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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志] 정사 위서 하후연전

夏侯淵字妙才, 惇族弟也. 太祖居家, 曾有縣官事, 淵代引重罪, 太祖營救之, 得免. [一]太祖起兵, 以別部司馬、騎都尉從, 遷陳留、潁川太守. 及與袁紹戰於官渡, 行督軍校尉. 紹破, 使督兗、豫、徐州軍糧;時軍食少, 淵傳饋相繼, 軍以復振. 昌狶反, 遣于禁擊之, 未拔, 復遣淵與禁幷力, 遂擊狶, 降其十餘屯, 狶詣禁降. 淵還, 拜典軍校尉. [二]濟南、樂安黃巾徐和、司馬俱等攻城, 殺長吏, 淵將泰山、齊、平原郡兵擊, 大破之, 斬和, 平諸縣, 收其糧穀以給軍士. 十四年, 以淵爲行領軍. 太祖征孫權還, 使淵督諸將擊廬江叛者雷緖, 緖破, 又行征西護軍, 督徐晃擊太原賊, 攻下二十餘屯, 斬賊帥商曜, 屠其城. 從征韓遂等, 戰於渭南. 又督朱靈平隃糜、汧氐. 與太祖會安定, 降楊秋.

[一]魏略曰:時兗、豫大亂, 淵以饑乏, 棄其幼子, 而活亡弟孤女.

[二]魏書曰:淵爲將, 赴急疾, 常出敵之不意, 故軍中爲之語曰:「典軍校尉夏侯淵, 三日五百, 六日一千.」

하후연夏侯淵의 자字는 묘재妙才이고 하후돈의 집안동생(族弟)이다. 태조(=조조)가 고향집에 있을 때 일찍이 현의 관리에게 일을 저질렀는데 하후연이 중죄를 대신 떠맡았고 태조가 방책을 내어 그를 구하여 죄를 면한 적이 있다. [1]

[1] [위략魏略]에서 이르길, 연주, 예주에 대란이 일었을 때, 하후연은 기근 때문에 어린 아들을 버렸으나 죽은 아우의 딸은 살렸다.

태조가 군을 일으키자 별부사마別部司馬, 기도위騎都尉로 삼아 수행했고 진류, 영천 태수로 승진했다. 원소와 관도官渡에서 싸울 때는 독군교위督軍校尉의 직을 맡았다. 원소가 격파되자 연주, 예주, 서주徐州의 군량을 감독했는데 식량이 모자랄 때 하후연이 계속 군량을 이어서 보내주어 군이 다시 분발할 수 있었다.

창희昌狶가 모반하자 우금于禁을 보내 공격하게 했는데 이기지 못하자 다시 하후연을 보내 우금과 힘을 합치게 했다. 마침내 창희를 공격하여 10여 둔영을 항복시켰고 창희는 우금에게 나아가 투항했다. 하후연이 돌아오자 전군교위典軍校尉에 임명했다.[2]

[2] [위서魏書]에서 이르길, 하후연은 장수가 되어 행군이 매우 빨라 항상 적이 예상치 못한 곳에 나타났으므로(出敵之不意) 군중에서 이를 두고 말하길, “전군교위 하후연은 3일에 5백리, 6일에 천리를 간다”고 했다.

제남(濟南-청주 제남국), 낙안(樂安-청주 낙안국)의 황건적 서화徐和, 사마구司馬俱 등이 성을 공격하여 관원을 살해했다. 하후연이 태산(泰山-연주 태산군), 제(齊- 청주 제국), 평원(平原-청주 평원군)의 군사들을 이끌고 공격하여 대파하고 서화를 참수하여 여러 현들을 평정했고 그들의 양곡을 거두어 군사들에게 공급했다.

건안 14년(209년), 하후연을 행령군行領軍으로 임명했다. 태조가 손권을 정벌하고 돌아올 때 하후연으로 하여금 제장들을 지휘해 여강廬江에서 반란을 일으킨 뇌서雷緖를 공격케 했다. 뇌서를 깨뜨리자 또 정서호군征西護軍으로 서황徐晃을 지휘해 태원太原의 도적을 공격했는데, 20여 둔영을 함락시키고 도적의 우두머리 상요商曜를 참수하고 그 성을 도륙했다.

한수를 정벌하는데 수행하여 위남渭南에서 싸웠으며 주령朱靈을 이끌고 유미隃糜, 견저汧氐를 평정했다. 태조와 안정安定에서 만나 양추楊秋를 항복시켰다.

十七年, 太祖乃還鄴, 以淵行護軍將軍, 督朱靈、路招等屯長安, 擊破南山賊劉雄, 降其衆. 圍遂、超餘黨梁興於鄠, 拔之, 斬興, 封博昌亭侯. 馬超圍涼州刺史韋康於冀, 淵救康, 未到, 康敗. 去冀二百餘裏, 超來逆戰, 軍不利. 汧氐反, 淵引軍還.

건안 17년(212년), 태조가 업으로 돌아갈 때 하후연을 행行 호군장군護軍將軍으로 삼아 주령, 노초路招 등을 지휘해 장안에 주둔케 했다. 남산南山의 도적 유웅劉雄을 격파하고 그 무리들의 항복을 받았다.

한수, 마초의 잔당인 양흥梁興을 호(鄠-사례주 우부풍 호현)에서 포위하여 무찌르고 양흥을 참수하고 박창정후博昌亭侯에 봉해졌다.

마초가 양주자사 위강韋康을 기(冀-양주 천수군 기현)에서 포위하자 하후연이 위강을 구원하려 했는데, 도착하기 전에 위강이 패했다. 기성에서 2백 여 리 떨어진 곳까지 마초가 와서 이에 맞서 싸웠는데 군이 불리했고 견저汧氐가 모반하자 하후연은 군을 이끌고 퇴각했다.

