좋은 거울 상이 되어 주었다. (같은 프로그램 안에서 박명수와 강호동 간에 아무런 화학반응이 없었던 것과 비교해보라. 강호동이 욱하고 일어서면 그대로 깨갱하며 움츠러드는 박명수, 박명수의 막말에 보는 사람이 무안할 정도로 일그러지던 강호동 간의 그 거대한 빈 칸.) 정준하의 뒤를 이어 투입된 <반전드라마>에서도 박명수는 종종 출연하던 지상렬과 함께 외모와 괴팍한 성미를 무기 삼아 극에 긴장감을 조절하는 캐릭터로 훌륭하게 활용되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유재석과의 호흡을 완성단계로 이끈 것은 역시 <놀러와>와 <무한도전>이었다. 박명수가 재미있는 이야기랍시고 썰렁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를 던지며 ‘이게 끝이에요. 이게 다라니깐요?’라며 좌중을 얼어 붙이면 바로 다음 타이밍을 적절하게 치고 들어오며 ‘네, 좋은 소식 감사합니다.’라고 박명수의 이야기를 단신뉴스쯤으로 처분해버리는 유재석의 상황정리. 그리고 뒤이어서 격분한 박명수의 난장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두 사람 간의 기본적인 티격태격 구도다. 박명수가 상식의 저항선을 끝없이 돌파하려 하며 쇼의 흐름에 자극을 주면, 유재석이 이를 가라앉히기 위해 박명수에게 반격을 가하고 상황을 수습하고, 그러면 다시 박명수가 난장을 피우고 다른 멤버들이 가세해서 박명수를 공격하는 식의 호흡은 <무한도전>에도 이어졌다. (이런 호흡의 결정판을 볼 수 있는 건 <놀러와> 100회 특집, 영화 <비열한 거리> 출연진과 이경규, 지상렬 등이 출연했던 방영분이다. 기회가 닿는다면 확인해봐도 좋을 것이다.)





두 사람의 대결구도는 박명수가 인기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더욱 유효해졌다. 박명수는 끊임없이 과거엔 자신이 유재석보다 인기가 높았음을 상기시키고, 유재석에게 ‘너 한때는 나 닮았다는 이야기 들었잖아. 나처럼 뜨고 싶어했잖아.’라고 참 굴욕스러워 보이는 질문을 던져서 유재석을 공격한다. 또한 자신의 현재 인기를 자랑하며 ‘너도 얼마 못 간다. 6개월 남았다.’라고 유재석에게 시한부 선언을 하는, 1인자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2% 부족한 2인자 캐릭터로 확장시키는 데 성공했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끊임없이 자극을 받고 변화하며 프로그램이 뻗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확장시킨 것이다. 2인자 캐릭터는 더욱 외연을 확장해서 막내 하하가 무한재석교 신자에서 벗어나 1인자 자리를 차지하려는 찬탈 극을 벌일 때마다 달려가서 굽실거리며 2인자 자리를 보장받으려 하는 식의 기회주의자 캐릭터로 뻗어나갔다. 박명수의 캐릭터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툭 하면 밤무대 행사 진행했던 가락이 흘러나오는, 울렁증에 시달리는 만년 MC 꿈나무 캐릭터까지 확장됐다. ‘국민 MC’로 인정받는 유재석 옆에서 자신도 잘할 수 있다고 우기면서 호시탐탐 단독 MC의 꿈을 키우는 캐릭터는 실제로 <무한도전>의 중심적인 역할을 유재석과 분담해서 맡고 있는 박명수임에도 터무니없어 보였다. 그 터무니없음은 박명수식 개그의 핵심인 ‘상식의 저항선’에 도전하는 모습으로 비춰지며 시청자들을 설득한다. 유재석의 말에 주눅이 들던 과거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유효했던 두 사람의 티격태격은, 급기야 박명수가 유재석의 목젖에 당수를 날려 말문을 막아버리곤 MC 멘트를 차지하려 달려드는 지경에 이르자 육탄전을 동반한 전신(全身)만담의 경지에 도달했다. 이 모든 캐릭터의 확장은 옆에서 그 모든 돌발행위를 받아 주는 유재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심지어 MC 꿈나무 캐릭터는 단순 캐릭터로만 끝나지 않는다. 실제의 세계와 조응하면서 박명수의 진행에 울렁증을 더해준다. 아니, 박명수의 울렁증과 서툰 진행까지도 대중들의 환호 속에 소비될 수 있게 한다. 첫 단독 MC 프로그램이었던 tvN의 <단무지>가 박명수로 MC를 교체한 지 3개월 만에 폐지된 것조차 ‘MC 꿈나무’ 박명수 캐릭터를 더욱 강력하게 해주는 ‘명성’일 뿐, 그것을 두고 박명수의 무능을 탓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심지어는 교통방송에서 청취율의 사각지대 2시 타임에, 이미 <노사연, 지상렬의 두 시 만세>와 <윤종신의 두 시의 데이트>가 굳건하게 자리 잡은 틈바구니를 뚫고 <박명수의 두 시가 좋아>를 정석대로 성실하게 진행해서 청취율을 높이는데 성공한 전례가 있음에도, 방송국을 옮겨 진행하고 있는 <박명수의 펀펀라디오>는 들으면 들을수록 예측 불허의 난장판이다. 진행을 못 하던 사람이 나아지는 경우는 봤어도, 그럭저럭 잘하던 사람의 진행이 난장판이 되는 건 또 무슨 경우란 말인가. 더 기가 막힌 건, 그걸 두고 걱정하는 사람은 많아도 그의 진행이 미숙한 것을 비난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거다. 그가 진행을 못 한다는 사실 자체가 웃음의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방송을 시작한 지 1년이 넘어가도록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툭하면 코너가 바뀌며 어떻게 존속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세인들의 걱정을 사는 <박명수의 펀펀라디오>. 심지어 2007년 6월 12일 방송분에선 아예 오프닝 멘트로 박명수의 진행이 불안불안하다는 사연이 소개된다.


“춘천에서 정OO 양이 이런 사연을 보내주셨습니다. ‘박거성 요즘 어디 아파요? 어제 오프닝 멘트, 목소리 너무 불안했어요. 거사모, 거성을 사랑하는 모임의 대표인 제가 급응원합니다. 거성님, 아프지 말아요!’ 자, 저기 저, 정OO양, 생각해주는 마음은 고마운데, 저는 오프닝만 불안한 게 아니죠. 방송하는 두 시간 내내 불안하고, 아주 불편해요. 그러니까, 좀 참고 들으시던가, 정 못 참겠으면은, 어디 딴 데 뭐 들어야지 뭐 어떻게 하겠어. 자, 다른 건 다 완벽한데, 이 리딩이 좀 불안한 박거성의 <펀펀라디오>. 제가 말 좀 더듬어도 꾹 참고 들어주실 분들과, 오늘도 불안불안한 방송. 어떻게, 함께 할래요?”
가뜩이나 대놓고 두 시간 내내 불안불안하다고 수긍하고 시작하는 그날 방송엔 하필이면 유재석이 나와서 진행중독증세를 뽐내며 박명수의 불안함을 자극했다. 출연하는 모든 프로그램마다 도대체 누가 진행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수다를 떨고 가는 유재석이지만, 똑같이 진행의 주도권을 주거니 받거니 해도 정선희가 유재석의 진행에 탄복하며 웃어넘기는 반면에 박명수는 바짝 긴장하고는 자신이 쇼의 호스트임을 윽박질러 강조한다. ‘너는 왜 여기까지 나와서 진행을 하려고 하느냐’며 거침없이 반말을 쏟아내는 박명수의 과민반응은 상대가 유재석이기에 설득력이 있고, 유재석이기에 용납이 되는 것이다.





유재석은 당대 최고의 예능 MC였던 자신의 위치를 십분 활용해서, 박명수의 캐릭터가 가장 성공적으로 소비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고, 그 캐릭터의 무한한 변주를 가능케 해주었으며 나아가 유재석없이 독자생존 할 수 있는 길까지 열어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박명수가 없었다면 유재석 혼자 오늘날의 <무한도전>을 일굴 수 없었을 것이다. 아직까지 출연자들이 서로에게 존댓말을 꼬박꼬박 사용하며 적당히 내외하던 <무한도전>의 초창기, 거침없이 폭언과 비난, 반말과 필살기를 날리며 세트장을 생존 경쟁의 정글로 만들었던 박명수가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무한도전>이 가능했겠는가. <무한도전>이 더 이상 석탄을 나르거나 욕탕에서 물을 퍼내지 않고 단정한 정장 차림을 하고 실내 세트에 얌전히 앉아 <아하>를 하던 시절, <무한도전>이 예능계의 3D 프로그램이라고 주장할 수 있던 유일한 근거는 박명수였다. 그는 침을 흘리고 콧물을 떨구며 지저분함의 극한까지 프로그램을 밀어붙였고, 피해 가기 어려운 날 선 공격을 감행하며 위험 수위의 한계에 도전했으며, 알아듣기 어려운 헛소리들을 주워섬기며 멤버들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은 물론 기본적인 진행마저 어렵게 했다. 물론 그의 이런 헛소리들이 치고 뻗어나간 삼천포행 곁가지들이 <무한도전>의 쓸데없이 오지랖 넓고 대책 없이 주책 맞은 특성을 확립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물론이다. 오늘날 우리가 유재석을 이야기할 때 자동적으로 <무한도전>을 떠올리는 것, 유재석의 가장 성공적인 커리어로 <무한도전>을 가능케 한 것은 사실 박명수의 공이 크다는 이야기다. 유재석이 없는 <무한도전>은 애초에 성립이 안 되겠지만, <무한도전>에 박명수가 없었다면 아마 그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무한도전>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유재석과 박명수는 서로의 황금기를 일궈주었고, 지금까지도 가장 성공적인 파트너로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다.



결(結) – 박명수論

벼멸구. 치킨 CEO. 악마의 아들. 아버지. 4집 가수. 악덕사장 박사장. MC 꿈나무. 내일모레 마흔. 아이 오브 살쾡이. 그리고 거성. 사람들은 이제 박명수를 거성이라 부른다. 한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부르는 단어인 ‘거성’은 어지간한 위치의 사람이 아니면 쉬이 붙을 수 있는 수식어가 아니다. 그리고 일견 당연한 일이겠지만, 박명수에게 붙은 ‘거성’이라는 꼬리표는 박명수 스스로 붙인 거라고 한다. 제정신 가진 사람이 자기에게 붙인 거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오만한 호칭이지만, 다른 사람이 아닌 박명수이기에 우리는 그를 기꺼이 거성이라 부른다. 처음엔 그저 치킨 사업을 그만 둔 후에도 ‘박명수=치킨’이라는 인식이 너무 강해서 ‘치킨명수’라는 별명을 떼어내기 위한 일환으로 고안해 냈다는 거성이라는 별명은 지금의 박명수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 중 하나가 되었다.

예능인의 캐릭터가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소비되기 위해선 대중들이 무엇을 보고 싶어하는지 읽어내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본디 연예인의 일이라는 것이 대중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대중의 욕망을 간지르는 것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기에 시대가 급격하게 흐르는 요즘과 같은 세월엔 예민하게 레이더를 세우고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박명수는 그가 직접 말하는 것처럼, 그의 동료들이 증언하는 것처럼 지난 15년간 변한 것이 거의 없다. 물론 자잘한 캐릭터의 분화와 확장을 변화라 생각한다면 변화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는 시대에 맞춰서 변했다기보단 시대가 그를 알아볼 때까지 숨죽이고 기다렸다. 박명수는 부정적인 것, 욕망에 솔직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터부시하던 세월이 모두 흐르고 패배를 자조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우리 시대가 되어서야 환호를 받을 수 있었다. 그의 말처럼 ‘열 명 공채로 뽑혀서 3년 뒤에 두 세명 남아 있으면 잘 된’ 거친 연예계에서, 알아봐주는 사람도 없는 상태로 계속 버티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고 고단한 일이다. 물론 변하지 않은 캐릭터로 계속 살아남은 예능인들도 많다. 기 세고 강단있는 이경실, 넘치는 활력과 화려한 옷차림으로 뛰어다니는 홍록기, 화려한 언변으로 정글 같은 연예계를 헤치고 살아남은 정선희. 하지만 박명수처럼 오랜 세월을 변화없이 박수도 없이 버텨내고 성공한 예능인은 흔치 않다. 오랜 무명의 세월을 뚫고 정상에 오른 유재석조차도 데뷔시절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언변이 어눌했으며 시선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몰라 보는 이들까지 무안케 만들었다. 박명수처럼 변화없이 십수 년을 견딘 사람은 박명수 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박명수의 이기적이고 치졸하면서도 스스로 루저됨을 인정하길 꺼리지 않는 모습은 한편으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과 겹친다. 욕망에 솔직하고 상식에 발목 잡혀 머뭇거리지 않는 그는 대한민국 예능 역사상 최초의 안티 히어로다. MBC 최문순 사장과 예능국 국장을 만난 자리에서 난데없이 <무한도전> 뉴욕 특집으로 촬영을 가자며 공적인 방송을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려는 욕망까지 숨기지 않는 그에게 형식적인 권위는 큰 의미가 없다. (혹시나 모르실 몇몇 분들을 위하여. 박명수의 여자친구는 현재 뉴욕으로 유학을 가 있다. 박명수가 뉴욕 특집을 제안한 것은 확연하게 사적인 욕망의 발현이다.) 초면이라고 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라면 거침없이 다가가 ‘죽을래?’라고 폭언을 퍼붓는 박명수는 우리가 입 안에 담아두고 차마 꺼내지는 못 하는 말들을 대신 토해낸다. 일단 나만 살아남고 보자는 식의 그의 언행은 무한 경쟁의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속내를 숨기지 않고 폭로한다. 그는 대기실에 들어서는 순간 동료들을 향해 ‘오늘 다 죽여버릴거야’라고 말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선의 예의범절을 박살낸다. 오늘 방송에서 나만 단독샷 받아서 주목 받겠다는 욕망, 그 단순한 욕망을 향해서 상식까지 폐기처분하는 그의 모습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가장 솔직한 풍속화다. 그래서 필자는 과감하게 이렇게 쓴다. 우리는 박명수를 통해서 우리 스스로를 본다. 우리가 예의바른 모범청년 유재석을 통해서 우리의 이상을 본다면, 박명수를 통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계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을 본다. 그리고 그 둘이 티격태격하면서도 조화롭게 지분을 나눠갖는 <무한도전>을 통해 우린 우리의 삶과 화해할 수 있었다. 그것이 <무한도전>의 주요한 동력이었고, 박명수가 우리의 곁으로 성큼 다가와 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별, 거성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이다.

