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posts tagged “개그

comments 11

3. 정형돈에 대한 몇가지 사실들 – 정형돈





사실 하나.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개그맨이 된 사내가 있다. 데뷔한 다음 해 신인상과 최우수코너상을 수상하고, 이듬 해 연예대상 우수상을 수상한 이 사내는 타 방송사로 이적하자마자 그 해 방송연예대상 남자우수상까지 수상하며 예능인이라면 누구나 탐날 법한 커리어를 손에 쥐게 된다. 사실 둘. 출연하는 프로그램 그 어디에도 자리잡지 못하고 못 웃긴다는 타박을 들으며 퇴출압박에 시달리는 개그맨이 있다. 인터넷에서 이 사내의 이름을 쳐보면 팬까페보다 안티까페가 먼저 뜨고, 게시판마다 이 사내를 퇴출시키라는 의견들이 즐비하다. 사실 셋. 이 둘은 동일인물이다. 예능인의 영고성쇠가 드문 일은 아니기에 특별히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이 사내의 경우는 조금 특별하다. 이 사내가 퇴출 위기에 시달리기 시작했기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MBC 방송연예대상 남자우수상을 수상하며 차세대 개그맨으로서의 위상을 떨쳤기 때문이다. 이 사내의 이름은 정형돈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전심전력으로 이 사내를 옹호할 생각이다.





웃길 줄 아는 사람. 웃길 줄 알았던 사람.



사람마다 의견의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개그콘서트>에서 정형돈이 간판스타로 활약하며 제법 ‘웃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사실만큼은 다들 인정할 것이다. 정형돈이 <개콘>에서 구사하던 개그를 불편해하던 필자도 그가 재능있는 개그맨이라는 사실만큼은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개콘> 출신 개그맨 중 가장 성공적으로 버라이어티에 적응한 개그맨이었다. 사람들이 쉽게 말하는 것처럼 이경규가 뒤를 봐준다는 지적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활약은 주목할 만 했다. <개콘> 출신 개그맨들이 버라이어티에서 흔히 그러듯 순발력 부족으로 뻣뻣하게 서서 응당 챙겨먹어야 할 자기 몫을 놓치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비록 부담스럽고 공격적이었지만 시청자들의 시선을 어떻게 하면 잘 잡아끌 수 있는지 그것 하나만큼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최소한 올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정형돈이 지금처럼 툭하면 퇴출의 압박에 시달리진 않았다. 그렇다면 이 사내,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정형돈이 현재 출연하는 프로그램들 중 가장 많은 비난을 받고 있는 코너는 <무한도전>과 <상상플러스>다. 두 프로그램은 각각 MBC와 KBS의 간판 예능프로그램이며, 대한민국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입담을 자랑하는 예능인들이 포진해있는 프로그램이다. 탁재훈은 몇 번의 포맷 변경을 거쳤던 <상상플러스>에서 흔들리지 않는 쇼의 중심이었고, 유재석은 스스로 ‘유재석식(式) 오합지졸물(物)’ 이란 장르를 개척하다시피 하지 않았는가. 정형돈은 이 당대 최고의 예능인들과 한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그리고 적어도 <무한도전>에서만큼은,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뒤지지 않았다. 박명수의 호통과 노홍철의 정신없는 재담 속에서 그는 힘으로 승부하고 거만하게 남을 내리 누르며 순간 순간의 재치로 사람들의 약점을 공격했다. 종종 덜 웃긴다는 이야기를 들었을지언정 눈앞에 던져진 기회를 그냥 놓치진 않았다.










잠시 되돌아보자. 그가 초창기에 버라이어티에 출연할 때 그는 게스트라거나 패널로 활약했다. 그가 MBC 나들이를 처음 시작했던 시절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브레인 서바이버’는 수십명이 등장해서 조금씩 자기 몫을 가져가는 스타일의 코너였고, <행복주식회사>는 그렇게 많이 망가져가면서 사람들을 웃기지 않아도 충분히 여유있게 진행이 가능한 포맷이었다. ‘상상원정대’는 매 회마다 그럴싸한 짤방만 만들어내도 욕먹지 않을 수 있었고, <논스톱>은 정통 코메디는 아니었지만 버라이어티처럼 순간의 재치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정확하게 합이 짜여진 시트콤이었다. <무한도전>의 전신이라 할 수 있을 ‘무모한 도전’은 힘자랑과 투덜거림만 선보여도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 코너였지 않았나.