十九年, 趙衢、尹奉等謀討超, 姜敍起兵鹵城以應之. 衢等譎說超, 使出擊敘, 於後盡殺超妻子. 超奔漢中, 還圍祁山. 敘等急求救, 諸將議者欲須太祖節度. 淵曰:「公在鄴, 反覆四千裏, 比報, 敘等必敗, 非攻急也.」遂行, 使張郃督步騎五千在前, 從陳倉狹道入, 淵自督糧在後. 郃至渭水上, 超將氐羌數千逆郃. 未戰, 超走, 郃進軍收超軍器械. 淵到, 諸縣皆已降.

건안 19년(214년), 조구趙衢, 윤봉尹奉 등이 마초 토벌을 도모하자 강서姜敍가 노성鹵城에서 군을 일으켜 이에 호응했다. 조구 등이 마초를 속여 성을 나가 강서를 공격하게 한 뒤 마초의 처자를 모두 죽였다.

마초는 한중으로 달아났다가 다시 돌아와 기산祁山을 포위했다. 강서 등이 급히 구원을 요청했는데 여러 장수들이 의논하기를 태조의 절도節度를 기다리자고 했다. 하후연이 말했다, “공(=위공 조조)께서는 업에 계시니 왕복하는데 4천리 길이오. 회답에 따르려 하다가는 강서 등은 필시 패할 것이니 급히 공격해야 하오.”

마침내 이를 실행해 장합에게 보기 5천을 주어 선두에 서서 진창陳倉의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가게 하고 하후연 자신은 군량을 감독하며 후미에 있었다. 장합이 위수 가에 도착하자 마초가 강족과 저족 수천 명을 이끌고 장합에 맞섰다. 싸우기도 전에 마초가 달아나니 장합은 진군하여 마초군의 무기를 거두었다. 하후연이 도착했을 때는 여러 현들이 이미 다 항복한 상태였다.

韓遂在顯親, 淵欲襲取之, 遂走. 淵收遂軍糧, 追至略陽城, 去遂二十餘裏, 諸將欲攻之, 或言當攻興國氐. 淵以爲遂兵精, 興國城固, 攻不可卒拔, 不如擊長離諸羌. 長離諸羌多在遂軍, 必歸救其家. 若捨羌獨守則孤, 救長離則官兵得與野戰, 可必虜也. 淵乃留督將守輜重, 輕兵步騎到長離, 攻燒羌屯, 斬獲甚衆. 諸羌在遂軍者, 各還種落. 遂果救長離, 與淵軍對陳. 諸將見遂衆, 惡之, 欲結營作塹乃與戰. 淵曰:「我轉鬥千裏, 今復作營塹, 則士衆罷弊, 不可久. 賊雖衆, 易與耳.」乃鼓之, 大破遂軍, 得其旌麾, 還略陽, 進軍圍興國. 氐王千萬逃奔馬超, 餘衆降. 轉擊高平屠各, 皆散走, 收其糧穀牛馬. 乃假淵節.

한수는 현친(顯親-양주 천수군 현친현)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하후연이 공격하려 하자 달아났다. 하후연은 한수의 군량을 거두고 추격하여 약양성(略陽城-양주 천수군 약양현)에 이르렀고 한수와 20리 떨어져 있었다. 제장들이 이를 공격하고자 했는데 어떤 이가 말하길 마땅히 흥국성興國城의 저족氐族을 공격해야 한다고 했다.

하후연이 말했다, “한수의 군사가 정예하고 흥국성이 견고하므로 공격하여 급히 함락시킬 수 없으니 장리長離의 여러 강족羌族들을 공격하는 것이 더 나은 계책이오. 장리의 강족들 다수가 한수군에 있으므로 필시 돌아가 자신의 가족을 구원하려 할 것이오. (한수가) 만약 강족을 포기하고 홀로 지키면 고립될 것이고, 장리를 구원하고자 하면 관병官兵과 들판에서 싸워야 하니 반드시 사로잡을 수 있소”

이에 하후연은 독장督將을 남겨 치중(輜重-군수물자)을 지키게 하고 경무장한 보병과 기병(輕兵步騎)으로 장리에 이르러, 강족의 둔영을 공격해 불태우고 많은 수의 무리들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한수의 군중에 있던 강족들은 각기 자신들의 종족의 부락으로 돌아가니 과연 한수는 장리를 구원하였고 하후연 군과 진영을 벌여 대치했다.

제장들이 한수의 병력이 많음을 보고 이를 꺼려 영채를 구축하고 참호를 만든 뒤 싸우려 하자 하후연이 말했다, “내가 천리를 이어 싸워왔는데 지금 다시 영채와 참호를 만들면 병졸들이 피로해지니 오래 견딜 수 없소. 적이 비록 그 숫자가 많으나 쉬운 상대일 뿐이오.”

그리고는 북을 울리며 진격해 한수군을 대파하고 대장기를 빼앗아 약양으로 돌아왔다. 진군하여 흥국성을 포위하자 저족의 왕 천만千萬은 마초에게로 달아나고 남은 무리들은 투항했다.

군을 돌려 고평(高平-양주 안정군 고평현)의 도각(屠各-흉노의 일족)을 공격하니 모두 흩어져 달아났고 그들의 양곡과 우마를 거두었다. 이에 하후연에게 절節을 내렸다.