박명수는 언젠가 자신의 별명 ‘거성’의 유래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가장 흔한 뜻으로 큰 별 거성(巨星)이란 뜻도 있지만, 복식호통의 큰 목소리 거성(巨聲)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사실 거성이란 호칭은 <무한도전> 멤버들이 ‘거지 같은 성격’의 준말로 부르던 거라고 말이다. 그 ‘거지 같은 성격’으로 그는 거성(巨星)이 되었다. 세상이 다시 예쁘고 착하고 긍정적인 가치들만을 앵무새처럼 되뇌이는 가식의 시대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그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오래, 최고의 자리에서 반짝이고 있을 것이다.






글. 정리 | tin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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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독을 품고 빵끗 빛나는 별. 거성 박명수 : 2부. 한없이 이기적인 우리들의 초상 (1)









들어가기 전에

짧게나마 늦어진 이유에 대해서 해명하고 넘어가야 할 거 같다. 박명수 글 1부를 올리고 나서 1부의 내용 중 많은 부분이 <윤종신의 두 시의 데이트> 중 <최작가의 스토킹> 박명수 편에서 언급한 것과 비슷하다는 지적을 발견하게 되었다. 들어본 결과 글을 쓴 내가 들어도 환장하도록 흡사했고, 실제로 어떤 부분은 그 라디오를 들은 지인으로부터 전해들은 말을 언급한 것이니 그 방송의 자장 아래 있었다. 해명을 한다고는 했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난 게 아니다. 내가 2부에서 언급할 핵심적인 내용들 역시 방송에서 이미 짧게나마 언급이 된 부분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고민은 계속 되었다. 다른 관점을 새로 잡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패배를 자인하고 그냥 1부로 불명예스럽게 글을 마쳐야 하는가? 아무리 필자가 형편없는 아마츄어 글쟁이라 해도 자신의 글이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그냥 넘어가고 말 일은 아니었다. 사실 어떻게든 그냥 넘어가야겠단 생각으로 2부 글을 거의 완성하기도 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분개하신 것처럼, (실제론 지켜지지 않은) 업데이트 일정을 고지해드리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읽어본 그 글은 그저 방송에서 언급되지 않은 점들만을 비추기 위해서 내 스스로도 동의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억지로 끌어낸 것에 불과했다. 글 쓴 사람 스스로도 믿지 않는 이야기를 독자들이 믿어주고 동감하길 바라는 건 사기 아닌가.

업데이트 시일을 번번히 어기는 양치기 소년이 될지언정, 스스로도 믿지 않는 글을 생산하는 엉터리가 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필자는 거진 다 완성한 글을 다 밀어버렸고, 아주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그 글을 여러분들께 띄워보낸다. 심하게 늦어버린, 하지만 부끄럽지 않은 ‘필자만의’ 글을. 언제나 소망했던 것처럼 이 글을 즐겨주시길, 그리고 이 글이 박명수라는 예능인에게 누가 되지 않기를 감히 바라본다.


서(序) – 캐릭터論

복학생. 사모님. 뺑코. 호빵. 화살코. 옥동자. 메뚜기. 벼멸구. 천하장사. 딱따구리. 약골. 뚱보. 뚱뚱보. 배추머리. 태릉선수촌…. 태반이 일반 명사인 이 단어들이 이 칼럼에 등장하는 순간 아마 독자들의 머릿속에선 몇몇 얼굴들이 스쳐 지나갈 것이다. 코메디 프로그램을 꼬박꼬박 챙겨보지 않는 분들이라 하더라도 아마 위에서 거론한 단어 대부분에 딱 맞는 얼굴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수많은 예능인이 자신들의 캐릭터를 설정하고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아주 운이 좋거나 타고난 재능이 숨 막히게 번쩍이지 않는 이상 캐릭터의 이름들은 그저 일반 명사로만 남을 뿐이다. 고정적인 캐릭터 없이 성공하는 케이스들도 있지만, 캐릭터를 통해 자신의 얼굴을 각인시키는 케이스들에 비하면 턱없이 소수다. 캐릭터만큼 효과적인 간판이 어디 있는가. 한번 캐릭터를 만들어 놓으면 그 캐릭터는 아주 오랫동안 예능인의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지속적으로 대중들에게 예능인을 각인시켜주는 역할을 해준다. 신인들이 새롭게 무대에 올려지는 캐릭터에 사활을 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다 보면 예능인의 본명보다 캐릭터의 이름이 먼저 떠오르는 경우들도 생겨난다. 물론 이 칼럼을 꾸준히 읽고 계신 분들이나, DC 코갤러 여러분이라면 예능인의 이름을 외우지 못하는 일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들의 부모님이라면, 삼촌이나 나이 많은 사촌 형제라면 어떨까. 어지간한 애정을 가지고 예능프로그램을 지켜보는 사람이 아니라, 힘든 하루를 끝내고 소파에 시체처럼 쓰러져서 리모컨을 돌리다가 우연히 멈춘 채널에서 코메디 프로그램을 보는 장삼이사들에게 그들의 이름을 외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금은 불공평한 예. 독자 여러분은 ‘미스터 빈’이 익숙한가, 아니면 ‘로완 앳킨슨’이 익숙한가? ‘오스틴 파워’와 ‘마이크 마이어스’는 어떤가? 국외라 불공평하다 생각된다면, ‘육봉달’, ‘노량진박’을 연기한 예능인의 본명이 기억나시는가? 남자가 남자다워야 남자라고 외치는 ‘길용이’는 어떤가? 그 얼굴을 봤을 때 먼저 떠오르는 건 그의 이름인가, 그가 연기한 캐릭터의 이름인가? 여기서 딜레마가 시작된다. 캐릭터가 대중들에게 소구될 수 있는 유효기간을 넘기고 나면, 자칫 예능인 본인의 커리어 전체가 폐기처분되는 역전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캐릭터가 어느 순간 간판이 아니라 족쇄로 작용하는 것이다.





작품에 맞춰서 자신의 캐릭터를 바꿀 기회를 얻는 탤런트들이나, 싱글 단위로 컨셉을 바꿔서 활동할 수 있는 가수들과는 달리 예능인들은 한번 구축한 이미지를 바꾸는 것이 어렵다. 휴식기를 가지며 자기개발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다른 방송인들과는 달리, 예능인들은 조금만 길게 대중들의 시야에서 사라지면 제자리를 찾는 게 어려운 게 사실 아닌가. (물론 한 작품에 10여 년을 출연하면 탤런트들도 캐릭터에 갇힐 순 있다. <프렌즈>의 여섯 친구들–조이, 모니카, 챈들러, 피비, 로스, 레이첼–이나, <전원일기>의 양촌리 사람들처럼. 하지만 어지간한 단막극으로는 우리가 말하는 수준의 캐릭터 고착이 일어나진 않는다.) 게다가 많은 예능작가와 PD들 역시 한번 구축된 캐릭터의 힘을 프로그램의 힘으로 소비하기 위해 캐릭터에 맞게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일이 많다. 이재룡은 서애 유성룡 역을 하고 나서도 불륜의 주인공 역할을 두 차례 연속으로 맡을 수 있고, 서인영은 골반이 드러나는 옷을 입고 춤을 춘 뒤에도 <가르쳐 줘요>를 부를 수 있다. 하지만 김기사의 귓전에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던 ‘사모님’ 김미려는 <거침없이 하이킥>에선 윤호의 귓전에 숨결을 불어넣으며 더 빨리 달리라고 자신의 캐릭터를 변주해야 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거물들이라고 해도 상황이 크게 다른 건 아니다. 아니, 어쩌면 자리를 잡은 거물들이 더 어려울 수도 있다. 획기적으로 새로우면서도 독한 캐릭터를 선보일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이상-이를테면, 조혜련처럼 전신 타이즈를 입고 골룸을 흉내 내며 기존의 캐릭터를 모두 버릴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이미 굳어진 캐릭터를 상쇄할 만한 새 캐릭터를 개발하는 건 어렵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강호동이 남의 개그를 공손하게 받아준다거나, 식신 정준하가 비실거리며 약골 캐릭터를 연기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아마 별다른 일이 없는 이상에야 서경석은 앞으로의 커리어 내내 ‘화살코’라고 불리며 콧잔등에서 화살을 쏘아 보내는 시늉을 하고 살아야 할 것이고, 정선희도 심심찮게 ‘에헤헤 헤헤’하는 루니 툰 속 딱따구리 흉내를 내야 할 것이다. 정종철이 2006년 KBS 연예 대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다들 옥동자 이후에 안 될 거라고 했다’며 오열한 게 그냥 그럴싸해 보일 거 같아서 오열한 건 아니지 않은가. 옥동자를 넘어서기 위해선 그보다 한층 더 강력한 개그가 필요했고, 정종철은 이마가 시뻘겋게 부어 오르고 사지육신에 경련이 올 때까지 자해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벌인 뒤에야 비로소 ‘옥동자’ 대신 ‘마빡이’라는 별칭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누가 상을 받는 순간 울컥하며 그 시련의 시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세대를 뛰어넘는 설득력을 지닌 캐릭터를 만드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오락프로그램의 조류가 바뀌면서 꽁트 코메디와 시사 코메디의 시대가 지고, 버라이어티의 시대가 오자 코메디언들이 MC로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이주일과 같은 대선배부터 이경규나 주병진, 이홍렬, 서세원과 같은 코메디언 출신 MC 1세대들은 말할 것도 없고, 김국진, 김용만, 남희석, 박수홍, 신동엽 같은 신인들도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MC 자리로 포지션을 옮겼다. 이런 변화를 이겨내지 못한 코메디언들은 차츰 우리의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9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배일집, 배연정 콤비, 김한국과 같은 꽁트계의 베테랑들은 90년대 후반이 되면서 점차 설 자리를 잃어만 갔다. 김형곤, 엄용수와 같은 시사 코메디의 거목들 역시 공개 코메디 클럽으로 무대를 옮겨야 했다. 심지어는 새로 방송에 데뷔하는 신인들은 아예 꽁트 코메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버라이어티로 투입되기도 했다. 예능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전혀 다른 캐릭터로의 변신을 꾀하거나 자신의 캐릭터를 시대에 맞게 업데이트 해야 했다. 이경규나 신동엽처럼 당대의 코메디 조류를 타고 자신의 캐릭터를 변주하면서 살아남아 온 베테랑들이 지금은 거물이 되어 예능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비결이 바로 거기에 있다.

하지만, 박명수는 어떤가? 애초에 처참할 정도로 무명인 적도 없었고, 그렇다고 대중들의 환호 속에서 커리어를 꾸려온 것도 아니었다. 획기적인 캐릭터의 변신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처음부터 사랑받은 캐릭터였던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그저 열심히 하다가 어느 순간엔가 갑자기 대중들의 절대적인 지지 한 가운데 서게 된 것이다. 이상하리만치 갑작스러웠던 그의 부각. 그 경위에 대해서 우린 1부를 통해 간략하게 살펴본 바 있다. 그의 캐릭터는 그대로였으되 시대의 조류가 그를 웃기는 사람으로 만들었던 그 기가 막힌 경위 말이다. 그러나 미처 그의 캐릭터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분석하진 못 했다. 그 ‘변하지 않’았다는, 십수 년째 ‘자연인 박명수’ 위에 덧씌워진 ‘예능인 박명수’의 캐릭터를 파악하지 않고선 우리는 박명수를 잘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그의 개그를 두고 ‘성질 개그’, ‘호통 개그’ 등등의 수식어를 붙여서 그의 캐릭터를 파악하려고 한다. 그러나 단순히 그런 몇 마디 말로 박명수의 캐릭터를 다 파악할 순 없을 것이다. 그가 개그를 던지는 타이밍, 그와 성공적인 조화를 이루는 파트너들, 그가 대중들에게 접근하는 방식과 대중들과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비법. 그가 꾸준히 확장하고 있는 그의 캐릭터가 빚어낸 우주에 대해서, 필자는 지금부터 다시 각 잡고 살펴본다.