그림자



반면 현재 그가 출연하는 코너 중 가장 욕을 많이 먹고 있는 <무한도전>과 <상상플러스>를 살펴보자. <무한도전>이 초창기 ‘거꾸로 말해요 아하’로 서서히 시청률을 끌어올리던 시절만 해도 그는 날렵하게 공격단어를 던지고, 사람들을 골리며 비아냥거리고 거들먹거리며 자신의 몫을 확실하게 챙겨갔다. 건방지고 재치있는 입담은 노홍철과 공유하는 부분이었지만, 노홍철이 속사포같이 쏟아부어대는 스타일이라면 정형돈은 가만히 한 마디씩 던지는 것마다 날카롭게 파고드는 스타일이었다. 때때로 유재석과 박명수를 공격하며 두 사람의 캐릭터를 강화시켜주었고, 새로 들어온 하하를 추켜세우며 보듬었던 것도 정형돈이었다. 그러던 그의 캐릭터가 점차 말이 없어지고 가려지기 시작했던 것은 멤버 여섯 명의 캐릭터과 그 호흡이 조율될 때부터였다. 서로 보완해주지 않아도 각자의 캐릭터가 갈 길이 명확해진 이후, 정형돈은 자신의 캐릭터를 서서히 남들에게 잠식당하기 시작했다. 건방지고 안하무인한 것으로는 하하와 박명수를 따라잡을 수 없었고, 입담의 화려함에서는 유재석과 노홍철에게 밀렸으며, 체력의 우위에서 오는 압도감은 정준하에게 밀렸다. 정형돈은 점점 예의바른 사람이 되어갔고, 말수조차 적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상상플러스>는 어땠을까? 신정환이 불미스러운 일로 자리를 비우게 되자 대타로 들어왔던 정형돈은 제법 선방했던 편이었다. 탁재훈 & #8211; 이휘재 & #8211; 신정환의 원년멤버들이 황금호흡을 자랑하며 함께 하던 MC들 – 이병진이나 SIC & #8211; 을 조기퇴출시켰던 것에 비하면 정형돈은 그 틈바구니를 제법 잘 파고 들어갔다. 물론 신정환이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했겠지만, 적어도 공격의 대상이 되어 탁재훈의 짖궂은 농담을 받아주고 문제를 맞추며 어느 정도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은 수행하고 있었다. 비록 특유의 건방지고 무례한 스타일의 개그를 선보일 순 없었지만 말이다. 이렇게 셋이 조금만 더 오래 호흡을 맞췄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신정환의 복귀는 빨랐다. 한국에서 연예인들이 ‘공인’의 위치에서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적용받는 것을 생각했을 때 4개월은 자숙의 기간치곤 너무 짧았다. 황수정이 5년 째 복귀하지 못하고, 이승연이 아직도 사람들의 손가락질에 시달리며, 신동엽조차 재기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던 걸 생각해보면 신정환은 너무 일찍 컴백했다. 그게 나쁘다거나 잘못 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의 이른 복귀가 정형돈에게 걸림돌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탁재훈과는 운명공동체였고 이휘재와는 오랫동안 MC로 호흡을 맞춰왔던 신정환이 돌아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황금호흡이 재편되었다. 새로운 질서가 정립되려다가 갑자기 구체제로 돌아가버린 것이다. 남겨진 정형돈은 어땠을까? 아무도 노골적으로 그가 웃기지 않는다고 말하진 않았지만, 그는 서서히 낙오되었다. 그리고는 일이 터졌다. 방송 중에 이휘재가 정형돈을 향해 방송에서 해선 안될 욕설에 해당하는 동작을 취한 것이다. 불쾌한 기색이 역력하던 이휘재의 표정과 그 동작은 확대되고 반복되어 인터넷 공간을 떠돌아다녔다. 이휘재는 한동안 해명을 하고 다녀야 했고, 정형돈 역시 이휘재와 절친한 선후배 관계라고 강조해야 했다. 그러나 정작 이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는 정형돈이었다. ‘이휘재가 정형돈보고 웃기지도 못하면서 문제만 맞춘다고 욕했다’라는 이야기가 정설로 굳어지면서 사람들의 머릿 속에 ‘정형돈이 좀 못 웃기긴 했지’라는 인식이 노골적으로 각인되기 시작한 것이다. 욕을 먹은 피해자니만큼 당장의 동정론을 살 순 있었겠지만, 개그맨이 웃기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치명적이니까 말이다.










결국 ‘못 웃기는 사람’으로 낙인찍인 정형돈은 지금 <상상플러스>에서 할 역할이 없어져버렸다. 이휘재는 매번 힌트를 다 듣지도 않은 채 뛰쳐나가 카메라 앞에서 너스레를 떨다가 깔대기 세례를 받고 돌아오고, 탁재훈은 1단계 힌트가 다 제시된 후에 사람들의 머리를 모아 공통점을 파악하다 말고 뛰쳐나갔다가 깔대기를 맞고 돌아온다. 신정환은 만년 꼴등 자리를 도맡아서 하고 있다. 이건 마치 고전 시조가 정해진 운율을 지키며 쓰여지는 것처럼, <상상플러스>가 고집하는 공식과도 같다. 정형돈은? 그는 이 황금호흡 앞에서 자신의 몫을 찾지 못하고 겉으로만 맴돌고 있다.