初, 枹罕宋建因涼州亂, 自號河首平漢王. 太祖使淵帥諸將討建. 淵至, 圍枹罕, 月餘拔之, 斬建及所置丞相已下. 淵別遣張郃等平河關, 渡河入小湟中, 河西諸羌盡降, 隴右平. 太祖下令曰:「宋建造爲亂逆三十餘年, 淵一擧滅之, 虎步關右, 所向無前. 仲尼有言:『吾與爾不如也.』」

당초 포한(枹罕-양주 농서군 포한현)의 송건宋建이 양주涼州의 혼란을 틈타 하수河首 평한왕平漢王을 자칭했었다. 태조는 하후연을 보내 제장들을 지휘해 송건을 공격하게 했다. 하후연이 포한에 도착해 포위한 지 한 달 남짓 만에 이를 함락시키고 송건과 그가 두었던 승상 이하 관원들을 참수했다.

하후연은 별도로 장합 등을 보내 하관(河關-양주 농서군 하관현)을 평정하고 황하를 건너 소황小湟으로 들어가자 하서河西의 강족들이 모두 항복하여 농우隴右가 평정되었다.

태조가 조령을 내려 말했다, “송건이 처음 반역한 지 30여 년인데 하후연이 일거에 섬멸하였고 관우(關右=관서)를 호보(虎步-호랑이처럼 위풍당당한 걸음)하니 그가 향하는 곳에 앞을 가로막을 자가 없었다. (虎步關右 所向無前) 중니(仲尼=공자)가 ‘나도 너와 함께 (안회에) 미치지 못한다’라 한 적이 있도다”

(참고-[논어] 공야장(公冶長) 편에 나오는 고사입니다. 공자가 제자인 자공에게, 안회와 자공 자신과 비교하면 어떠냐고 묻자,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깨우치니(聞一知十) 자신이 미치지 못한다고 대답하자, 공자가 너뿐만 아니라 나 또한 안회에 미치지 못한다 하며 안회를 극찬한 대목, 즉 여기서는 조조 자신=공자, 하후연=안회에 비유하여 하후연의 용병술을 극찬하는 의미입니다. 물론 공을 치하하고 격려하는 발언으로서 일종의 립서비스 성격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겠지요)

二十一年, 增封三百戶, 幷前八百戶. 還擊武都氐羌下辯, 收氐穀十餘萬斛. 太祖西征張魯, 淵等將涼州諸將侯王已下, 與太祖會休亭. 太祖每引見羌、胡, 以淵畏之. 會魯降, 漢中平, 以淵行都護將軍, 督張郃、徐晃等平巴郡. 太祖還鄴, 留淵守漢中, 卽拜淵征西將軍. 二十三年, 劉備軍陽平關, 淵率諸將拒之, 相守連年. 二十四年正月, 備夜燒圍鹿角. 淵使張郃護東圍, 自將輕兵護南圍. 備挑郃戰, 郃軍不利. 淵分所將兵半助郃, 爲備所襲, 淵遂戰死. 諡曰湣侯.

건안 21년(216년), 식읍 3백 호를 더 늘려주어 이전과 아울러 8백 호가 되었다. 돌아와 무도武都의 저족과 강족을 하변(下辯-양주 무도군 하변현)에서 공격하여 저족의 양곡 10여 만 곡斛을 거두어들였다.

태조가 서쪽으로 장로를 정벌할 때 하후연 등은 양주의 제장들과 후왕侯王 이하 관원들을 이끌고 휴정休亭에서 태조와 합류했다. 태조가 매번 강족과 호인(胡人-흉노)들을 접견할 때마다 하후연으로 그들을 두렵게 했다.

장로가 항복하고 한중이 평정되었을 때 하후연을 행行 도호장군都護將軍으로 삼아 장합, 서황 등을 지휘해 파군巴郡을 평정케 했다. 태조가 업으로 돌아갈 때 하후연을 남겨 한중을 지키게 하고 하후연을 정서장군征西將軍에 임명했다.

건안 23년(218년), 유비가 양평관陽平關에 주둔하자 하후연들이 제장들을 이끌고 이에 맞섰는데 서로 지키면서 해를 넘겼다.

건안 24년(219년) 정월, 유비가 밤에 녹각鹿角을 불사르며 포위하자 하후연이 장합에게 동쪽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경병輕兵을 이끌고 남쪽을 지켰다. 유비가 장합에 싸움을 걸었는데 장합군이 불리했다. 하후연은 지휘하던 병력의 절반을 나누어 장합을 돕게 했는데 유비의 습격을 받아 마침내 하후연이 싸우다 죽었다. 시호를 내려 민후愍侯라 했다.

初, 淵雖數戰勝, 太祖常戒曰:「爲將當有怯弱時, 不可但恃勇也. 將當以勇爲本, 行之以智計;但知任勇, 一匹夫敵耳.」

당초, 하후연이 비록 여러 차례 싸움에서 이겼으나 태조가 늘 경계하여 말했었다, “장수가 되어 마땅히 겁을 내고 나약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고 항상 용맹에만 의지해서는 안되오. 장수는 본래 용맹을 근본으로 삼으나 이를 실행함에는 지모와 계책을 써야 하는 법이오. 오직 용맹만을 알고 그것에만 의지한다면 일개 필부에 대적할 수 있을 뿐이오.”

淵妻, 太祖內妹. 長子衡, 尙太祖弟海陽哀侯女, 恩寵特隆. 衡襲爵, 轉封安寧亭侯. 黃初中, 賜中子霸, 太和中, 賜霸四弟, 爵皆關內侯. 霸, 正始中爲討蜀護軍右將軍, 進封博昌亭侯, 素爲曹爽所厚. 聞爽誅, 自疑, 亡入蜀. 以淵舊勳赦霸子, 徙樂浪郡. [一]霸弟威, 官至兗州刺史. [二]威弟惠, 樂安太守. [三]惠弟和, 河南尹.[四]衡薨, 子績嗣, 爲虎賁中郎將. 績薨, 子褒嗣.