상식의 저항선을 돌파하는 지독함. 자신에게 결핍된 것들에 대한 노골적인 욕망.

박명수의 개그는 기본적으로 ‘독하다’. 데뷔 때부터 독했다. 주변 사람들의 증언대로라면 실제로는 소심하고 숙맥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박명수지만, 방송에서만큼은 독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그의 개그의 독함은 이영자나 강호동처럼 덩치와 힘에서 오는 위압감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기 긍정이나 활력에서부터 오는 것도 아니다. 그 독함은 보통 사람들이라면 할 수 없을 거라 생각되는 일들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해치우는 과단성에서 오는 독함이고, 자신에게 결핍된 것을 채우기 위한 노골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독함이다. 잘 생각해보라. 그가 주먹을 들어 ‘우씨’라고 외치는 순간은 그가 남을 시기하거나 위협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이 위협은 다른 슬랩스틱 코메디언들처럼 그 주먹으로 누군가를 쥐어박는 행위로 연결되지 않는다. 박음질 덜 된 쌍꺼풀을 노골적으로 노출하면서 자신의 외모를 극단적으로 일그러뜨리고 투정 조로 ‘우씨’라고 외치는 그 행위만으로 모든 위협은 끝난다. 굳이 말하자면 발화 자체가 결단인 행위인 셈이다. 썩 유쾌하다 하진 못 할 자신의 외모를 십분 발휘한 이 위협은 발화만으로 끝날 욕망을 상징하고, 그 욕망을 실행에 옮길 배포가 없는 억눌린 캐릭터를 구축했다.





외모를 위협의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자학적인 개그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론 자신의 단점을 공공연하게 과시하는 파괴적인 개그였다. 똑같이 단점을 개그의 도구로 사용하더라도 박명수는 남들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보라, 김국진이 혀짤배기소리로 ‘여보세요?’라고 말할 때 그는 자신의 단점을 드러내면서 그 단점으로 상대방과 의사소통을 시도하지만, 박명수는 자신의 얼굴을 일그러뜨려 상대방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강제종료하려 한다. 자신을 희화함으로써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에게 접근하려 하는 개그와, 남들은 쉽게 드러내지 않을 자신의 단점을 발가벗겨서 타인을 제압하는 개그. 공손한 김국진의 개그에 비하면 박명수의 개그는 흡사 동네 깡패들을 만나자 자기 배에서 창자를 꺼내서 줄넘기를 함으로써 상대를 겁에 질리게 만들어 제압했다는 최불암 시리즈의 주인공 같지 않은가? 이 확연한 차이는 점잖은 신사들이 나와서 교양과 예능의 접목을 시도하던 MBC 버라이어티의 황금기에 김국진에게 날개를 달아준 대신 박명수를 대중의 시야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동시대에서 박명수에 비견될 만큼 독한 개그를 선보인 사람이라고 해봐야 일본 애니메이션 여주인공들의 드레스를 입고 다니며 나사 빠진 표정으로 위험천만한 실험에 임하던 <호기심 천국>의 호기심 해결사, 기인이란 소리를 들었던 김경민 정도였다. 그리고 다들 아는 것처럼 김경민은 세인들로부터 ‘시대를 너무 앞서간 개그맨’이라는 평을 들으며 점차 대중들의 시야에서 멀어졌다. 어찌 보면 당연한 순서였으리라. 대중들이 두고두고 오래 즐기기엔 그의 옷차림은 지나치게 독했으니까. 사지육신 멀쩡한 남자가 <웨딩피치>나 <카드캡터 사쿠라> 코스튬을 입고 나오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매주 그러고 나오면 질리지 않았겠는가. 오래 두고두고 즐길 수 있는 밥 같고 물 같은 개그가 아니라 강렬하고 독한 할라피뇨 같은 개그라고 할까. 어쩌면 박명수의 독한 개그가 김경민의 개그에 비해서 오래갈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그가 자리를 잡은 곳이 비교적 오랫동안 실내 꽁트 코메디의 전통을 이어온 MBC였기 때문이리라. 방송국 개국부터 버라이어티에 올인하다시피 했던 SBS는 김경민에게 이상적인 일터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MBC가 어느 순간 실내 꽁트 코메디보다 버라이어티 쪽에 힘을 주기 시작하면서, 박명수 역시 소비되는 빈도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독한 개그가 꽁트에선 먹혀도 버라이어티에선 쉽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역할’ 뒤에 숨어서 바보도 될 수 있고 악당도 될 수 있는 꽁트와는 달리 버라이어티엔 ‘역할’이라는 안전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대본이 없는 것도 아니고 연출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배역의 이름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걸어놓고 ‘역할’이라는 중간 지점이 없이 바로 시청자들을 대해야 하는 버라이어티에서 독한 캐릭터로 승부를 보는 것은 당시만 하더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이야 노홍철과 같은 떠버리 캐릭터나 지상렬과 같은 산만하고 공격적인 캐릭터가 환영받는 시대지만, 버라이어티가 시대의 주류가 되기 시작하던 그 시절은 ‘모든 프로그램들은 기본적으로 교양적인 면모를 갖춰야 한다.’라는 강박에 시달리던 시기였다. (물론 아직도 그런 상업성과 교양성 간의 딜레마는 존재한다. 아직도 토요일 오후 12시면 MBC와 SBS가 약속이라도 한 듯 옴부즈맨 프로그램을 방송하며 자사의 프로그램에 대해서 비판하는 목소리를 소개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모든 예능인들은 예의 바르거나 스스로를 낮출 줄 알아야 했다. 지금처럼 타인을 비방하고 상대에게 면박을 주는 게 용인이 되는 시대가 아니었다. 게다가 박명수의 독함의 밑바탕이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육체의 건강함(덩치)이나, 정신의 건강함(자기 긍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기에 더더욱 프라임 타임에 가족 모두가 즐기는 대상이 될 순 없었다.

지금은 대중들의 시야 한가운데에서 최정상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박명수지만, 그의 파괴적인 개그는 아직도 <무한도전>이나 <놀러와> 등에서 매주 확인할 수 있다. 선생들로부터 잔인한 수준의 평가를 받은 초등학교 생활기록부를 공개하면서 자신의 뿌리깊은 성격파탄을 과시하거나, 부실한 육체를 카메라 앞에 공개하길 꺼리지 않으며 아직 40대도 채 안 된 자신의 노쇠함–탈모, 하체부실, 만성피로 등등-을 거듭 강조한다. ‘양쯔강 유역 계단식 영농 이모작 베이베’ 따위의 말도 안 되는 가사의 랩을 부르거나 어느 상황에서건 ‘유쥬 라익 썸씽 투 드링크’ 같은 뜬금없는 영어회화를 시도함으로써 자신의 무식함을 만천하에 자랑한다. 남들은 차마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꼭꼭 숨기는 악몽과 같은 단점을 그는 겁내지 않고 계속 공개하고 잊을 만하면 다시 상기시킨다. 치킨이나 피자와 같은 자신의 부업을 기회만 되면 들먹이면서 자신의 노골적인 상술을 공개해 듣는 이들의 얼을 빼놓는가 하면,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서라면 멀쩡한 자신의 집안을 ‘화목하지 않은, 문제가 아주 많은’ 집안으로 전락시키기까지 한다. 가히 피도 눈물도 없는 수준의 파괴적인 개그는 자기 파괴로 이제 그치지 않는다. ‘우씨’라고 주먹을 들어 보일 뿐 실제로 누구도 차마 때리지 못했던 억눌린 캐릭터 박명수는 이제 남들에게 발길질, 주먹질은 물론이거니와 당수 날리기, 풍차돌리기 같은 상상치도 못한 필살기까지 개발해가며 공격본능을 발산한다. 동료 정준하를 두고 ‘술장사하던 놈을 데려와서 방송시켜줬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라고 실생활에서조차 꺼릴 법한 폭언을 날리는가 하면, 현실계에선 비견할 만한 모욕이 몇 없을 ‘근본 없는 놈’ 정도의 말들은 아예 입에 달고 산다.





다른 한편으론, 1부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그의 노골적인 욕망은 점차 더 부각이 되었으면 되었지 결코 세월에 마모되지 않았다. <무한도전>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지금도 동생들이 조금만 길게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니들이 너무 오래 끄니까 내가 준비한 상황극을 펼칠 수가 없잖아’라고 맥을 자르는 거로 시작해서 말하고 있는 사람 목젖에 당수를 날려 억지로 말문을 끊어버리고 자신이 카메라의 중심에 잡히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거나 하는 모습은 어떤가. 자신에게 시선이 주목되지 않으면 초조해하고, 노홍철의 집에 놀러 가서도 자신이 선물해 준 스테레오 스피커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그는 꾸준히 주목받기를 욕망하고, 시선의 중심에 서기를 욕망한다. 그리고 그 욕망을 숨기기는커녕 모든 이들이 알 수 있도록 광고하고 다닌다. 욕망의 종류도 ‘강호동, 유재석보다 내가 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제일 적다. 더 해야 한다.’라거나 ‘정선희에게 대쉬하면서 집은 몇 평인지, 자기 건지 전세인지 확인했다’는 식의 말들에서 보이는 물질적인 욕망이 한 축을 이루고 있는가 하면, 잘 생긴 순위에서 꼴찌를 차지한 응당 당연한 설문에서조차 격분하면서 귀엽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버티는 외모에 대한 욕망까지 다양하다. (오해 마시라. 이 욕망들은 자연인 박명수가 그렇단 이야기가 아니다. 캐릭터로서의 박명수가 그렇단 소리다. 자연인 박명수가 어떤 사람인지 필자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전무하다.) 식욕, 명예욕, 물욕, 미에 대한 추구, 공격욕…. 단독 MC에 대한 간절한 욕망까지, 어떤 종류의 욕망이든지 박명수는 걸러내지 않는다.

박명수의 캐릭터는 그렇게 상식의 저항선을 돌파한다. 평범한 우리들이라면 체면을 챙기느라 차마 넘지 못할 선을 파괴하면서 시청자들의 욕망을 대리 충족시킨다. 자신의 치부를 까발리고, 타인을 욕하고 비방하고 육체적인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자신에게 득이 되는 일이라면 그게 무엇이 되었든 가리지 않고 일단 저지르고 보는, 오로지 자신에게만 충실하고 자신의 욕망에만 솔직한 박명수 캐릭터는 시청자들의 욕망의 대리자로 기능 한다. 마음속에 담아두기만 할 뿐, 해소할 수 없이 득시글거리는 욕망들을 박명수는 거침없이 내지른다. 방송에서 욕설을 퍼붓고, 육체적인 폭력을 행사하는가 하면 자신의 비밀한 콤플렉스들을 만방에 떠들고 다니며 금기를 넘는 쾌감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한다. 시청자들은 박명수가 상식의 저항선을 돌파하며 기행을 벌이는 것을 보고 어이없음에 일차적인 폭소를 터뜨리지만, 그 폭소의 뒷맛은 자신은 차마 하지 못하는 일을 박명수가 대리인으로서 ‘저질러’ 주는 것에 대한 쾌감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지난 십수 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기에 외면당했던 박명수 캐릭터가 이렇게 당당히 대중들의 욕망의 대리인 노릇을 할 수 있게 된 것일까? 필자는 다음 문단에서 이 점을 살펴보기 위해, 왜 박명수가 제대로 소비되지 못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는 의도적으로 중간과정을 생략했다. 시대는 도대체 박명수 옆을 어떻게 지나간 것일까? 버라이어티에선 독한 개그가 먹히지 않던 시절은 어떻게 흘러간 것일까. 1부에서도 간략하게 살펴본 바 있지만, 여기서 잠시 좀 더 자세하게 살피고 넘어가 보자.