정리해보자. <무한도전>은 여섯 명의 팀웍을 기반으로 좌충우돌 닥치는 대로 ‘뭐든지’ 해치우며 벌이는 리얼리티 쇼다. <상상플러스>는 탁재훈 & #8211; 이휘재 & #8211; 신정환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우주에서 퀴즈쇼를 빙자해 벌이는 무식의 향연이다. (<상상플러스>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못 맞춰서 웃기는’ 요소를 강조하게 된 건 <무한도전>의 영향도 크다. 그 전에도 그런 모습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지만, 명색이 퀴즈쇼인 주제에 ‘이렇게 일찍 맞추면 재미없잖아’라고 대놓고 투덜거리는 건 무식과 이기주의가 판치는 예능프로계의 기린아 <무한도전>이 제자리를 잡고부터였다.) 정형돈은 양쪽 프로그램에서 건방지고 무례한 캐릭터도 상실했고, 특히나 <상상플러스>에선 제대로 된 캐릭터 하나 잡지 못하고 빙빙 겉돌고 있으며, 안 웃긴다는 치명적인 오명을 안고 자신감마저 잃어가는 듯 보인다. (이 부분을 볼드 처리한 이유를 생각해 주기 바란다.) 이 두 프로그램은 더 이상 각자가 정해진 몫을 챙겨가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어떻게든 알아서 돋보여야 하는 프로그램이란 소리다. 게다가 날고 기는 재담꾼들이 심할 정도로 많이 모인 프로그램들 아닌가. 정형돈이 어느 정도 자신의 몫을 찾아가고 있는 <느낌표>라거나 ‘동안클럽’과 비교해봤을 때 격차는 더욱 더 커진다.



더 환장할 사실을 얘기해볼까. 이 두 프로그램 <상상플러스>와 <무한도전>은 모두 목요일 녹화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물론 <무한도전>은 요즘 멤버들이 투덜대는 것처럼 월화수목금토일을 가리지 않고 무작정 녹화하고 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양대 방송사의 간판 예능코너 녹화를 하루에 몰아서 한다는 건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양쪽에서 공히 욕을 먹으면서, 양쪽에서 공히 지쳐가는 걸 지켜보는 건 프로그램의 팬 입장에서도, 정형돈의 팬 입장에서도 즐거운 일이 아니다. 이 사내, 어쩌자고 이러고 있단 말인가.









그러나 정형돈의 이런 모습들을 가지고 그를 저평가해선 안 된다. 아니, 적어도 나는 그렇게 주장한다. 그는 더 이상 단순하게 자기 자신을 부각시키려 노력하지 않는다. 그는 이제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프로그램의 맥을 읽어내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반문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무한도전>을 보자. 난장판을 벌이는 것은 박명수와 정준하, 노홍철이고 수습하는 것은 유재석이다. 막내 하하는 당돌함을 무기로 모두를 공격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한도전에서 이 아비규환의 맥을 짚어내는 건 누굴까? 당연히 제작진이다. <무한도전> 제작진들은 여타 프로그램 제작진들과는 다르다. 맥락을 짚어내는 발군의 센스는 물론이거니와, 쇼의 외부에서 이들을 ‘관찰’하고 ‘논평’하는 행위를 통해 제작진 스스로가 하나의 캐릭터를 이루고 있다. 가히 제 7의 멤버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유재석이 날고 기며 쇼를 이끌어 나간다 해도 제작진들이 정확하게 맥락을 짚어내지 못했다면 오늘날의 <무한도전>은 없다. 그런 제작진들과 가장 정확하게 호응하고 있는 것은 물론 유재석이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강조해야 할 맥락을 잘 짚어내고 있는 것이 누구인가? 바로 정형돈이다.



유재석을 제외하면, 박명수와 노홍철의 난장판 속에서 프로그램 전체에 대해 촌평을 날리는 것은 정형돈 뿐이다. 박명수와 정준하의 대화를 보면 이 둘은 서로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기는 커녕 제대로 듣지도 않는다. 자신의 말을 반복해서 윽박지르며 서로를 공격하는 유치함과 뻔뻔스러움이 이들의 컨셉 아닌가. 노홍철을 보라. 상대방의 헛점을 파고들어 공격하는 것은 할 줄 알아도 상대방의 말을 받아서 부각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정형돈은 이 아수라장의 일원으로 참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프로그램과 한 발 정도 떨어져서 그 순간 순간의 분위기를 읽어낸다. 상대의 말을 받아서 맞받아치고, 강조할 부분을 반복해서 부각시켜주는 것이 누군가. 정형돈이다.