[一]魏略曰:霸字仲權. 淵爲蜀所害, 故霸常切齒, 欲有報蜀意. 黃初中爲偏將軍. 子午之役, 霸召爲前鋒, 進至興勢圍, 安營在曲穀中. 蜀人望知其是霸也, 指下兵攻之. 霸手戰鹿角間, 賴救至, 然後解. 後爲右將軍, 屯隴西, 其養士和戎, 並得其歡心. 至正始中, 代夏侯儒爲征蜀護軍, 統屬征西. 時征西將軍夏侯玄, 於霸爲從子, 而玄於曹爽爲外弟. 及司馬宣王誅曹爽, 遂召玄, 玄來東. 霸聞曹爽被誅而玄又徵, 以爲禍必轉相及, 心旣內恐;又霸先與雍州刺史郭淮不和, 而淮代玄爲征西, 霸尤不安, 故遂奔蜀. 南趨陰平而失道, 入窮穀中, 糧盡, 殺馬步行, 足破, 臥巖石下, 使人求道, 未知何之. 蜀聞之, 乃使人迎霸. 初, 建安五年, 時霸從妹年十三[四], 在本郡, 出行樵採, 爲張飛所得. 飛知其良家女, 遂以爲妻, 産息女, 爲劉禪皇后. 故淵之初亡, 飛妻請而葬之. 及霸入蜀, 禪與相見, 釋之曰:「卿父自遇害於行閒耳, 非我先人之手刃也.」指其兒子以示之曰:「此夏侯氏之甥也.」厚加爵寵.

[二]世語曰:威字季權, 任俠. 貴歷荊、兗二州刺史. 子駿, 幷州刺史. 次莊, 淮南太守. 莊子湛, 字孝若, 以才博文章, 至南陽相、散騎常侍. 莊, 晉景陽皇后姊夫也. 由此一門侈盛於時.

[三]文章敍錄曰:惠字稚權, 幼以才學見稱, 善屬奏議. 歷散騎黃門侍郎, 與鍾毓數有辯駁, 事多見從. 遷燕相、樂安太守. 年三十七卒.

[四] 世語曰:和字義權, 淸辯有才論. 歷河南尹、太常. 淵第三子稱, 第五子榮. 從孫湛爲其序曰:「稱字叔權. 自孺子而好合聚童兒, 爲之渠帥, 戱必爲軍旅戰陳之事, 有違者輒嚴以鞭捶, 衆莫敢逆. 淵陰奇之, 使讀項羽傳及兵書, 不肯, 曰:『能則自爲耳, 安能學人?』年十六, 淵與之田, 見奔虎, 稱驅馬逐之, 禁之不可, 一箭而倒. 名聞太祖, 太祖把其手喜曰:『我得汝矣!』與文帝爲布衣之交, 每讌會, 氣陵一坐, 辯士不能屈. 世之高名者多從之遊. 年十八卒. 弟榮, 字幼權. 幼聰惠, 七歲能屬文, 誦書日千言, 經目輒識之. 文帝聞而請焉. 賓客百餘人, 人一奏刺, 悉書其鄕邑名氏, 世所謂爵裏刺也, 客示之, 一寓目, 使之遍談, 不謬一人. 帝深奇之. 漢中之敗, 榮年十三, 左右提之走, 不肯, 曰:『君親在難, 焉所逃死!』乃奮劍而戰, 遂沒陳.」

하후연의 처는 태조의 처제이다. 큰 아들인 하후형夏侯衡은 태조의 동생인 해양애후(海陽哀侯)의 딸을 아내로 맞아 그 은총이 특히 융성했다. 하후형은 하후연의 작위를 세습했다가 안녕정후安寧亭侯로 고쳐 봉해졌다.

황초黃初 연간에 둘째 아들 하후패夏侯霸에게 작위를 내렸다. 태화太和 연간에 하후패의 동생 4명에게도 작위를 내렸는데 모두 관내후에 봉했다.

하후패는 정시 연간에 토촉호군討蜀護軍 우장군右將軍에 임명되었고 박창정후博昌亭侯에 봉해졌다. 평소 조상曹爽과 가까웠는데 조상이 주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의심하는 마음이 일어 망명하여 촉으로 들어갔다. 하후연의 예전 공훈을 이유로 하후패의 아들은 사면되고 낙랑군樂浪郡으로 옮겨졌다.[3]

[3] 위략 – 하후패의 자는 중권仲權이다. 하후연이 촉에 의해 죽음을 당했으므로 하후패는 늘 이를 갈며 증오했고 촉에게 보복하고자 하는 뜻이 있었다. 황초 연간에 편장군이 되었다.

자오子午 전투에서 하후패를 불러 선봉으로 삼았다.(참고-244년 대장군 조상이 촉 정벌할 때의 일로서, <조상전>에 의하면 조상군 주력이 낙곡 즉 당락도를 통해서 들어간 걸로 나와있는데 아마 자오도 쪽으로도 진군했던 모양입니다) 진군하여 흥세興勢를 포위하고 전곡曲穀에 진채를 내렸다. 촉 사람들이 그가 하후패임을 알아보고 군사를 출격시켜 공격했다. 하후패는 녹각 사이에서 몸소 싸웠고 구원병이 도착하여 위기를 벗었다.