제자리에 서 있던 박명수 곁으로 흘러간 시대 (1) – 밝은 세상에 대한 강박의 시대


박명수가 데뷔한 93년은 전 사회에 걸쳐서 긍정적인 비전이 펼쳐져 있던 때였다. 형식상으로나마 민주화 세력은 승리했고, 대표적인 재야 정치인이었던 김영삼은 마침내 대통령이 되었으며, 한국에서 최초로 만국박람회가 개최되었던 해였다. 경제는 개발독재 시절만큼은 아니더라도 빠른 속도로 선진국의 대열을 향해 달리고 있었기에 모두 버블의 수렁에 빠져있던 일본과의 격차를 줄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랜 투쟁과 정치의 시대가 지나간 자리에 ‘문화’가 시대정신의 한가운데 들어서기 시작했다. 쟈니 윤처럼 ‘미국에서도 성공한’ 연예인이 미국식 토크쇼를 진행하며 스탠드업 코메디를 선보였고, 서태지가 등장해서 우리 대중음악이 뉴키즈 온 더 블록이나 마이클 잭슨과 같은 팝스타들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 찼던 시절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임권택의 <서편제>는 단성사 단관 개봉만으로 200만 관객을 모으며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입증’했으며,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세간에 알려지면서 문화가 지리멸렬한 정치 담론의 영역보다 우월하다는 식의 사고방식마저 싹트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문화의 세기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이 ‘문화’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참 기형적으로 뒤틀려 있었다. ‘<쥬라기 공원> 한 편이 현대자동차 1년 수출실적’이라는 경제논리에 입각, 새 시대의 부가가치 산업의 첨병이 문화산업이라는 결론까지 도달하는 데는 아무도 이의가 없었다. 한편, 무엇이 문화적인 건가에 대한 인식은 창작자와 소비자 간 불일치의 연속이었다. 일본문화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개방하면 안 된다는 식의 인식이 사회 전반을 뒤덮고 있었고, 만화 역시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심심찮게 유해만화 추방대회가 열려서 지금은 절판되어 구할 수도 없는 우리 만화의 귀중한 자산들이 불태워지는 무시무시한 풍경도 볼 수 있던 시기였다. 자신들의 가치관을 전 사회의 동일한 가치관인 것처럼 착각하는 이들 덕분에 다양한 문화적 자산에 가치의 차등을 두어서 고급문화, 저급문화를 가르던 시기, 피해를 본 사람들은 한 두 사람이 아니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아이들에게 질 낮은 영화만 보여줄 것인가. 우리도 <나 홀로 집에> 처럼 질 높은 아동영화를 만들어 경쟁할 수 있지 않은가.’ 하는 기괴한 생각은 김청기 감독, 남기남 감독과 심형래 감독 같은 한국 아동영화의 선구자들을 싸잡아 ‘질 낮은 영화로 코 묻은 돈이나 훔칠 생각을 하는 엉터리들’ 로 격하시키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따위의,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들이 우리 시대에 벌어졌었다.

가뜩이나 부정적인 뉘앙스가 가득하던 대중들의 코메디에 대한 인식은, ‘문화적’이라는 단어에 기형적인 뉘앙스를 덧씌우던 90년대 들어 더 이상하게 비틀리기 시작했다. 소위 ‘문화적’인 것에서 거리가 먼, 단순 웃고 즐기기 위한 오락은 그저 위안거리가 될 뿐,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기에 오락 역시 격조 있고 공익을 생각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만 했다. 사람들은 공적인 자리에서 드라마나 코메디, 연예오락 프로그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꺼렸다. 누군가와 처음 만나서 자신의 취향을 소개하기 위해서 키에슬로프스키나 타르코프스키, 왕가위와 같은 이름들을 주워섬기는 건 아무렇지 않았지만, <웃으면 복이 와요>라거나 <코미디 일번지>같은 프로그램의 이름을 들먹이는 건 자신의 문화적 소양의 척박함을 드러내는 일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에 비하면 지난 10여 년간의 변화는 얼마나 아찔하게 빠른가. 요즘 세상에 초면인 사람 앞에서 <무한도전> 대신에 장률, 홍상수, 김기덕이나 주제 사라마구 같은 이름들에 대한 애호와 지지를 침이 마르게 떠들어 대는 사람은 상대로부터 호감을 사기보단 지적 속물 취급을 당하기 십상이지 않은가.) 예능프로그램에 대해 언급을 하려면 <칭찬합시다>나 <신장개업>처럼 공익적이거나, <이경규가 간다>처럼 전 국민이 지켜보는 블록버스터급 프로그램이어야 했다. 예능프로그램 역시 점잖거나 격조가 있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게 나쁘단 이야기는 아니다. 보면서 희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뭐 그렇게 잘못되었단 말인가. 다만, 온 시대가 강박적으로 공익에 목을 매고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그 이전이야 개발독재의 횡포 아래였기에 그랬다 치지만, 90년대 초반부터 심지어 IMF에 이를 때까지 예능프로그램은 몸에 굳어진 대로 ‘세상은 희망차고 우리는 어려운 고난들을 극복할 수 있다’고 떠들어댔다. 현실에 대한 그 어떤 자조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망해가는 가게들에 대박집의 비법을 일러주고 인테리어까지 말끔하게 고쳐주는가 하면, 무너져가는 집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동안 집안 내에 불화까지 어떻게든 봉합해보려고 용을 써서 사람들에게서 감동의 눈물을 뽑아내는 것을 통해 ‘보세요. 세상은 이렇게나 밝고 희망찹니다.’라고 반복해서 설득해야 했다. 책을 읽으면 미래가 보이고 희망이 보인다고 설득했고, 그리운 아버지 어머니에게 지금이라도 전화 한 통이라도 하고 이번 주말엔 고향에 내려가 보라고 떠들어댔다. 돈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 만 원짜리 한 장으로 일주일을 버티게 하는 쇼가 주말 버라이어티에 자리를 잡았다. 심지어는, 과학적인 호기심을 다양한 실험으로 해소해보는 것이 주요한 오락의 일부였을 지경이었다. 필자가 종종 <무한도전>의 전신인 <무(모)한 도전>과의 비교대상으로 삼는 <대단한 도전>조차 ‘노력하면 누군가는 도전에 성공한다. 설령 아니더라도 도전하는 모습은 아름답다.’라는 점을 쇼의 주요한 쾌감 중추로 삼았던 프로그램이었다.

희망과 용기를 주고 공익을 상기시키는 것도 그래도 하루 이틀이지, 어느 순간 예능 프로그램들은 깐깐한 주임 교사로 돌변하고 말았다. <칭찬합시다>로 교양과 예능의 가장 성공적인 만남을 일궈낸 ‘쌀집 아저씨’ 김영희가 몸담고 있던 MBC가 가장 그 정도가 셌는데, 그 덕분에 지난 몇 년간 MBC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은 단순하게 웃고 끝날 수 있는 배설 행위가 아니었다. 그 웃음은 ‘건강한’ 웃음이어야 했고, 그래서 ‘건강’하기 위해 우리가 발 딛은 세상은 얼마나 희망찬가에 대해서 쉴 틈 없이 상기시켰다. 그 수많은 교훈과 의미에 질린 시청자들은 단순하고 빠른 웃음을 찾아서 시대의 새 조류인 공개 코메디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과거 공개녹화 코메디의 전성기를 맛본 적 있던 KBS가 그 선두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개그콘서트>를 성공적으로 궤도 위에 올리고 KBS 코메디의 부활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상업적인 감각엔 둘째라면 서러울 정도로 감각이 섬세한 SBS 역시 <웃음을 찾는 사람들>을 런칭했고, 몇 차례의 부침을 겪은 후 <웃음을 찾는 사람들> 역시 <개그콘서트>의 아성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올라섰다. 공익적 웃음에 사활을 걸다시피 한 MBC가 드물게 시도했었던 선남선녀 연예인들의 연예놀음은 SBS가 강호동을 스카우트해가면서 SBS의 전유물이 되다시피 했다. 시대는 빠르게 변했다.

2부에서..

출처 :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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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독을 품고 빵끗 빛나는 별. 거성 박명수 : 1부. 거성의 탄생

 

















* 덧말 –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 할까요… 백가쟁명 예인열전 박명수 편 1부에 대한 반응 중, MBC FM4U <윤종신의 두시의 데이트 – 최작가의 스토킹>의 내용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화들짝 놀라서 다시듣기로 들어보니 부끄러울 정도로 내용이 비슷하더군요. 특히나 <놀러와>에 대한 부분은 습자지에 대고 따라 그린 것 같았습니다. 당혹스럽기도 하고 이유도 없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이래서야 제가 어떤 의심을 사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글을 쓰다보면 종종 이런 일들을 겪게 될 때가 있습니다. 다 쓰고 나서 보면 너무나 흡사한 글이 있어서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하는 경우 말입니다. <백가쟁명 예인열전 – 정형돈> 편을 쓸 때는 탈고하기 직전에 다른 평론가 분의 글을 접하게 되어 급하게 글을 수정했던 기억이 나네요. 다른 사람이 쓴 글이라고 하기엔 사용된 어휘부터 논지를 이끌어가는 방법까지 너무 흡사했거든요. 눈앞이 아찔하더군요. 그래도 업데이트 하기 전에 그 글을 먼저 발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최대한 그 글과 차별점을 둘 수 있도록 글을 다듬을 수 있었으니까요. 상도덕도 상도덕이지만, 그건 글 쓰는 사람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거든요. 이번 글은 업데이트 하고 난 뒤에야 이런 일을 겪게 되니, 자존심도 상하고 마음도 편치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민망하기 짝이 없고요.

<놀러와>같은 경우 ‘점점 높게’, ‘점점 낮게’ 포맷으로 방송할 때부터 쭉 애청해왔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박명수씨에 대한 반감을 반전시켰던 것도 <놀러와>였고요. 한 동안은 녹화를 떠서 두고 두고 볼 정도였습니다. 잦은 포맷 변경 때문에 어느 정도 애정이 바랜 구석이 있긴 하지만, CQ를 창간할 때 리뷰할 프로그램으로 <무한도전>과 <놀러와>를 놓고 저울질 할 지경이었으니까요. 글을 쓰면서 다른 프로그램에서의 활약에 대한 서술이 한 페이지 정도 더 있었지만, 탈고하는 과정에서 역시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박명수씨가 <놀러와>를 통해서 자신의 이미지를 멋지게 반전시킨 것에 대한 서술 하나면 충분하다고 여겼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표현까지 흡사한 결과물이 나왔는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당혹감에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쿵쾅거립니다.

논지 자체를 수정하기엔 비중이 컸던 지라 지나치게 흡사한 표현들만 현재 수정을 했습니다. 너무 흡사한 표현이 쓰여진 글이 버젓이 웹을 떠돌도록 방치하는 것은 다른 누구보다도 최대웅 작가님께 결례입니다. 그러더라도, 이러 이러한 부분에서 비슷했었고 그런 이유로 지적이 있었다는 사실은 명시를 해두는 것이 도리일 듯 해서 이렇게 길게 덧말 적어 둡니다.

제가 만일 자료조사를 좀 더 충실하게 했더라면 그 방송을 업데이트 전에 접할 수 있었을테고, 그랬다면 이런 일을 겪지 않았을텐데, 게으른 저의 불찰입니다. 읽으시는 분들께 일말의 의혹도 남겨선 안되는데… 독자분들 뵙기가 죄송하기 짝이 없습니다. 실망하시게 한 점, 독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 올립니다. 아울러 <윤종신의 두시의 데이트> 관계자분들과 최대웅 작가님께도, 혹시 이 글을 보고 계신다면 결코 의도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주십사 하는, 죄송하단 말씀 드립니다.


Tintin 드림.




장면 1.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 나오며 시청자들의 숙면을 유도하는 방송이 주를 이루는 밤 10시 라디오. 갑자기 ‘걱정마세요, 조금 있다가 또 제가 물어뜯는 시간이 있으니까. 그 때 또 한껏 물어뜯기시면서, 그러시면 됩니다.’라는 살벌한 멘트가 흘러 나온다. 디제이 부스 안 멀찍이서 낄낄거리며 뒹구는 소리도 들린다. 아니, 이런 살벌한 멘트가 뭐가 어디가 좋다고?
장면 2. 역시나 같은 주파수 같은 시간대. 18년 관록의 디제이 배철수가 ‘사실, 저는 제가 생긴 게 김C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거든요.’라고 말하자, 옆에서 심기가 심히 불편한 듯한 목소리가 튀어나와 면박을 준다. ‘저기요, 그런 생각은 제발 좀 버리시길 바라겠고요.’ 배철수 특유의 꺽꺽거리는 웃음이 그 뒤를 잇는다.
혹자는 이 사람이 뜬 건 운이 좋아서라고도 하고, 혹자는 이 사람 성질도 더러운데 왜 떴는지 모르겠단다. 그랬거나 어쨌거나, 요새 이 사람,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못 생긴 얼굴에 인상을 써도 사람들이 웃고, 인성 검사에서 ‘비사회적, 비규범적, 비도덕적’이라고 결과가 나와도 시청자들은 배를 잡고 뒹군다. 심지어는 초등학교 생활 기록부에 ‘남의 흉을 잘 이야기하며, 소견이 좁고 옹졸하며 자기 주관이 없음’이라고 참혹하게 적힌 결과를 보고도 사람들이 껌뻑 죽는다. 나이가 많다는 거로 웃기고, 몸이 부실하다는 것으로 웃기고, 머리숱이 적은 것으로 웃기고. 이제 그가 뭘 해도 사람들은 웃는다. 온 몸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이 남자. 스스로를 거성으로 칭한다 해서 그 아무도 무례하다 욕하지 않는 남자. 그의 이름은 박명수다.