단순하게 웃기는 사람으로만 남을 거라면, 상대의 말을 잘라먹고 들어가도 좋다. 자신을 부각시키는 것으로 만족해도 좋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쇼 전체의 흐름을 읽기 시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MC의 위치에 욕심을 두고 있다는 뜻이다. 상대방의 말을 적재적소에 강조해 주는 능력, 쇼 전체에 대해서 맥락에 맞게 촌평을 날리는 능력에서 정형돈은 한참 선배인 박명수나 정준하보다 한 수 위임을 증명하고 있다. 믿어지지 않는다면 <무한도전>의 자막을 잘 살펴보기를 부탁한다. 정형돈이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말들은 그대로 PD의 한마디로 채용되어 상호 호응한다. 이경규가 정형돈에게 했다던 충고, 혼자 돋보이려고 하지 말고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으라는 말은 정형돈에게 큰 자산이 되었다. 이제 정형돈은 자신의 몫을 챙기지 못해 안달내지 않는다. 프로그램 전체를 읽어내며 유재석과 함께 <무한도전>의 호흡을 조율해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본인도 자신감을 상실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서브 MC라는 자리는 결코 쉬운 자리가 아니다. 암울하던 시기 유재석이 겪어야 했던 오랜 암흑기를 생각해보면 그 시간 동안 좌절하지 않고 버틴다는 것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무한도전>처럼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캐릭터들이 떼로 나와서 단체로 웃기는 프로그램에서 밋밋한 캐릭터로 살아남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유의 건방진 캐릭터도 잃고, 자신감도 잃어버린 이후의 그의 모습은 그렇게까지 희망적이진 않았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 웃기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 점을 응용하기 시작하자 이야기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최근 방영분들을 살펴보자. 정형돈은 하하와의 어색한 사이 덕분에 2회 분의 주연자리를 따냈고, 추석특집을 통해 한 회분의 자리를 더 따냈다. 그 동안 정형돈이 반복되서 강조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단점들을 들춰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남들과 쉽게 어울리고 친해지지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내세우며 ‘그래, 나 어중간해’라고 울부짖기 시작했고, ‘그래, 나 안 웃겨’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다음 화에선 스스로가 못 웃긴다는 점을 놀림거리로 삼아서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들기 시작했으며 (가을소풍 특집. 무한백일장을 참조하시라) 제일 최근 화에서 ‘엄마, 나 당분간 또 잘 안 나올 거 같아. 한 두 달 정도 뜸할 거 같은데… 그냥 스펀지랑 번갈아가면서 봐도 될 거 같아’ 라고 말하며 못 웃기는 스스로를 과시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다름 아니라 오랜 기간을 숨죽이며 ‘못 웃기는 사람’ 이란 낙인을 안고 살던 박명수가 재기에 성공한 바로 그 방법이다.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를 통해 자신의 절망적인 개그감각 자체를 웃음거리로 만들면서 못 웃긴다는 점 자체를 고유의 캐릭터로 구축한 박명수의 전례를 착실하게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정형돈은 박명수보단 훨씬 더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그가 슬럼프에 시달린 것은 얼마 되지 않았으며, 벌써부터 바닥을 치고 재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박명수가 가장 드라마틱한 케이스여서 그렇지, 비단 박명수만 이런 과정을 거쳤던 것이 아니다. 본인이 어느 수준으로 웃긴 사람인가를 파악하는 것은 예능인의 방송생명을 좌우하는 큰 요소인 것이다. 김국진이 천하를 호령하던 시절 남희석은 사람들을 웃기는데 성공하면 그때마다 ‘나 김국진보다 웃겨?’라고 물어보며 자신의 포지션을 강조했고, 박수홍과 이휘재는 섣불리 사람들을 웃기려 들기보단 무난하게 방송 흐름을 읽는 노선으로 방향을 틀면서 장수하고 있다. 그렇기에 필자는 정형돈에게 기대를 건다. 게다가 정형돈은 벌써부터 조금씩 프로그램 전체의 흐름을 읽어내고 있지 않은가.