그 뒤에 우장군에 임명되어 농서에 주둔했는데 병사를 기르고 융족과 화친하여 그들의 환심을 샀다. 정시 연간에 하후유夏侯儒의 뒤를 이어 정촉호군征蜀護軍이 되어 정서장군의 관할에 속하게 되었다. 정서장군 하후현夏侯玄은 하후패의 조카(從子-하후현은 하후연의 조카인 하후상의 아들입니다. 그러니 친형제의 아들은 아니고 사촌동생 혹은 육촌동생의 아들입니다. 즉 친조카는 아니고 조카뻘인 셈입니다)이고 조상의 이종사촌동생이다.

사마선왕이 조상을 주살하고 하후현을 소환하여 하후현은 동쪽으로 갔다. 하후패는 조상이 주살된 소식을 듣고 또 하후현이 소환되니 필시 화가 자신에게도 미칠 거라 여겨 내심 두려워했다. 또한 이전에 하후패는 옹주자사 곽회와 서로 불화했었는데 곽회가 하후현의 뒤를 이어 정서장군에 임명되니 하후패가 더욱 불안해 하여 이 때문에 마침내 촉으로 달아났다.

남쪽으로 음평陰平을 넘었다가 길을 잃었는데 양식이 떨어져 말을 죽이고 도보로 걸었다. 다리를 다쳐 바위 아래에 누워있는데 길을 찾아보았으나 어디인지 알지 못했다. 촉이 이를 듣고 사람을 보내 하후패를 영접했다.

당초 건안 5년(200년), 하후패의 사촌여동생(從妹)이 13살일 때 고향 집에 있었는데, 땔나무를 줏으러 나왔다 장비에게 사로잡혔었다. 장비는 그녀가 양가의 딸임을 알아채고 아내로 삼아 딸을 낳았는데 뒤에 그 딸이 유선의 황후가 되었다. 이 때문에 하후연이 죽었을 때 장비의 처는 청하여 하후연을 매장했었다.

하후패가 촉으로 들어가자 유선과 서로 만났는데 유선이 말했다, “경의 부친이 해를 입은 것은 내 선친의 칼날에 의한 것은 아니었소.” 자신의 아이를 보여주며 말했다, “이 아이는 하후씨의 외손자(甥)요” 관작을 두텁게 내리고 총애했다.

하후패의 동생 하후위夏侯威는 관직이 연주자사에 이르렀다. [4]

[4] [세어世語]에 이르기를, 하후위의 자는 계권季權이고 의협을 행했다(任俠) 형주, 연주 2주의 자사를 역임했다. 아들 하후준夏侯駿은 병주자사를, 차남 하후장夏侯莊은 회남태수를 역임했다. 하후장의 아들 하후담夏侯湛은 자가 효약孝若이고 문장에 재능이 있고 박식하여 관직이 남양상南陽相, 산기상시散騎常侍 에 이르렀다. 하후장은 진晉 경양황후景陽皇后의 자부(姊夫-언니의 남편)였는데 이로 인해 일문이 번성했다.

하후위의 동생 하후혜夏侯惠는 관직이 낙안태수에 이르렀다.[5]

[5] [문장서록文章敍錄]에 이르기를, 하후혜의 자는 치권稚權이고 어려서 학문에 재능이 있다고 알려졌었고 상주하여 시시비비를 의논하는 것에 능했다. 산기 황문시랑을 역임했고 종육(鍾毓-종요의 아들이자 종회의 형)과 더불어 여러 차례 논쟁했는데 그의 견해가 채택되는 일이 많았다. 연상燕相, 낙안태수로 승진했다. 37세에 죽었다.

하후혜의 동생 하후화夏侯和는 관직이 하남윤에 이르렀다.[6]

[6] [세어世語]에 이르기를, 하후화는 자가 의권義權이고 변설에 능해 논쟁에 재주가 있었다. 하남윤, 태상을 역임했다. 하후연의 셋째 아들은 하후칭夏侯稱이고 다섯째 아들이 하후영夏侯榮이다. (하후패의) 종손(從孫-형제의 손자)인 하후담(하후담은 하후패 동생인 하후위의 손자)이 그 순서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후칭의 자는 숙권叔權인데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모아 대장 노릇하는 것을 좋아했다. 군대가 전쟁하고 진을 벌이는 것을 흉내내며 놀았는데 명을 위반하는 자는 채찍으로 종아리를 때리니 감히 거스르는 자가 없었다. 하후연이 내심 이를 기특하게 여기고 항우전項羽傳과 병서를 읽으라 하니 이를 거절하며 말했다, ‘혼자서 스스로 할 수 있는데 어찌 남에게서 배우겠습니까?’

16세 때에 하후연과 더불어 밭에 나갔다 호랑이를 보고 하후칭이 말을 몰아 쫓으려 했으나 이를 못하게 말리자 화살을 한 대 쏘아 거꾸러뜨렸다. 태조가 그 명성을 듣고 그의 손을 붙잡고 기뻐하며 말하길, “내가 너를 얻었구나!”라고 했다. 문제와 더불어 포의지교(布衣之交-불우한 시절부터 사귄 벗)를 맺어 연회할 때마다 함께 앉았고 관원들이 이를 말렸으나 제지할 수 없었다. 세상에 이름이 높은 이들이 여럿 와서 교제했는데 18세에 죽었다.

하후칭의 동생인 하후영은 자가 유권이다. 어려서 총명하여 7살에 능히 문장을 짓고 하루에 천 글자를 암송했고 경전을 눈으로 일별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문제가 이를 듣고 그를 불렀다. 빈객이 백여 명이었는데 모두 명함을 받쳐 올렸고 거기엔 그들의 향읍과 이름, 성씨가 적혀 있었는데 세상에서 소위 말하는 작리자爵里刺였다. 이를 하후영에게 보여주니 한번 훑어보고는 이야기하는데 한 사람의 경우도 틀리는 점이 없으니 황제가 이를 더욱 대견하게 여겼다.