시계를 조금만 돌려보자. 2006년 MBC 방송연예대상 쇼/버라이어티 부문 남자 최우수상. 수상자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다들 말은 안 했지만, 박명수가 수상할 거라는 건 거의 기정 사실이나 다름 없었다. 본인도 어느 정도 예상은 했는지, 시상식이 열리기 전에 촬영되었던 <무한도전> 촬영장에서 미리 감사의 멘트를 날리는 여유까지 보여줬다. 기실 그럴 법도 했다. SBS <엑스맨>에서의 활약도 활약이지만, 친정 MBC 예능 프로그램에서 박명수는 그야말로 종횡무진이었다. 예능계의 기린아 <무한도전>은 물론이거니와,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 <일요일 일요일 밤에 – 동안클럽>까지, 주말 저녁 버라이어티에서 독설을 아끼지 않으며 뛰어다녔으니 그가 상을 받지 못한다면 그게 더 이상할 노릇이었다. 미리 준비한 플래카드 앞에서, 역시나 미리 준비한 듯한 유려한 수상소감을 읊는 박명수. ‘호통개그다, 못된 개그다, 버럭개그다… 사실 좀 우울한 시대상을 좀 반영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좌중 폭소) 나라의 경제가 밝고, 미래가 환하다면 호통개그나 버럭개그가 나오지 못 했을 겁니다. 저는 항상 똑같았지만, 시대가 변해서, 제가 또 이렇게 각광받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본인조차도 말한 후에 멋쩍은 듯 키득거렸던 이 수상소감. 농담같지만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다. 데뷔할 때부터, 어딘가 억울한 표정으로 주먹을 치켜 올리며 ‘우씨’로 일관하던 때에도 그는 분명 성질을 부리고 있었다.





다시 시간을 훌쩍 뛰어 넘어서, 1993년. 스물 네 살의 나이로 MBC 개그 콘테스트로 데뷔한 그의 초창기 커리어는 암울하다. 때는 부담없고 예의바른 이들이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 동기 중에는 엘리트 콤비였던 서경석, 이윤석이 만담 개그의 맥을 이으며 대중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고, 옆 방송사에서는 박수홍이나 신동엽처럼 반듯한 외모의 청년들이 시청자들에게 어필하고 있었다. 완력의 상징 강호동마저도 어린아이 분장을 하고 해맑게 뛰어다니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조르던 때였고, 독한 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이영자 역시 그 시절엔 자신의 살덩이를 부여잡고 뒹굴면서 자학성 개그를 구사했었다. 어디 그 뿐인가. 성질 개그로는 가히 원조격이라 불리는 이경규 역시 그 시절만 하더라도 까불거리며 사람들을 속일지언정 정중하고 매너있는 신사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갔었다. 예의바른 개그가 득세하는 시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시절에 박음질 덜 된 쌍꺼풀을 들이밀며 성질을 냈던 그는,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시청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개인기라고 밀었던 이승철 모창과 엄기영, 서세원 성대모사는 어딘가 2%정도 모자랐었고, 복없이 생긴 외모에 아무리 봐도 바보스러워 보였던 그가 이렇게 성공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최양락이 MBC로 옮겨와 <코메디 하우스>를 진행하던 시절 이회창 성대모사를 구사하며 인기를 얻기도 했고, 2집 타이틀곡 <바다의 왕자>로 가수로서의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지만, 그는 언제나 대중의 관심에서 한 뼘 정도 멀리 있었다. 기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바다의 왕자>는 그에게 이경규의 <복수혈전>과 같은 존재였다. 본인이 얼마나 프라이드를 느끼는가와는 전혀 관계 없이 내내 웃음거리가 되어 인구에 회자되는 인생의 오점 말이다. 물론 개그맨이 남들을 웃길 무기가 하나 더 생긴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개그맨은 웃기는 사람이지 우스운 사람이 되어선 안 되는 거 아닌가. 박명수가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서 승부를 본다거나 쇼를 진행한다거나 하는 일은 좀처럼 없었고, 그의 커리어는 그렇게 비웃음거리 만년 패널로 지는 것만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KBS <개그콘서트>의 등장과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등장으로 공개 코메디의 시대가 도래해버렸다. 종종 조혜련의 ‘골룸’이라거나 배칠수, 김학도, 김미진 라인업으로 화려하게 이어지는 최양락 사단의 10분 토론이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차츰 MBC 코메디의 시대는 저물어갔다. 시효가 지난 스튜디오 꽁트에 웃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심지어 방청객까지도 좀처럼 웃지 않았는데, 집에 앉아 TV를 보는 시청자들은 오죽했겠는가. TV를 바라보기가 면구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2004년, MBC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가 시작되었다. 한 때는 자신보다 인기가 없이 빌빌거리던 동생 유재석의 팀원으로 들어간 박명수는 그 프로그램에서 처절한 개그 감각으로 조롱거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 무렵 iMBC <놀러와> 게시판에 가본 적이 있는가? 검색어 ‘박명수’로 검색해보면 박명수를 퇴출시키라는 이야기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물론 이런 의견은 지금도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긴 하지만.) 박명수가 말하는 이야기엔 사람들이 좀처럼 웃지 않았고, <놀러와>에서 박명수의 포지션은 웃기는 포지션이 아니라 생뚱맞은 포지션으로 굳어졌다. 친구 조혜련이 오버액팅으로 분위기를 띄우고, 유재석이 물심양면으로 리액션을 던지며 박명수를 받쳐주었지만 박명수의 개그에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었다. 사람을 못 웃기는 개그맨만큼 초라한 것이 또 있을까. 심지어 새로 수혈된 젊은 피 노홍철에게도 밀리는 박명수는 점점 막장의 대명사로 굳어져만 갔다. 그리고 그 때, 박명수는 드디어 시대와의 불화를 정면 돌파한다. 다른 이들도 아닌 방청객에게 역정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놀러와>가 룰렛을 돌려서 나온 숫자를 넘기는 수의 방청객의 지지를 받아야 살아남는 포맷을 유지하던 때였다. 방청객들이 버튼을 눌러 재미있었노라 지지해줘야 하는데, 박명수가 꺼내는 이야기들은 좀 심할 정도로 재미가 없었다. 이야기를 할 기회라도 생기면 다행이지, 아예 룰렛이 벌칙을 가리키면 박명수는 입도 한번 못 떼보고 벌칙실로 들어가야 했다. 이게 쌓이고 쌓여서 방청객의 반응이 냉담의 극을 달리자 박명수는 급기야 방청객들을 야단치기 시작했다. ‘사람이 먹고 살려고 망가지는데 이렇게 안 도와주느냐’며 죽어가는 목소리로 호통을 치는 박명수는 사실 절박했었다. 그 절박함과 다급함에서 우러나온 역정이 돌파구였다. 세상 그 어떤 개그맨이 쇼를 방청하러 온 방청객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가. 그것도, 자기가 못 웃겨 놓고 안 웃기다고 하면 화를 내니, 상식적인 반응은 절대 아니지 않은가. 그 누구도 넘은 적 없는 금기를 박명수는 훌쩍 뛰어넘었다. 상식을 벗어난 그의 행동에 놀랍게도 방청객들은 환호하기 시작했다. 역정을 부리는 박명수를 보고 싶었던 것일까. 박명수의 이야기를 지지하는 방청객들의 수는 날로 줄어 급기야 한 자리 수까지 떨어졌고, 방청객들을 야단치고 역정을 부리는 박명수의 모습은 편집되지 않은 채 브라운관을 타고 바로 안방으로 전달되었다.




박명수의 역정에 대해 처음부터 모두가 환호했는가 하면 또 그건 아니었다. <놀러와> 게시판이 아주 난리가 났던 것이다. ‘방송에서 어떻게 저런 식으로 말하느냐’부터 시작해서, ‘박명수는 원래 성질이 더럽다’, ‘박명수, 유재석한테 묻어가는 것도 모자라서 남 욕 해가면서 떠야 하느냐’까지 온갖 비난이 난무했다. 하지만 박명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늘 높은 지지를 얻어내는 노홍철을 향해 ‘내가 너 꼭 반드시 죽인다. 언제까지 가나 보자. 근본 없는 놈’라고 시기어린 언사를 일삼고, 방청객들에게도 ‘오늘 무사히 집에 가고 싶지 않느냐’며 공중파 수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협박을 쏟아냈다. 하지만 박명수라고 해서 본인이 이렇게 뜨리라고 생각했을까. 참다가 참다가 성질을 버럭 부린 것 뿐인데 사람들이 왜 자기를 좋아하는 걸까 하고 초조해하진 않았을까. 대중처럼 변덕스러운 존재가 어디 또 있으랴. 좋아해주다가도 어느 순간 ‘재미없고 무례하기만 하다’고 내칠 수도 있는 게 대중 아닌가. 십 수년을 선배들의 자리를 치고 들어가지도 못 하고, 신인들보다 앞서 나가지도 못 한채 생계형 연예인으로 살아온 그로서는 갑자기 쏟아지는 환호가 퍽이나 놀랍고도 한편으론 불안했으리라.

하지만 이미 박명수에 앞서서 버럭 버럭 성질을 내는 것으로 사람을 웃기는 선례를 세운 캐릭터가 있다. MBC 코메디의 대부 이경규의 ‘위기의 중년’ 캐릭터가 바로 그것이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 – 대단한 도전> 에서 이경규는 이 캐릭터로 단단히 재미를 본 바 있다. 건강은 점점 부실해지고,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의 공격은 받아쳐야겠고, 김용만과 함께 티격태격하면서 난장을 벌이는 등 나이에 걸맞지 않는 유치함으로 일관하던 이경규는 잔머리만 진화한 부실한 중년 캐릭터로 제 입지를 탄탄하게 구축했다. 그러고 보면 낯익지 않은가? 부실한 육신도 그렇거니와, 나이를 앞세워 소리를 지르고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온갖 억지를 부리고, 만고에 놀림거리가 된 커리어의 오점이 있으며(<복수혈전>/<바다의 왕자>), 툭하면 자기 위주로 편집해줄 것을 요구하고 조금만 힘이 들어도 쉬었다 가자, 방송이 이러면 안 된다는 둥 날방을 외치는. 그렇다. 박명수는 이경규의 ‘위기의 중년’ 캐릭터를 그 누구보다도 효과적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그것도 자기 식으로 변주해서 말이다. (이로서 이경규 글에서 말했던 ‘호통 치는 것 외엔 닮은 것이 없다’ 고 했던 필자의 과오에 대해 정정한다. 독자 여러분들과 박명수씨, 박명수씨 팬들에게 모두 죄송하단 말씀 드린다.)




이경규야 아무리 이빨 빠진 호랑이 흉내를 내더라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MBC 예능의 터줏대감이지만, 박명수는 호통 이전의 모든 커리어가 비웃음거리이지 않은가. 이경규는 그 캐릭터와 자연인 이경규를 분리할 수 있지만, 박명수는 자연인 박명수와 캐릭터가 거의 혼연일체이다. 당장 자기 커리어 관리가 급한 박명수가 ‘내가 너 죽일거야! 새벽 4시 뉴스 하고 싶어? 내가 MBC 사장님께 말해서 새벽 4시 뉴스 만든다!’라고 협박한다고 해서 누가 겁을 먹겠는가. 본인이 적극 활용을 한 건지 아니면 기가 막히게 운이 좋았던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점조차 박명수에게 득으로 작용한다. 박명수의 독설이 날로 신랄해질지언정 아무도 박명수의 그런 말에 심각하게 다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못하는 허장성세. 박명수 본인의 울렁증과 만성피로조차 이에 절묘하게 도움이 되는데, 버럭버럭 성질을 내다가도 상대가 더 세게 나오면 양손을 초조하게 만지작거리며 우물쭈물 꼬리를 내리고 마는 모습은 성질만 남은 중년의 루저 캐릭터를 더욱 견고하게 했다.

더군다나 이 작고 초라한 중년 남자의 관심사는 팍팍한 세상살이에 지친 장삼이사의 우리들의 그것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 한 때나마 정선희에게 마음이 있었노라 고백하는 자리에서도 ‘그 때 집 평수는 몇 평인지, 집에 빚은 없는지’를 물어놨노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가 하면, <무한도전> 멤버들 모두가 베일 속에 가려진 앵커 마봉춘의 외모를 상상하며 온갖 수사를 동원해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을 거라고 떠드는 가운데 홀로 ‘집안이 좋아’라고 말한다. 당장에 내 입에 붙일 오늘의 한 끼를 걱정하고 내 주머니에 넣을 동전 한 닢이 더 급한, 극에 달한 현실적인 사고방식은 털털한 수준을 넘어 거의 자포자기 수준의 솔직함이 아닌가. 이는 박명수가 오랫동안 생계형 연예인이었던 탓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는 데뷔 때부터 그다지 윤택하다 할 순 없을 집안의 생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 환갑잔치에서부터 밤무대까지 가리지 않고 뛰었다. 오랜 시간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했던 자의 고단함과 자부심이 온 몸에 밴 박명수는 방송에서 거침없이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다.