가장 최근 방영분인 농촌특집에서 정형돈과 하하는 그 어색함에도 불구하고 제법 그럴싸하게 진행을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하 역시 특유의 건방진 캐릭터를 서서히 벗고 <무한도전> 전체의 흐름을 읽어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아마도 괴물 같은 입담을 자랑하는 노홍철처럼 확고한 캐릭터로 승부하기엔 역부족이었지 않나 싶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노홍철처럼 스스로를 강렬하게 각인시키는 캐릭터가 어디 흔한가 말이다. 어찌 보면 폭발적인 웃음을 불러오진 못한다는 점에서 정형돈과 하하는 비슷한 처지가 아닐까. 다만 정형돈의 슬럼프는 눈에 띄이게 길었고 하하는 아직까지는 제 몫을 찾아먹고 있다는 점 정도가 차이일 것이다. 이 둘은 다른 멤버들이 진행석을 비운 사이에 조금은 어색하지만 프로그램이 흘러가야 할 방향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정형돈에게 부족한 순발력은 하하가 채우고, 하하에게 부족한 흐름을 읽는 시야는 정형돈이 보강해주면서 두 사람은 MC가 갖춰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 증명해 내는데 작지만 의미있는 성공을 거뒀다.





다시, 정형돈에게 꽃을.



정형돈의 가능성을 믿는가 안 믿는가는 시청자들의 몫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국내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유재석은 10년에 가까운 무명시절을 거쳤다. 그 시절 인터넷이 있었다면 유재석 역시 사람들의 비난에 시달리지 않았을까. 이경규가 정형돈의 뒤를 봐주고 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여지껏 이경규가 작정하고 키운 사람치고 성공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김용만을 집중적으로 키운 사람이 누군가. 강호동을 예능계로 이끌어 온 것이 누구인가. 박명수가 누구의 수제자를 자처하는가. 윤정수가 MBC에서 안정적으로 방송을 하기 시작한 것이 누구 덕인가. 조형기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기 캐릭터를 굳힌 것이 누구 덕인가. 예능계의 큰 손 이경규 아닌가. 그런 이경규가 주목하고 밀어주고 있는 것이 정형돈이라면 그것은 정형돈의 잠재력을 증명하는 일일 뿐이다. 이경규가 뭐가 아쉬워서 가능성이 없는 사람을 밀어주겠는가 말이다.



첫 문단과 반복이겠지만. 사실 하나.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개그맨이 된 사내가 있다. 데뷔하자마자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온갖 상을 휩쓸며 예능인이라면 누구나 탐낼 법한 커리어를 손에 넣었다. 자신을 신뢰하고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소속사와 계약을 맺고 스탠드업 코메디 출신 중 가장 성공적으로 버라이어티로 진출했다. 한국 예능계의 대부의 신뢰를 받으며 지난 2년 간 수많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경험을 쌓아 마침내 A급 게스트가 되었다. 사실 둘. 게시판마다 온갖 비난에 시달리며 못 웃긴다는 낙인을 주홍글씨처럼 달고 있는 개그맨이 있다. 슬럼프는 길고 지리하며 이제 방송에서조차 이 사람을 보고 제발 좀 웃겨보라고 말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사실 셋.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 사내를 지지한다. 이 사내의 이름은 정형돈이다. 내가 그를 믿는 것처럼, 정형돈도 스스로를 믿기 바란다. 그의 행운을 빈다.












p.s : 졸문에 보내주신 과분한 관심과 성원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흥분을 감출 수 없는 지난 이틀이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감사하단 말 직후에 드리는 부탁이라 말씀드리기 죄송스럽지만, 퍼 가실 때는 이 기사로 직접 링크를 걸어주시는 건 삼가해주시면 안될까요? 그냥 원문을 긁어 붙이신 뒤에 출처만 적어주시는 편이 나을 듯 싶습니다. 저희가 사진링크를 막아둔 이유도, 다른 이유가 아니라 트래픽 초과의 우려 때문에 그랬거든요. 엑박이 뜨는 것 진심으로 죄송스레 생각합니다. 그러나 원문을 직접 링크해주시면 더욱 더 빠른 속도로 트래픽 초과가 되어버립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혹시나 원문 주소로 직접 링크를 걸어주신 분이 계시다면 링크 대신 원문을 붙여넣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편집장의 입장에서 감히 드리고 싶은 말씀은, 다른 필진 분들의 글도 재미있다는 점입니다^^. 세상에 날고 기는 글쟁이들이 넘쳐나지만, 저희 웹진에 참여하는 분들의 글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팔불출 편집장입니다. 놓치지 마시길. : )



말로 다 할 수 없이 감사하고, 죄송하고,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tintin 드림.