한중에서 패할 때 하후영의 나이 13살이었는데 좌우에서 달아날 것을 권했으나 이를 거절하며 말했다, “임금과 부친이 어려움에 처했는데 어찌 죽음을 피하겠는가!” 그리고는 검을 휘두르며 싸워 끝내 군진에서 죽었다.

하후형이 죽자 아들인 하후적夏侯績이 후사를 이었고 호분중랑장虎賁中郎將에 임명되었다. 하후적이 죽자 아들인 하후포夏侯褒가 후사를 이었다.

※ 번역 : 고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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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기념 삼국지 각국 베스트 11 – 吳

감독 손권

손견이 사임한 후 손책이, 손책이 사임한 후 손권이 감독직을 물려받자 무슨 감독이 내부승진자리냐며 팬들이 반발했지만 평소 선수들을 잘 알고 있다는 것과 선수들에게 정성을 쏟는다는 점이 인정받아 일단 감독직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감독으로서의 실력은 형편없고 때때로 열받아서 차라리 자기가 뛰겠다며 그라운드에 난입하는 경우가 있어 코치들이 이를 말리는데 골머리를 썩는다. 또 사상 유래가 없는 뻥축구를 구사, 팬들의 어이를 상실하게 만들고 지나친 요행수를 바래서 촉 팀의 관우가

“오 팀의 감독은 쓰레기다”라고 말해 양팀의 관계가 험악해졌다.

나이를 먹을수록 전술의 완성도와 선수기용이 초딩화되어가고 있다.

스쿼드

           주유   정보

황개     여몽   육손   감녕

능통     장흠   한당    주태

               노숙

FW –

화려한 외모, 완벽한 개인기, 훌륭한 인간성까지 겸비한 주유와 오 팀에 뼈를 묻겠다는 노장 정보가 투톱이다. 주유는 락밴드까지 결성하고 탑모델을 아내로 맞은데다 축구실력까지 겸비, 남부러울게 없어 보이나 위 팀과의 시합에서 부상을 당해 선수생명을 일찍 접어야 했다. 반면 정보는 평소 주유와 사이가 안좋았으나 팀 승리를 위해 협력하고 나중에 가서야 화해했으나 최약체팀을 상대로 미친듯이 공격해서 매너가 없다는 비난을 받았다.

MF –

레프트윙 황개는 주유에게 마치 달군 칼로 버터를 자르는 듯하다는 전설의 크로스를 연결, 위 팀을 격침시켰다. 그러나 승리축하연에서 발을 헛디뎌 변기에 빠진 걸 한당이 건져냈다는 웃지못할 얘기가 있다.

라이트윙 감녕은 그라운드 내에서는 돌파면 돌파 몸싸움이면 몸싸움 흠잡을 데가 없으나 그라운드 밖에서는심심치 않게 폭력사태를 일으켜 물의를 빚었다.

공격형 미들 여몽은 평범한 축구선수였으나 감독이 “축구선수라도 자기이름은 한문으로 쓸 수 있어야 한다”며 공부하라고 하자 정말로 공부해서 이제는 5개국어를 구사하는 에인세나 클린스만, 센데로스같은 선수가 혀를 내두를 정도가 되었다. 촉 팀과의 시합에서 관우와의 몸싸움때 시뮬레이션으로 페널티를 따냈으나 시합끝나고 정말로 다쳤다는게 판명돼 선수생명이 끝났다.

수비형 미들 육손은 그라운드의 지배자, 중원의 사령관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오의 에이스로 활약했으나 차기 감독 선정 문제를 두고 감독과 다투다 열받아 대표팀을 사퇴했다. 유소년팀에서 뛰고있는 아들이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DF –

레프트윙백 능통은 평소 같잖은 선배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감녕이 그라운드밖에서 자기 아버지를 폭행하자 같은 편인 감녕을 그라운드에서 백태클하고 난투극을 벌여 마치 뉴캐슬을 보는 듯한 아름다운 일화를 남겼다.

라이트윙백 주태는 터프한 수비로 감독의 신뢰를 받았는데, 몸에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었음에도 선수생활을 하고 있어 만인의 귀감이 되었다. 그러나 일부 선수들은 그를 프랑스의 리베리에 비유하며 뒤에서 콰지모도로 부르는 등 안타까운 일도 있는 듯 하다.

센터백 장흠은 감독이 여몽과 같이 공부하라고 했지만 아직 자기이름을 한자로 못쓴다. 집이 찢어지게 가난해 감독이 대표팀 예산을 빼돌려 밥도 사주고 옷도 사줬지만 공부는 안한다.

센터백 한당은 오의 고목나무로 불릴 정도로 든든한 수비진을 구축하고 있으나 별 존재감은 없다.

GK –

골키퍼 노숙은 예전에 촉 팀과 담합하여 위 팀을 울린적이 있는데, 아름다운 선방과 교묘한 시간지연으로 위 팀의 똥줄을 타게했지만 촉 팀에게 져주기 시합을 해서 져주는 바람에 감독부터 선수까지 안 씹는 사람이 없다.

Staff –

수석코치 장소는 평소 감독과 사이가 안좋은데 왜 수석코치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들리는 말로는 축협회장이 여자인데 장소를 총애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알 수 없다. 예전에 위 팀에게 비기기 시합을 하자고 했다가 주유의 그림같은 시저스킥으로 승리하자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전술코치 우번은 회식자리에서 폭탄주 안받겠다고 자는척하다 걸려서 감독한테 쓰레빠로 맞았다.