위선도 가식도 없이 욕망에 솔직하며, 강한 사람 앞에서 움츠러들고 약한 사람 앞에서 역정을 내고 잘난 척 하는, 남은 건 성질 밖에 없는 중년. 시청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박명수에게 감정이입을 하기 시작했다. 잘 나고 예의바른 선남선녀들이 등장해 칭찬 일색의 자막과 함께 연애놀음 하는 것 구경도 하루 이틀이지, 단 것도 너무 오래 먹으면 질린다고 시청자들은 지난 몇 년간 버라이어티계를 장악하던 메이저리거들의 파티에 진력을 냈다. 바야흐로 <무한도전>으로 대표되는, 루저들의 마이너리그가 대세로 떠오르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렇게 시청자들은 차츰 어딘가 나와 닮은 것 같기도 한, 머리숱 없는 중년의 루저에게 환호하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주먹을 든 채 볼멘 소리로 ‘우씨!’ 라 외치며 성질을 부리던 생계형 예능인 박명수는 비로소 오랜 시대와의 불화를 청산하고 드디어 대중들의 레이더 한 가운데에 입성했다. 거성의 길을 향한 첫 발을 뗀 것이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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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원한다면 얼마든지, 노홍철 : 2부. 노홍철과 한국사회

 









세상에 두려울 것을 모르는 천진함에 대해서.


필자는 지난 1부를 본 네티즌들 중 몇몇 분들이 ‘노홍철의 계급적 안정성’ 이 그의 막나가는 행동들에 대한 안전핀이 되어준다는 지적을 해주신 걸 보게 되었다. 사실 이번 글에서 다룰 내용 중 많은 부분이 ‘제2의 노홍철’, ‘여자 노홍철’ 등으로 호명받은 이들이 공중파 진입에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어떻게 노홍철은 끝까지 살아남았는가 하는 점에 대한 고찰이었다. 필자는 이를 오리지널리티에서 오는 아우라의 문제와, 광대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중요한 조건인 ‘원래 이런 인간인가’ 하는 점의 문제로 압축해서 살펴볼 예정이었다.


그러나 위의 지적을 접하고 나서 스스로가 노홍철의 ‘계급적 안정성’ 에 대해 의도적으로 피해가며 서술하는 우를 범했다는 점을 발견했다. (아마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는 일이 두려웠기 때문이리라. 자칫 읽는 이들로 하여금 모종의 불편함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는 문제 아닌가.) ‘계급적 안정성’ 이란 말은 뭘까? 쉽게 말하면 ‘부잣집 아들로 어려움을 모르고 해맑게 자랐기에’ 아무에게나 들이댈 수 있다는 소리다. 이 지적은 매우 중요한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다름 아니라, 노홍철의 번잡스러움이 친구 하하나, 제2의 노홍철이라 불리우는 LJ(이주연 갑 엔터테인먼트 실장)와는 다르게 공중파에서 별 반감없이 소비될 수 있는 비밀 말이다.





필자는 이에 조심스러운 태도로 다시 한번 살펴보기로 한다. ‘부잣집 아들의 이미지’ 라는 지적에는, 그가 어려움을 모르고 풍족하게 자란 것처럼 보인다는 판단이 내포되어 있다. 실제 노홍철이 부잣집 아이이거나 아니거나 하는 문제와는 상관없이, 노홍철의 이미지를 우리가 소비할 때 우리는 그에게서 세상의 어려움을 맛보지 못 한 사람 특유의 밝고 쾌활한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다는 소리다. 그의 무례함에 남을 해하려는 악의가 없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그의 행동엔 가시가 서 있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다. 만일 필자가 “그 이야기는 그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죽어라 투쟁하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가져왔다는 식의 인상을 소비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고 주장한다면 지나친 비약인가? 그가 한 눈 팔지 않고 꾸준히 ‘즐거움’을 찾아 떠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즐거움 하나에만 몰두할 수 있는 계급적 기반이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은 – 필자가 보건데 – 유효한 구석이 있다. 필자는 끊임없이 ‘하바드 출신’ 이라거나, ‘순정만화 주인공’, ‘재벌 2세’ 등의 키워드가 담고 있는 부유한 이미지를 차용해서 (그것도 자기 것이 아닌 걸 빌려와서 자신의 것인양 과시하는!) 스스로를 과시하려고 하는 하하와는 달리, 노홍철이 이때까지 큰 거부감이나 큰 안티 없이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노홍철은 자신의 부나 성적을 과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그가 ‘과시하지 않아도 충분할’ 위치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편으론 이것은 노홍철의 ‘광대됨’에 큰 무기가 되었다. 세상 고난과 고통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듯한 천진함을 무기로 세웠던 광대들이 그 고난을 모른 척하는 쾌활함을 가장했던 것과는 달리, 노홍철에겐 애초에 ‘모른 척’ 해야 할 어려움의 흔적이 거세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종종 하하나 MC몽이 TV에 나와서 어려웠던 무명시절과 생계를 본인이 유지해야 했던 시절의 어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눈물짓는 것과는 달리, 노홍철이 어려웠노라 회상해야 하는 세월은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드러난 적이 없다. 노홍철은 어지간한 일에는 몸을 사리지 않는데, 이런 그의 과단성은 ‘어려움을 각오하고’가 아니라 ‘어려울 일이 없기 때문에’ 가능해 보인다. 즉, 그는 위기감에 있어서는 거의 무감각의 경지에 가깝다. 그 천성적인 무감각이 남들은 쉽게 할 수 없는 일들도 가능하게 했다. (이 천진할 정도로 대책없는 무감각이 가장 안 좋은 방향으로 작동한 경우를 우리는 이미 앞의 글에서 본 적이 있다. 그는 제 발로 이명박 ‘형님’을 찾아가서, 정치적 목적이 뻔히 보이는 만남 앞에서 ‘정치적으로 해석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을 하고야 말았다. 만약 그것이 정치적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면 그런 몇 마디 말로 그 만남의 정치색이 가려질 것이라 믿는 것이 무감각하기 짝이 없는 일일테고, 정녕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감각하다는 뜻일 것이다.)





박명수의 끊임없는 ‘거성’ 타령에 시청자들이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것은, 그 단어와 그의 추락하지 않으려는 몸부림 사이에서 보여지는 간극이 너무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그의 풍족하다 할 수 없을 시절을 목격한 시청자들은, 그의 몸부림과 호통과 절규가 사실 간만에 손에 쥔 행복을 놓치지 않으려는 자의 발작적인 허장성세라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신이 화면에 얼마나 오래 등장하는가에 민감하고, 집 평수나 직업적 위계와 같은 현실적 이슈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박명수는 실리 추구와 부에 대한 집착이 너무 솔직한 나머지 시청자들에게 황당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런 그 앞에서 끊임없이 깐죽거리는 노홍철은 자신의 던지는 재치있는 말들이 박명수에게 어떤 의미로 소비되는지 미처 다 헤아리지 못 하는 것처럼 보인다. (박명수가 실제로 겪었던 고난의 세계가 노홍철에게도 같은 실체로 다가올까, 아니면 고난의 ‘이미지’로만 소비될까?) 박명수가 어쩔 수 없는 현실세계에 등을 맞대고 있다면, 노홍철은 그러한 현실의 제약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고, 그는 그런 이유로 인해 잃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재롱을 부리는 ‘광대’ 의 자리에 올랐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




“광대됨”, 혹은 광대만들기


물론 위의 서술이 진실이 되려면 ‘모든 부잣집 아들들은 유쾌하고 명랑’ 해야 할 것이나, 우린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당장에 필자부터가 우울하고 낯가림이 심한 부잣집 아들이다. (많은 분들이 필자를 상당히 유쾌한 사람으로 오해하고 계신 것 같은데, 사실 필자는 그 누구보다 음울한 음지식물에 가까운 생명체이다. 필자의 ‘유쾌함’은 사실 ‘유쾌함에 대한 가장’ 내지는 ‘어떻게든 유쾌해져 보려는 안간힘의 흔적’이라고 읽을 때 진실성을 획득한다.) 노홍철은 분명 ‘부잣집 아들’ 치고도 돌연변이 같은 존재이다. 노홍철은 싸이가 특유의 계급성을 과시하면서 자신의 보수적인 시각을 양아치 어조로 담아낼 때의 미묘한 불쾌함이라거나, 박진영의 체화된 상류층의 예의 바름과 다분히 계산된 도발 같은 요소들을 지닌 캐릭터가 아니다. 그는 그저 구김살 없이 밝은 청년일 뿐이다. 번번히 강조하는 거지만, 위의 서술은 사실 실제의 노홍철이라는 개인이 어떤가에 대한 진술이라기보단 대중들이 노홍철에게서 어떤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는가에 대한 진술에 가깝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노홍철에게서 그가 뿜어내는 아우라의 이미지를 빨아먹고 있는 것이다.





논점은 이제 복잡한 ‘진실’과 ‘컨셉’의 문제가 된다. 당초 노홍철이 대중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었던 큰 요소 중 하나는 그의 번잡함과 넘치는 활력이 ‘컨셉’이 아닌 ‘실제’ 모습이라는 사실이다. 이상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연예인들의 ‘컨셉’ 차용에 대해서 부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는데, 대중에게 환상을 제공하고 그것으로 밥을 벌어먹고 사는 연예인들은 컨셉 없이 생존하기 어려운 존재다. 수많은 사람들이 ‘쟤 착해 보이는 거 컨셉이야. 뒤에 가면 엄청난 골초에다가 남자관계도 엄청 복잡하대. 가식스럽지 않니?’ 라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노홍철은 실제로도 속사포 같은 입을 지닌 쾌활한 청년이고, 실제의 삶과 방송의 삶이 둘이 아닌 노홍철에 대중들은 열광했다. (이것은 실제로도 착하기 그지 없다는 문근영에 대한 대중들의 열광과 궤를 같이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열광의 순간, 대중들은 노홍철에게 거대한 컨셉을 하나 뒤집어 씌우게 된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롭고 풍족하다’ 는 컨셉이다. 아무리 당대의 대중들이 진솔함을 덕목으로 친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열광하기 위해선 소비할 수 있는 컨셉이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아무 컨셉이 없이 있는 그대로 방송에 임하는 노홍철에게 대중들은 자신들이 소비할 수 있는 여유로움을, 구김살 없는 활력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풍족한 부의 이미지를 투영시켰다. 컨셉을 싫어한다던 대중들이 컨셉을 정해서 소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 사람이 스타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인맥이나 스스로의 재능만 가지고 가능한 일이 아니다. 흔히들 ‘운’으로 표현하는 건데, 사실은 그 사람의 언행과 매력이 당대의 시대정신과 부합하며 대중들의 집단 무의식을 자극했을 때 비로소 스타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예능계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지식담론의 세계에서도, 영화나 음악에서도, 심지어 패션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노홍철이 광대의 자리, 스타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단순히 노홍철이 경계를 넘나들며 권위를 조롱하기 때문 만은 아닐 것이다. 노홍철 이전에도 아슬아슬하게 경계선을 뛰어다니는 사람들은 많았다. 그런데 왜 유독 노홍철이냐는 말이다. 그건 분명 사람들이 – 글을 쓰는 필자 역시 – 권위에 대한 도전 그 이상을 노홍철에게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대중은 노홍철에게서 어떤 것을 보았기에 그렇게 노홍철에 열광하는 걸까. 바로 위에서 말한 그의 유복하고 여유로운, 세상 더 없이 즐거워 보이는 활력의 이미지, 그에 덧붙여 ‘나도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 라는 무의식의 선망이다.





노홍철은 자신의 부나 학력을 과시하지 않는 대신 스스로의 매력에 대해 항변하고, 타인을 공격하는 개그를 벌이면서도 절박함이 없이 여유롭다. 그 여유로움은 박명수가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뼛 속까지 밴 루저근성에서 오는 자포자기의 여유가 아니다. 분명 자신의 위치에 만족한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여유의 이미지가 노홍철에게 있고, 그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그는 기꺼이 광대가 되어 논다. 그러나 이 광대됨이 일이 아니라 오로지 스스로의 즐거움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질 때, 노홍철에게는 ‘가진 자의 여유’ 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지고, 사람들은 ‘무례하지 않은 여유로움’ 을 소비하며 내심 그와 같은 기반에 서서 스스로의 삶을 한없이 즐기고 싶어하는 욕망을 그를 통해 대리 충족하는 것이다.