출처 tintin의 백가 쟁명 예인 열전

http://www.maisondequartet.net

comment 0

2. 거친 정글을 입담으로 헤쳐 온 우리들의 언니 – 정선희










정선희가 처음으로 데뷔를 한 것은 1988년 KBS <비바청춘>을 통해서였다. 당시 염광여고 대표로 김지선과 함께 출연했던 정선희는 훗날 자신이 인기를 모으게 되는 ‘인민배우’ 캐릭터의 원형 격인 ‘북한이 바라본 남한의 88년’이란 주제의 꽁트를 선보인다. 이때 정선희를 눈여겨보아둔 SBS 이풍호 PD의 권유로 그녀는 1992년 SBS 공채 1기 개그맨이 되었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유명인들도 보고, 선배들에게 찬사도 들을’ 것을 상상하며 뛰어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희극인의 길이 그렇게 쉬운 길이라면 애초에 이 코너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문 매니지먼트도 없고 선후배 간의 위계질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공고하던 시절, 그녀는 무명의 세월을 견디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동료 남자 코메디언들이 지명도를 쌓아가며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며 초조해 하던 그녀는 늘 아이디어는 칭찬받았지만 성과는 없던 시절이라고 이 시기를 회고한다.



고등학교 때 잠시 선보인 바 있던 ‘인민배우’ 컨셉으로 서서히 인기를 모을 때 쯤, MBC 예능국에서 출연제의를 받고서는 아무 고민없이 제안을 승락한 정선희는 그로 인해 SBS를 떠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기존에 출연하던 코너와 같은 시간대에 방영되는 경쟁 프로그램에 멋도 모르고 나갔으니 그것이 용납될 수 있는 일이었겠는가. 아무리 경력이 쟁쟁한 사람들이라도 도의상 피하는 일을 새파랗게 어린 신인이 저지른 것이다. 그렇다고 MBC에서 자리를 잡았는고 하니 그것도 아니었다. 출연하던 코너가 어그러지자 그녀는 데뷔 3년 만에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 이런 저런 과정을 거쳐 간신히 KBS에 자리를 잡고 불안한 미래를 헤쳐나가던 그녀는, 자신을 좋게 봐 준 당대 최고의 개그우먼 이영자의 응원에 힘입어 KBS 예능프로에 닥치는 대로 출연하기 시작했다. <코메디 1번지>, <코메디 세상만사>, <폭소대작전>을 종횡무진하던 그녀는 마침내 1997년, <슈퍼 선데이>의 부속 코너였던 시트콤<금촌댁네 사람들>에서 임창정의 아내 역할로 백상예술대상 여자코미디연기상을 받으며 자신의 재능을 세상에 증명하게 된다. 재미있을 거 같다는 단순한 동기로 이 정글 같은 예능계에 뛰어든지 5년 만의 일이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997년 백상예술대상 여자코미디연기상 수상, 1999년 한국방송대상 여자코미디언상 수상에 빛나는 경력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녀가 이런 경력들을 훈장처럼 달고 있단 사실에 놀라곤 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벌써 15년이나 됐어?’라고 반문한다. 과연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한국 예능계에 장수하는 여자 코메디언이 많지도 않을 뿐더러, 그들에게 허락된 필드조차 넓지 않은 현실에서는 같은 수준의 경력을 지닌 남자 코메디언만큼 두드러지기란 쉽지 않다. 아직까지 쇼 프로의 단독 사회자로 남자를 여자보다 더 선호하는 것이 방송계의 현실이기도 하고 말이다. 게다가 ‘천만의 말씀, 만만에 콩떡’ 외엔 이렇다 할 유행어 하나 없는 그녀는 강하게 각인되는 종류의 캐릭터는 아니다. 그렇다고 이경실만큼 뿜어져나오는 기운이 세다거나, 조혜련만큼 부담스러울 정도의 분장을 감수하면서까지 망가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도 아니다. 서경석-이윤석이나 강호동-유재석, 이경규-김용만처럼 콤비 플레이를 즐기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지 않은가. 이렇게 쭉 써놓고 보니 신기하지 않은가? 그녀는 순간 순간 번뜩이는 재치와 잘 조련된 감각, 화려한 말솜씨만으로 15년째 이 거칠고 위태로운 바닥을 헤쳐나가고 있는 것이다.



말이 자신의 최대 무기인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그녀는 다독가로 정평이 나 있다. 수필, 소설, 시, 심지어 심리학 서적까지 종류를 불문하고 잡히는 대로 읽는 것으로 유명한 그녀는, 책에서 얻은 아이디어와 통찰들로 꾸준히 스스로를 재충전한다. 단순한 입심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FM 라디오 DJ로서 ‘찰진’ 진행을 계속 할 수 있었던 비결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사실 그녀 이전에 <정오의 희망곡>을 진행했던 그 쟁쟁하던 DJ들을 떠올려보면, 코메디언 출신 여자 DJ의 장수를 예상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정선희 직전의 DJ는 폭발적인 입담의 소유자 김원희 아닌가. 열성적인 팬들을 보유했던 김원희의 후임으로 온다는 것은 그것이 누구든지 부담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처음에는 ‘김원희를 돌려내라’라는 의견도 있었다. 제 아무리 산전수전 다 겪은 정선희라 하더라도 그런 반응에 마냥 초연할 순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가족 같은 애청자들을 거느리고 만 3년 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자 코메디언 출신 단독 DJ로는 초유의 기록이다. 지난 3년 간 그녀의 말에 함께 웃고 울었던 청취자들은 평상시에도 정선희를 ‘선희언니’라고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다. 오후의 나른함을 날릴 발랄함 뿐만이 아니라, 사연 하나 하나에 진지한 조언과 진심어린 말을 건낼 줄 아는 깊은 속내까지 겸비한 사람이 어디 흔한가. 이것이 언니처럼, 누나처럼 곰삭은 상처를 도닥여 위로해주는 법을 아는 정선희의 힘이다.