미디어담당관 제갈근은 평소 촉팀에 대해 좋게말해 의심을 받았으나 감독의 신뢰는 두텁다. 그러나 아들이자기도 축구하겠다는거 말리느라 머리에 쥐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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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기념 삼국지 각국 베스트 11 – 蜀

감독 유비

강팀을 상대로 패배를 계속하고 약팀 상대로 승리를 챙겨서 전적상으론 괜찮아보이지만

실은 팬들의 지지로 감독을 계속하고 있다. 아동복도 울고갈 립서비스와 언론대응으로

항상 폭발적인 성원을 받으며, 팀 성적과 관계없이 리그 흥행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짜르지

못하는 어찌보면 열받는 감독이다. 세계 리그 곳곳을 전전하며 리저브팀 감독을 해왔지만

오 팀과의 담합으로 위 팀을 골득실로 탈락시킨 후 명장대접을 받고 있다

스쿼드

        관우     장비

마초   황충   위연   조운

강유   왕평   진도   요화  

            장익

전체적으로 베스트 11 짜기도 어렵다. 감독이 팀을 옮길때마다 자기 선수들을 끌고 다녀서 감독과

선수의 신뢰관계는 높지만 전체적으로 대표팀 연령이 고령자와 풋내기들로 이분되어 있다

FW –

투톱 관우, 장비는 둘 다 이미 레전드의 반열에 올랐다. 다만 관우는 거만한 세레모니로 상대관중을

자극하고, 장비는 후배들을 팬다는 것이 문제가 되지만 일단 실력으로 먹고 들어갔다. 관우는 예전에

위로 이적한 적이 있으나 유감독과 함께 했던 시절이 그립다며 다시 돌아왔고, 수염을 찰랑거리며

그라운드를 질주하는 모습이 세계 선수들에게 어필해 장발의 유행을 끝내고 수염의 시대를 불렀다.

MF –

레프트윙 마초는 수려한 외모와 깔끔한 개인기로 인기가 높지만, 감독하고 맞먹다가 주장 관우한테

밟힐 뻔 했다.

라이트윙 조운은 뛰어난 개인기와 막강한 돌파력으로 단번에 6명을 제낀 적이 있지만

(팬들은 11명을 제쳤다고 주장) 정작 골은 넣은 적이 없다.

공격형 미들 황충은 뒤늦게야 기량이 꽃핀 타입인데 강력한 돌파력과 킬패스는 감독을 놀라게 했으나 정작 관우는 황충의 킬패스를 무시, 둘의 콤비네이션의 문제를 노출했다.

수비형 미들 위연은 예전에 감독이 상대공격수 3명이 들어올때 어찌하겠느냐 묻자 “다 막으면 되지 뭘 그런걸 묻습니까” 라고 대답해 팬들로부터 질타를 받았으나 감독은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너무 공격성향이 강해 한때 수석코치 제갈량이 떠오르는 샛별 마속을 넣어봤으나 팀의 5대 0 캐관광의 단초를 제공해 그냥 위연으로 밀고 있다.

DF –

수비라인은 그야말로 풋내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레프트윙백 강유는 오버래핑을 나가면 번번히 상대에게 공을 헌납하는데도 포기할줄 모르는 불필요한 근성이 있고,  

라이트윙백 요화는 오버래핑을 나가  상대 페널티박스에서 다시보기 어려울 정도의 아름다운 시뮬레이션으로 페널티를 따내 감독의 총애를 받았다.

센터백 왕평은 개인기도 있고 지능적인데다 수비력도 좋지만 감독의 지시를 못알아들어 불러다놓고 얘기해야 하는 문제가 있고,

진도는 제2의 조운이란 평을 들으며 데뷔했지만 그다지 활약을 보이지못해 선수가 부족한 팀의 센터백을 맡고 있다.

GK –

골키퍼 장익은 예전에 약팀하고 붙었을때 패배의 실마리를 제공했지만, “교체될때 까지는 막을것은 막는게 골키퍼의 의무”라며 버티다 전반종료와 함께 교체되었고,  이후 별다른 경쟁자가 없어 선수로선 환갑의 나이까지 수문장을 하고 있다.

Staff –

수석코치 제갈량은 감독의 신임을 얻어 사실상 감독대행으로 활약하고 있는데, 고용될때 우리도 16강 간다고 하고 결국 16강을 달성해 대단한 호평을 받았지만, 그 이상은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전술구상도 완벽하고 선수기용도 대부분의 경우 훌륭하지만 승부해야 할 때 모험을 걸지 못하고 머뭇거려 수비형 미들 위연이 목을 졸랐다. 팀 식당 섭외에 실패해 선수들이 주린배를 안고 뛰게 하는 뭔가 얼빠진 구석이 있다.

전술코치 법정은 탁월한 전술구상과 실행을 자랑하지만 자기 맘에 안드는 선수는 선수생명까지도 위협하는 무서운 면이 있다.

서포터스 회장 방통은 밖에서 항상 선수들을 칭찬해 원더풀 서포터스라는 칭송을 얻었지만 언론이 안볼때 난투극을 벌이다 사라졌다.

대표팀 요리사 양의는 완벽한 식단을 제공하지만 선수들과 사이가 안좋고 결정적으로 요리사 하다보면  코치나 감독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통역하다 감독하고 비디오찍다 코치하는 사람은 있어도 요리사하다 감독이나 코치하는 경우는 없다는 걸 아직 모른다.