점점 더 위험해지는 줄타기


문제는 노홍철에게 씌워진 이런 이미지가 그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때 벌어진다. 그가 뼈를 깎는 무명의 기간을 거쳐 온 박명수를 향해 무심코 ‘형님은 느릿느릿 이렇게 걸어온 거 아냐. 저는 정말 죽을 각오로 목에서 피가 날 정도로 열심히 했어요. 형님이 7년 동안 버신 걸 전 지난 1년 간 벌었고…’ 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그에게 투영된 계급적 이미지와 그 말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킨다. 이것이 <무한도전>이라는 꽁트 쇼의 일부분이라는 맥락을 지우고 바라보면, 결과는 즉각적인 불쾌함이 되어 날아온다. 최근 방영된 <무한도전> 정형돈 이사 편에서 몸이 안 좋은 어머니를 위해 이사를 하는 정형돈에게 ‘저 형은 봄 개편도 아닌데 이사를 하고 난리야’ 라고 이해하지 못 하겠다는 듯 말하는 순간, 사람들은 노홍철과 정형돈 사이에 놓여진 계층적 위계를 생각하게 된다. 노홍철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필자로서는 살필 수 없다. 하지만 한번 씌워진 이미지의 힘은 강력하고, ‘시청자들’ 은 그것을 그저 ‘별 생각 없이 한 말이겠지’ 라고 살펴서 이해해 줄 정도로 너그러운 집단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누차 이야기한 거지만 그가 안국포럼 사무실에 찾아가 이명박 앞에 앉아 특유의 미소를 지어 보일 때, 이명박이 대변하는 중산층의 기득권과 노홍철이 지닌 가진 자의 여유가 악수하는 듯한 착시를 보게 되는 것은 많은 이들에게 별로 달갑지 않은 체험이다. 그의 농담과 유머가 그에게 덧씌워진 이미지와 안 좋은 방향으로 만나는 순간,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실패하는 순간 대중은 그에게 등을 돌릴지도 모른다.


이런 모습이 더욱 위험하게 보이는 까닭은 그러거나 말거나, 정작 노홍철 본인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서다. <무한도전>은 날로 더욱 가학적인 쇼가 되어 가고 있다. 박으로 머리를 후려치지 않아도, 컨셉의 세계에 실제를 반영하며 묘한 긴장감을 즐기던 예전과는 달리 이제 서로 비난하고 헐뜯는 컨셉이 실제의 세계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무한도전>은 멤버들의 실제 일상까지 비난과 헐뜯음의 컨셉에 맞춰서 읽어내는, 상상을 초월한 폭력성을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획득해 버렸다. 마치 침대에 나그네를 눕혀 몸이 꼭 맞지 않으면 침대에 맞춰서 잘라냈다는 그리스 신화 속 프로크루테스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자극에 익숙해지면 더 센 자극으로 넘어가게 되어 있다. 시청자들도, 멤버들도, 자꾸 더 센 자극을 원하고 더 적나라한 모습을 원하게 된다. 모두가 점점 무감각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무한도전>에서는 자꾸만 노홍철에게 ‘비난의 꿈나무’ 라고 북돋우며 더욱 더 날 비린내 나는 멘트를 던질 것을 부추기고 있지 않은가.





이 칼럼에서 상당히 자주 등장하는 비유지만, 지금 노홍철이 타고 있는 외줄은 유달리 심하게 출렁거리고 있는 듯 싶다. 자칫하면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이 본인의 의도와는 달리 사회적 맥락 안에서 부정적인 뉘앙스로 읽힐 수도 있다는 걸 본인도 자각하고 있을까? 만일 이 위기를 노홍철이 잘 뛰어 넘는다면, 그것 또한 대단한 볼 거리일 것만은 사실이다. 1부에서 말했던 것과 같이 ‘천상 광대’로서 더 많은 이들에게 더 오래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발자국만 잘못 떼어도 천길 낭떠러지인 것이 외줄 타는 광대의 길 아닌가. 필자는 1부와 2부에 걸쳐 노홍철이라는 개인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용인되는가, 그가 용인될 수 있었던 사회적 맥락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찰했다. 연재 시간 순으로 나누어 보면 빛의 장과 어둠의 장으로 양분하여 살펴 본 셈이다. 필자는 기왕 올라탄 외줄, 그가 좀 더 오랜 시간 능수능란하게 외줄을 타주길 바란다. 그처럼 자유롭게 규율과 경계를 넘나드는 광대를 잃는다면 그것은 우리 시대의 손해다. 그 외줄 위에서 오래 버티기 위해서, 노홍철은 지금 자신이 한국 사회 안에서 어떤 맥락에서 소비되고 있는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광대가 거하는 자리. 축제의 자리.


무거운 이야기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데뷔 초 노홍철의 커리어를 쭉 살펴보면 일견 당연해 보이지만 한편으론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가 활약했던 무대들을 쭉 나열해본 뒤 겹치는 단어들을 모아보면 큼직한 키워드 몇 개를 얻을 수 있는데, ‘축제’, ‘페스티벌’, ‘파티’ 가 바로 그것이다. 박명수가 늘 지적하듯 ‘길바닥에서’ 시작한 그의 커리어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축제로 시작된 것이다. ‘길바닥에서’ 시작했다는 말은 뒤집어보면 어느 순간 어느 장소에서도 몸을 사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는 수많은 축제의 마당에서 거리낌 없이 스스로를 던져서 분위기를 띄우는 광대였고, 축제의 중심이었다. 어느 장소에서든 낯가림도 두려움도 없이 즐거움을 찾아서 올인하는 그의 성격이 축제의 유희성과 맞아 떨어진다는 점은 그의 ‘광대됨’을 더욱 강하게 증거하고 있다. 실제로 노홍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http://cyworld.com/hongchul)를 방문하면 제일 먼저 ‘아하하하하하! 내 인생은 늘 축제축제!’ 라고 쓰여진 홈페이지 제목이 방문자를 반긴다. 가발을 쓰고 한껏 웃으며 폴짝폴짝 뛰어 다니고 있는 프로필 이미지는 축제의 분위기를 달구는 어릿광대의 모습과 다름없다.


이 글의 제목인 ‘원한다면 얼마든지’ 는 사실 노홍철의 미니홈피에 실린 이 한 장의 사진에서 비롯되었다.





2005년 10월, 진주에 위치한 경상대학교 특강에서의 노홍철의 모습이다. 언뜻 보기에도 수천에 가까워 보이는 이 인파들을 앉혀놓고 그는 27년간의 자신의 생애에 대해서 2시간에 걸친 강의를 했다고 한다. 대단한 사업적 성공이나 학술적 성취를 거둔 것도 아닌, 그저 방송인에 불과한 스물 일곱의 그가, 수천의 20대 대학생들 앞에서 두 시간 동안이나 떠들어댔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생에 대해 확고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다. ‘나는 내가 너무나 사랑스럽다’고 자기 입으로 말하는 이 사내가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의 끝은 어디일까. 이 사진 아래 달린 쪽글은 다음과 같았다.


‘수천명이든 수억명이든, 원하면 끝까지.’


그야말로 대단한 자신감 아닌가. 누구든 자신을 원하면, 끝까지. 하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스믈스믈 밀려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대중들은 그에게서 ‘무엇’을 원하는가? 그래서 그 ‘끝까지’ 보여주었을 때, 대중들은 여전히 노홍철을 사랑할까? 노홍철은 발을 헛딛진 않을까? 1부에서 필자는 그가 도전할 권위는 앞으로도 많다고 말하며 글을 마친 바 있다. 필자는 그가 이렇게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신명을 다 해서 광대놀음을 하는 모습을 아주 오랫동안 지켜보고 싶다. 그가 좀 더 많은 축제의 자리에서 놀아주는 것을 보고 싶다. 그가 공격하고 도전하는 것이 그의 동료들과 스스로가 되지 않기를, 그 조롱의 대상이 더 많은 권위들이길. 부디 그가 외줄 위에서 다음 발자국을 신중하게 뗄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 : 이 글은 듀나게시판(
http://djuna.cine21.com/bbs/zboard.php?id=main)의 Cato님과 9님이 지적하신 논점에 적지 않은 부분을 빚지고 있음을 밝혀둡니다. 아이디어를 차용할 수 있도록 너그러이 허락해주신 두 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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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원한다면 얼마든지, 노홍철 : 1부. 규율을 넘나드는 광대

 










* 전체 분량이 예상보다 지나치게 길어져서 A4 10장을 가뿐하게 넘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관계로, 총 2회에 나눠서 업데이트가 되겠습니다. 한번에 다 올릴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많은 독자분들이 A4 3장만 넘어가도 ‘스크롤의 압박 때문에 다 못 읽겠다’ 는 반응을 보이시는 것을 감안해보면 시차를 두고 업데이트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2부는 4월 7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필자가 일 년 간의 외도를 끝내고 학교로 돌아가서 겪은 일 중 흥미로운 사건 하나를 들어 글을 시작해보도록 하자. 공강 시간을 때우기 위해 예술관 갤러리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복도 저 편에서 걸어오는 한 청년과 마주칠 일이 있었는데, 갑자기 이 청년이 필자에게 쪼르르 달려와 ‘안녕하십니까’ 하고 90도로 인사를 하고 가는 것 아닌가. 왜 이 청년은 생면부지의 필자를 보고 인사를 했을까. 예술대 학생들이 유달리 더 예의가 바르고 인사성이 좋아서? 그건 아닐 것이다. 연극영화나 무용학과의 경우, 다른 학과에 비해서 공동작업이 많다보니 선후배간의 단합이 강조되는 면이 있다. 이름과 얼굴을 빨리 익혀야 서로가 편해지는지라, 학년 초엔 가슴에 명찰을 달고 다니는 새내기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런 실질적인 필요성이 한국의 서열 문화와 만나면 ‘선배로 추측되는 모든 이들에게 90도로 인사하며 스스로를 어필하는’ 학생들이 탄생하는 것이다. 의견을 통일하고 공동작업의 방향성을 신속하게 정하기 위해 선후배 간의 규율을 강하게 단속하고, 후배들은 깍듯하게 ‘선배님’이란 존칭을 사용하며 ‘하십니까’, ‘아닙니다’ 등의 ‘다나까’ 어미를 사용하는 풍경은 한편으론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하다. 참 한국적인 풍경이라고 쓰면 애국심이 남다른 분들은 발끈하시겠지만, 필자가 보기엔 그렇다.

위의 경험에서 필자가 ‘한국 사회의 위계질서, 서열 문화의 보수성은 정말 견고하다’는 결론으로 곧바로 달려 간다면 동의하지 못 하실 분들이 계실 듯 하니 또 다른 이야기를 하나 더 얹어 보도록 하겠다. 한국 사회의 연령, 신분의 위계질서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 중엔 ‘지독하게 복잡한 한국어의 경어 체계’를 빼놓을 수 없다. 이에 대해 아주 소상하게 서술한 칼럼니스트 고종석씨의 근간 <바리에떼>의 일부분을 옮겨본다.

한국어 화자는 상대방과 자신의 위계를 미리 정하기 전에는 말을 걸 수가 없다. 한국어 경어 체계의 복잡함이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것은 용언의 종결형에서지만, 손아랫사람이나 허물없는 친구에게 말을 거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2인칭 대명사가 사실상 사용되지 않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학교문법에서의 설명과는 상관없이, 한국어의 2인칭 대명사는 구어의 수준에서는 실질적으로 ‘너(너희/너희들)’ 하나뿐이다. 약간의 높임을 지닌 대명사로 ‘당신’이 있기는 하지만, 이 말은 중년 이상의 부부 사이나 다소 긴장된 화용 공간에서만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학교문법의 설명을 믿고 아무에게나 ‘당신’ 이라고 했다가는 싸움 나기 십상이다. 한국어에서 존칭을 사용해야 할 대상에게는 2인칭 대명사의 자리를 제로zero 형태로 비워두거나, 연령적 가족적 직업적 신분적 위계를 표시하는 명사(선배님, 아버님, 국장님, 선생님) 또는 상대방의 이름(숙자씨)을 사용한다. 즉 3인칭을 2인칭으로 사용함으로써 직접성을 완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에 그 이름 뒤에 붙이는 접미사 ‘씨’가 점차 예사말의 뉘앙스를 띠게 돼, 높여야 할 자리에서는 함부로 사용할 수가 없다. 나이 차이가 꽤 나는 손윗사람을 면전에서 아무씨라고 지칭하면 상대방의 얼굴빛이 이내 어색해질 것이다.

(고종석. <바리에떼>. p155~156)
상대와 스스로의 위계를 정하지 않으면 말을 꺼낼 수 없다는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영어의 ‘you’의 경우 지위고하에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는 호칭이고, 불어의 ‘vous/tu’의 구분은 그저 격식을 차려야 하는 생면부지의 남인가 혹은 격식을 크게 차릴 필요가 없는 면식이 있는 사람인가를 구분해 줄 뿐이다. 그러나 한국어에서는 어미의 뉘앙스에 따라 세세하게 구분을 하는 정도를 넘어서, 상대방을 부를 때 사용하는 호칭을 둘러 싼 겹겹의 위계질서가 화자의 목을 죈다. 단순 연령의 서열을 넘어서서, 상대방의 신분적 위계를 살펴서 호칭을 구분해 줌으로써 상대의 체면을 세워주고 권위를 존중해 주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싸움에 휘말리게 된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간신히 용언의 종결형의 미묘한 구분을 가릴 수 있게 된 후에도 종종 말실수를 하게 되는 것은 상대를 부르는 호칭의 그 복잡미묘함을 다루는 일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한국어가 달리 배우기 어려운 언어가 아니다. 언어가 그 사회의 풍경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현대 한국어는 분명 현대 한국 사회의 보수성을 반증하고 있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 쯤 되면 독자 여러분들은 아마 궁금하실 것이다. 어째서 노홍철에 대한 글을 쓰겠다면서 이렇게 사설이 길고 장황한 것인지 말이다. 이에 필자는 노홍철의 2004년 MBC 방송연예대상 쇼 버라이어티 부문 남자 신인상 수상 소감으로 설명을 대신하려고 한다.