명민한 예능인들이 많이들 그런 것처럼, 그녀 역시 세심하고 예민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다. 쉽사리 인터뷰를 해주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고, 본인의 신앙에 어긋나는 활동은 단호하게 거절하는 원칙주의자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단련하고 계발하는 그녀는 이홍렬이나 이경규, 이봉원 등의 쟁쟁한 선배들이 유학을 목적으로 가던 일본으로의 ‘진출’을 모색하기도 한다. 유머의 코드도 다르고 경쟁도 훨씬 치열하지만, 다른 것을 떠나 말을 무기로 삼은 정선희에게 언어의 차이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장벽일 터였다. 이미 일본 진출의 첫 발을 뗀 조혜련과는 달리, 정선희는 이미지와 몸짓 만으로 웃기는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꾸준히 일어를 배워온 정선희는, 이젠 남들에게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능숙한 일어를 구사한다. 자기계발에 부지런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조혜련조차 ‘항상 꾸준히 뭔가를 준비하고 노력한다.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고 고백한다. 뭔가를 결정하고 결심하는 데는 심사숙고하지만, 일단 결정을 내리고 나면 자신의 선택을 믿고 전념하는 그녀의 스타일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본인이 하고자 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은 기어코 해내고야 마는 그녀의 진면목은 <황금어장>에서 더 빛을 발한다. 정선희는 지금 MBC가 야심차게 선보인 예능 프로<황금어장>에서 매 화 다른 역할로 변신하며 꽁트 코메디를 선보이고 있다. 시청자들의 고민을 꽁트로 재현하고 해결방안을 고민해본다는 포맷 자체는 신동엽과 김원희가 선보였던 <헤이 헤이 헤이>와 흡사하다. 그러나 사실 스튜디오 코메디는 MBC가 꾸준히 고집해왔던 ‘정통 코메디’ 아닌가. SBS와 KBS가 스튜디오 코메디 포맷을 폐기하고 공개 코메디로 수 년간 코메디 전성시대를 이끌어가는 것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봐야 했던 MBC 역시 <웃는day>를 포기하고 <개그夜>를 선보였다. 정선희는 그런 가운데에서 강호동이라는 거물과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고 균형을 맞추면서, 코메디 연기가 전무한 임채무와 정통 코메디 연기는 처음인 신정환과 함께 쇼를 성공적으로 견인했다. MBC가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한 정통 코메디를 부활시킨 주역이 된 것이다. MC로 직종을 전환한 예능인들이 흔히 하는 말, ‘저도 언젠간 꼭 정통 코메디에 다시 도전하고 싶어요’라는 말에 어떤 이들은 ‘여긴 경쟁이 치열해서 돌아와도 적응할 수 없을 것이다. 가서 MC나 열심히 하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렇지만 정선희는 자신의 말을 의례적인 말로 묻어 두지 않고 실행에 옮겼으며, 그리고 멋지게 성공했다. 이젠 한 물 갔다고 여겨지던 스튜디오 꽁트 코메디로 말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지난 세월 정선희를 정말 여러 창구로 만났다. 특별히 항상 같이 다니는 콤비는 없어도, 자신과 호흡을 맞추고 말을 원활하게 주고 받을 수 있는 파트너들과 함께 힘을 조절해가면서 몇 년째 쇼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부드러움을 보라. 유재석처럼 모두를 감싸안지는 않아도, 이경규처럼 좌중을 사로잡고 쇼를 ‘지휘’하지는 않아도, 강호동처럼 넘어지고 구르면서 상대를 확 끌어당기지는 않아도 그녀는 대화의 흐름, 쇼의 흐름을 읽고 적절한 부분에 들어가고 웃음의 코드를 증폭시킬 줄 안다. 들어가야 할 부분과 빠져야 할 부분을 정확하게 읽고 있는 그녀는 기본적으로 상대의 대화, 상대의 유머를 돋보이게 하는 방법을 구사한다. 반면 몸을 쓰는 프로그램에서 그녀는 촉새처럼 상대를 공격하고 자신을 과시한다. 그것도 큰 힘을 들이지도 않고 말 몇 마디로 경제적으로 해치운다. 그녀는 그 프로그램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 자신의 말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경지에 오른 것이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자, 다시. 첫 번째 문단과 동어반복이 되겠지만, 그녀의 활동 범위를 살펴보자. 그녀는 일요일 아침 10시부터 12시까지 채널을 갈아 타며 아침시간을 장악하고, 저녁 6시부터 속사포 같은 입담으로 상대를 제압한다. 평일엔 12시부터 2시까지 청취자들의 귓가를 간지럽히며,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3시면 어김없이 찾아와 음악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목요일 저녁 7시 30분엔 소비자 권익을 위해 뛰며, 금요일 밤 9시면 영화 소식을 전해주고는 쉬지도 않고 11시부터 꽁트 코메디를 선보인다. 읽기만 해도 숨이 차는 스케쥴. 매일 매일을 초단위로 쪼개서 달리면서도 힘든 내색은 커녕 시청자들에게 활력소가 되고자 쉬지 않고 달리는 데뷔 15년차 코메디언 정선희. 그녀는 더없이 바쁜 지금도 끊임없이 꿈을 꾼다. 연극 무대에도 오르고 싶고, 본격적인 일본 진출도 이루고 싶은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찬란한 미래를 낙관하고 도전하는 것이 비단 철부지들만의 특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에 동감한다. 그런 정선희를 지지한다.