또다른 대표팀 요리사 이엄은 식재료가 떨어지자 수석코치에게 경기취소됐다고 하고 돌아오자 만우절농담이었다고 했다가 비오는 날 먼지나게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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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기념 삼국지 각국 베스트 11 – 魏

감독 – 조조

시합에 이기기 위해선 모든 수를 다 쓴다. 날도 더워서 목마른데 음료수도 안갖다놓고는

‘쟤네팀이 다 마셨어’ 라던가 관중들 틈에 첩자를 박아넣고 인종차별 발언을 우렁차게

외쳐서 승점 3점을 날리게 한다던가 하는 건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해낸다.

사이가 안좋다고 아넬카나 지울리나 판니를 안쓰는 것 같은 일은 없다

스쿼드

         하후연    조인

장합     우금     악진    서황  

장료     전위     허저     이전    

               하후돈

FW –

투톱은 100미터를 10초대에 끊고 개인기가 화려하지만 약간 지능적인 플레이가 아쉬운 하후연과

그다지 돋보이지 않지만 수비가담이 좋고 좋은 피지컬을 가진 조인이 맡는다.

MF –

미들은 하후연과 좋은 콤비를 이루는 장합이 윙으로 하후연을 지원하고, 마찬가지로 조인과 상성이 좋은 서황이 라이트를 본다.

장합은 지능적이지만 가끔 되도 않는 실수를 하는게 약점.

공격형 미들은 위의 최고 스타플레이어인 우금이 보는데, 강렬한 포스와 뛰어난 실력을 겸비했지만 중요한 시합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했다.

수비형 미들은 몸은 작지만 투지가 돋보이고 존재감은 없지만 강렬한 악진이 맡는다.

DF –

수비진은 전형적인 포백 라인인데, 공격성향이 강하고 원래 포워드였지만 수비력이 뛰어난 장료가 레프트 윙백을 본다. 팬들은 그가 지명도에 밀려 윙백으로 밀렸다고 반발하는 듯 하지만, 정작 본인은 별 불만이 없는듯. 그가 오버래핑을 나가면 상대편 오른쪽은 거의 초토화된다.

반면 라이트윙백인 이전은 침착하고 착실한 플레이로 위험한 수비는 하지 않는다.

센터백 허저 – 전위는 가장 강력한 중앙수비라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전위는 협력수비가 부족하고 허저는 너무 정직한 플레이를 한다.

GK –

골키퍼는 하후돈이 보는데, 양쪽눈 시력차가 커서 면제였지만 정작 본인은 부사관에 지원해서 군생활을 한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다. 워낙 수비라인이 탄탄해서 골대까지 공이 올 일이 없어 감독이 눈 하나 안보여도 별 상관 없다고 골키퍼를 맡겼다는 소문도 있다. 단 당대 최고의 센터포워드 여포에게 그야말로 탈탈 발린적이 있다.

Staff –

수석코치 순욱은 너무도 뛰어난 보좌로 팀에 공헌했지만, 팀의 승리가 우선이냐 페어플레이가 우선이냐를 두고 감독과 대치하다 잘렸다.

전술코치 순유는 겉으론 멍해보이지만 실은 매우 예리한 전술을 구사하고, 곽가는 더할나위없었지만 지병으로 대표팀에서 빠졌다. 가후는 조봉래의 재림이라 불릴정도로 정확한 예견력을 갖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홀대를 받았다.

팀 전속 요리사 정욱은 대체 뭘 먹으라고 주는지 알 수가 없다.

회식담당 만총은 회식준비하라면 일단 알딸딸해져서 팀을 부른다.

의무담당 화타는 선수말고 감독도 봐달라는 감독의 요청에 그건 월급밖의 일이라고 하다가 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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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사] 황개의 신비로운 화살

황개가 사선호에서 수군을 훈련시키고 있는 도중에 갈대밭에서 벌겋게 몸을 드러내고 누워있는 젊은 여자 하나를 발견했다. 그는 곧 사람을 시켜 옷을 가져다 그 여자에게 입히게 하고, 어떻게 된 일인지 원인을 물었다.

원래부터 호수 안에는 눈이 세 개 달린 오징어 오괴가 있었다. 그 요괴가 자신의 법력을 믿고 도처에서 나쁜 짓을 일삼았는데, 민간의 아녀자를 능욕할 뿐만 아니라 백성들을 마구 헤쳤다. 그 지방 사람들은 원한이 골수까지 사무쳤으나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황개는 사정을 알고 나자 오징어 요괴를 제거할 결심을 하고, 다음과 같은 여닮자로 뙨 글을 썼다.

“백성에게 해가 되는 것은, 깨끗이 없애버리리라”

크게 쓴 여덞 글자를 바라보면서 그는 방법을 깊이 궁리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졸기 시작했다. 몽롱한 가운데 한 백발의 신선이 다가오더니 그에게 화살 세 대를 주었다. 황개가 깨어나자 그 화살 세 대는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다른 화살에 비해 길이는 절반 정도로 짧았으나, 반짝거리고 빛을 발하며 매우 예리했다.

이틀이 지나자 그 오징어 요괴가 다시 호수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소문이 들렸다. 황개는 즉시 갑옷을 걸치고 말을 달려갔다. 오징어 요괴는 아예 평범한 듯 보이는 황개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황개도 두말 않고 그 세 대의 신비한 화살을 오징어 요괴를 겨냥하여 날렸다. 세 대의 화살은 정확하게 세 개의 눈알을 적중시켰다. 오징어 요괴는 몇 번 꿈틀거리더니 죽어버렸다.

이 때부터 백성들은 평안히 살면서 즐겁게 일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황개를 기념하기 위하여 언제나 새로 집을 짓기만 하면 모두들 문 위에 활 한 자루와 화살 세 대를 걸어두었다. 이것을 `황개의 신비한 화살` 이라 불렀으며, 이렇게 하면 화를 피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풍습은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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