‘어우, 정말로 상상도 못 했고요. 제가 알아요. (제가) 한국 정서에 잘 맞지 않는 캐릭터라는 걸 제가 잘 아는데, 저를 받아 들여준 MBC에 감사하고요.’

‘한국 정서에 맞지 않는 캐릭터’ 라. 노홍철의 캐릭터는 상대방에게 무장해제를 요구한다. 요란한 헤어스타일과 수염. 현란한 옷차림과 쉴 틈없이 떠들어대는 ‘퀵마우스’. 그리고 누구든지 초면에 ‘형님’, ‘누나’, ‘우리는 친구’라고 외치며 달려드는 무시무시한 친화력 앞에서 뻣뻣하게 굳어버린다면 그대로 ‘권위적인 사람’이 되기 십상, 같이 입을 벌리고 손바닥을 펼쳐보이거나 최소한 유쾌하게 웃어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위 아래를 크게 가리지 않고, 초면인 사람에게 낯가림을 부릴 여유를 주지 않는 노홍철의 캐릭터는 위계서열과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선 (어떤 의미에선) 위협적인 존재일 수 있다. 학교나 사회에서 우리는 처음 보는 사람이 ‘형님’, ‘누나’ 하면서 달려들어 말꼬리를 툭툭 놓고 어리광을 피우는 것을 용인하지 않지만, 브라운관 속에서 노홍철이 온갖 경계를 넘나드는 것은 유쾌하게 바라본다. 후배들에게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안녕하십니까’ 하고 깍듯하게 인사하기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노홍철이 초면의 – 게다가 친구 아버지이고, 다 떠나서 한국 축구 역사의 살아있는 신화인 – 차범근에게 두 팔을 벌리고 다가가 덥석 끌어 안으며 ‘야아아아~ 형님~ 반가워 반가워’ 라고 말했다는 일화를 들으며 폭소를 터뜨리는 광경.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노홍철에게 ‘형님’ 소리를 들은 것이 어디 차범근 뿐이겠는가. 그는 MBC 예능국장에게도 ‘형님’ 이라고 부르고, 디자이너 앙드레 김과 함께 찍은 사진을 미니홈피에 올려놓고 ‘봉남이 형님과 함께’ 라고 제목을 적어 넣는다. 그에게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일단 ‘형님’이다. 급기야는 (당시) 서울 시장이자 차기 대권후보인 이명박 앞에 가서도 ‘형님’ 이라는 말이 튀어 나오는 걸 주체하지 못했다. (물론 영리한 정치가인 이명박은 그에게 ‘자네는 이미 내 동생이니 언제 차나 한잔 하세’ 라고 화답하며 쿨한 이미지를 어필했고, 최근 노홍철은 ‘형님’ 이명박의 사무실로 찾아가서 이명박의 저서들을 선물 받았다.) 친구 하하의 집을 제 집처럼 드나 드는가 하면, 처음 보는 친구 어머니에게 대뜸 ‘엄마! 엄마!’ 라고 부르며 어린 아이처럼 애교를 부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기가 막힐 지경이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당혹스러워 하는 청자들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친해지고 싶어서’ 라고 간단하게 대답한다. 그에게 한국어의 복잡한 호칭 체계와 한국 정서가 요구하는 예법은 한없이 무의미에 가깝다.






한국 정서에 잘 안 맞는 캐릭터라고 자인하던 그는 자신이 오늘날의 위치에 오를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을까. 과연 누가 <놀러와>에서 ‘근본이 없다’는 소리를 듣던 바람잡이 파이팅맨이 소녀 떼를 운운할 수 있을 정도로 거물이 되리라고 ‘상상’ 이나 했을까. 대한민국 예능계 족보에 전에 없던 이 정신 산란한 노란 머리 사내는 그간 수많은 경로로 우리를 찾아왔다. 대한민국 버라이어티 쇼의 터줏대감 <일밤>에서 신동엽과 애보기를 하는가 하면, 종종 놀림감이 되긴 하지만 짧게나마 라디오 DJ 생활을 하면서 목에서 피를 토하기도 했다. 공중파 나들이의 시작점 <놀러와>, 대한민국 예능계의 전무후무한 괴물 <무한도전>, KBS <해피 선데이 – 쾌남시대>까지 금-토-일 저녁 버라이어티를 넘나드는 노홍철은 아직까진 소진되지도, 식상해지지도 않은 듯 하다. 선배들을 조롱하고 아무에게나 말을 트고 달려드는 그의 광대놀음은 오히려 날이 갈 수록 더 독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 제기를 고종석씨의 책에서 빌어왔던 것처럼, 답을 찾을 수 있는 근거 역시 남의 책에서 빌어와 보자. 칼럼니스트 진중권씨의 책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에서 광우(狂愚)에 대한 대목을 잠시 옮겨보자면,
중세에 광우는 외려 지혜로움의 징표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발달한 헬레니즘의 세속적 똑똑함에 사도 바울로는 복음서의 어리석음을 대립시키며 이르기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고린도전서> 3장 18절)
(중략) 고대에 광우는 신성한 존재로 여겨졌다. 에라스무스의 책에 인용된 호라티우스가 이르기를, “그대의 생각에 약간만 광기를 섞으라. 알맞게 헛소리를 함은 즐겁도다.”라고 하였다. 중세만 해도 광우는 경외의 대상으로 일상의 일부였다.

(중략)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의 왕궁에는 광우가 있었다. 궁정의 바보는 왕의 권위를 조롱하고 그의 권세의 무상함을 노래하는 광대였다. 왕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는 그들의 무례함은 선천적 정신박약의 탓으로 여겨져 너그럽게 용서되었다. 후천적 광우들, 즉 일부러 미친 척을 하는 훗날의 광대들은 광우에게서 이 발언의 자유를 물려받는다.

(진중권.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p57~58)
세상 최고의 자리에 앉은 왕까지 마음껏 희롱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광대의 존재를 우리는 영화 <왕의 남자>를 통해 만난 바 있다. (물론 우리 나라 역사를 뒤져서 궁중 광대가 있었다는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 딱 한 줄, 공길에 대한 언급 뿐이지만 말이다.) 중세 시대 궁중에서 왕에게 함부로 막말을 하고 조롱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광대였고, 제 아무리 폭군이라 하더라도 멋대로 광대를 죽이는 것은 옹호받지 못 할 금기에 가까웠다. 바보를 자처함으로써 이성의 규율에서 벗어나 세상의 예법을 무시하고 권위를 조롱하는 광대, 어찌 보면 그들은 지금의 예능인들의 선조 아닌가. 그렇다. 필자는 이 글에서 노홍철의 자유분방함이 공중파에서 허용되는 까닭으로 그의 ‘광대근성’을 지목하려 한다. ‘광대’ 라는 말이 주는 어감에 반감을 가지실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많은 예능인들이 스스로 광대를 자처하며 그 단어에 자부심까지 느끼는 걸 감안하면 노홍철을 ‘광대’라 칭하는 것이 그리 심한 결례는 아닐 듯 싶다. 물론 나 역시 이 단어에 존경과 경외의 의미를 담뿍 담아서 사용할 생각이다. 우리 인생에서 광대가 없다면 누가 우리 대신 울고 웃어주겠는가.






거푸 얘기하고 있는 거지만, 노홍철의 첫 인상은 ‘정신없음’ 이다. 온 몸을 휘감고 있는 요란한 의상. 말장화와 딱 붙는 바지에 요란한 프린트의 티셔츠를 걸치고 치렁치렁한 스카프를 두르고, 염색한 머리는 곱게 땋아서 고개를 돌릴 때마다 따라서 흔들거리게 늘어뜨린 노홍철을 처음 보고 ‘참 차분한 젊은일세’ 라고 생각할 사람은 아마 극히 드물 것이다. 실제로 그가 처음 데뷔했을 때 가장 많이 등장했던 자막은 ‘말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는 담당 PD들의 토로였고, 툭하면 ‘공중파가 아직 낯설어서’ 라는 핑계를 대며 그의 번잡스러움에 대한 면죄부를 구하곤 했다. 대다수의 시청자들도 처음엔 ‘왠 이상한 놈이 뜨려고 온갖가지 컨셉으로 들이민다’ 고 투덜대며 그에게 비호감 딱지를 붙이려 했었다. 그러나 그와의 친분을 자랑하는 수많은 연예인들이 연이어 증언하기 시작하며 이야기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 놈은 컨셉이 아니라 원래 삶이 이래요’ 라는 증언 앞에서 ‘뜨려고 환장한 놈’ 은 ‘인생 자체가 정신나간 유쾌한 놈’ 으로 소비되기 시작한 것이다. 담당 PD들은 그의 말을 일일이 다 옮기는 대신 X(곱하기)2, X3 같은 기호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의 번잡스러움에 대한 변명도 조금씩 자취를 감췄다. 노홍철이 공중파에 길들여진 것이 아니라, 공중파가 그에게 문호를 열게 되었다.






“군대에 가면 내가 바뀔 줄 알았는데, 되려 내가 군대를 바꿨다.”


물론 노홍철은 바보가 아니다. 조증 환자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세간의 기준으로 봤을 때 ‘미친’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소위 말하는 ‘진취적인 젊은이’ 에 가깝다. 두 번이나 토익 시험 만점을 획득할 정도로 머리가 비상한 그는, 서른도 채 안 된 나이에 혼자 뚝딱거리며 쇼핑몰을 만들어 운영했고 배편으로 중국을 오가는 관광회사를 차려 사장 노릇까지 했을 정도로 자신감과 도전 정신에 가득 차 있는 사람이다. 노홍철은 그저 자신의 기준에 맞춰 즐겁게, 멋지게 살려는 사람일 뿐이다. 그것은 “If it’s Not Fun, Why do it?” 이라는 좌우명이 말하는 것처럼 즐거움이라는 잣대로 삶을 꾸리는 노홍철의 존재미학이다. 그는 자신이 세워놓은 미적 기준에 맞춰서 집안의 인테리어와 물건의 배치를 통제하고 자신과 자기 소유의 물건들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을 즐기며 그 과정에서 남의 눈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눈을 두려워하고, 패션조차 남들과 발맞춰 유행을 따라가지 않으면 낙오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한국 사회에서 그런 노홍철의 존재미학은 자칫 ‘미친 놈’ 내지는 ‘돌아이’ 처럼 보일 공산이 크다. 집단의 규율에 맞추지 못 하는 사람을 우리가 흔히 ‘사회 부적응자’ 로 분류하고 낙오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런 시선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노홍철의 천성은 마치 중세의 광우가 그랬던 것처럼 너그러운 용서의 대상이 된다. ‘원래 그런 놈’ 에게 사회화를 요구하는 법은 없지 않은가. 아이러니하게도 노홍철의 존재미학과 한국 사회가 빚어내는 갈등의 양상이, 노홍철에게 한국 사회의 규율과 금기를 마음껏 뛰어넘을 수 있는 황금티켓을 선사한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그에게 얌전해질 것을, 사회의 예법을 따를 것을, ‘사회화’ 될 것을 바라지 않는다. 노홍철 앞에서 만인은 ‘형님, 누나, 친구, 소녀’ 로 분류되고, 사람들은 그 과격한 분류법 앞에 기막혀 하면서도 은근히 그가 또 다른 권위 앞에서 기죽지 않고 ‘형님’ 이라고 외치길 기대한다. 그의 ‘형님’ 이란 말 속엔 한국의 위계 서열 문화의 변종인 조폭 문화의 기운이 거세되어 있다. 최민수와 이훈이 형님 동생 하며 호칭을 나눌 때의 그 미묘하지만 분명한 계층 구도가 노홍철의 ‘형님’ 엔 없다. 유재석과 박명수에게 ‘형님’ 이라고 부르면서도 언제든지 그들을 향해 비아냥과 조롱을 날릴 준비가 되어 있는 노홍철의 화법 속엔 위계 서열의 기운이 깨끗하게 사라져 있다. 시청자들은 그의 천성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그가 자신의 천성대로 놀아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의 무례함과 버릇없음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철저하게 ‘재미 있자고’ 벌이는 유희의 도구일 뿐이지만, 보는 이들은 이미 그를 통해 한국 사회의 숨막히듯 철저한 위계 서열의 규율을 넘나드는 쾌감을 맛보기 시작했다. 노홍철이 아무에게나 ‘형님’ 이라고 부르며 안길 수 있는 것은 – 그런 시선을 받게 된 것이 노홍철 본인의 의사건 아니건 간에 – 이미 사회에서 그가 광대로 공인받았다는 증거다. 공중파 데뷔 3년차, 아직 도전할 권위들은 많다. 광대로서의 노홍철의 커리어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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