출처 – tintin의 백가쟁명 예인열전

http://www.maisondequartet.net

comments 7

1. 일요일 밤의 제왕 – 이경규









강호동은 예전 한 방송에서 하루 바짝 많이 웃기는 건 쉬운 일이지만, 매일 매일 조금씩 꾸준히 웃기는 것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경규는 1981년도 MBC 개그콘테스트 은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26년간 온 국민들을 웃기고 울렸다. <청춘만만세>나 <일요일 밤의 대행진>에서 그는 특유의 눈알 굴리기 묘기와 엉터리 중국어를 선보였고, 쿵후 솜씨를 곁들여 이소룡 흉내를 선보이며 단역치곤 나쁘지 않은 커리어를 이어갔다.








그가 본격적으로 지금의 인기를 얻게 된 것은 1989년 주병진과 함께 <일밤>에 출연하면서부터였는데, 점잖은 신사 이미지를 고수하던 주병진의 옆에서 그는 정치 풍자의 악역을 하기도 하고 토크쇼의 감초 역할을 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1991년, 사회적 명사와 스타들을 골탕먹이던 ‘몰래카메라’로 명실공히 <일밤>의 심장이 된다. 서태지에서부터 조경철 박사까지 직업과 나이를 가리지 않고 대중들에게 친숙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속이던 ‘몰래카메라’에서 그는 특유의 짖궂으면서도 영민한 이미지를 획득한다. 정통 코메디에서 KBS에 밀리던 MBC는 <일밤>을 시작으로 버라이어티 쇼에서의 우위를 선점하기 시작했고, 그 중심에 이경규가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진행자가 주병진에서 최수종으로, 최수종에서 이문세로 바뀌며 떠나가는 동안에도 이경규는 <일밤>을 잠시 떠났다가도 어김없이 돌아왔다. 각종 영화들을 마구잡이로 패러디하던 ‘시네마 천국’에서 그는 발군의 연기자였고, 패러디 코메디의 최전방에 서서 가능성을 시험했다.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던 영화 <복수혈전>이 처절하게 실패한 이후 이경규는 와신상담 끝에 <일밤>으로 돌아와 ‘이경규가 간다’라는 코너를 선보인다. 양심냉장고를 내걸고 교통신호부터 이웃을 돕는 일까지 전 국민을 상대로 계몽캠페인을 벌였던 이 코너는 자칫 사소한 것 하나 하나를 트집잡는 밉상스러운 코너로 끝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늘이 도왔는지 양심냉장고의 첫 주인공은 열심히 사는 장애인 부부였고, 시청자들은 주말 버라이어티에서 감동을 찾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이 후의 행보를 더 말해 뭐하겠는가. 영동대로 14차선에서 어떻게든 신호를 지키겠다고 용을 쓰는 사람들을 보며 시청자들은 가슴 졸였고, 정지선 앞에서 사람들은 농담처럼 ‘이경규 있나 봐라’라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이 이후에 도래할 수많은 교양오락 프로들 – <21세기 위원회>, <칭찬합시다>, ‘신장개업’, ‘러브하우스’, ‘GOD의 육아일기’, <느낌표!> 같은 – 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나게 된 계기가 바로 ‘이경규가 간다’였던 것이다. 훗날 월드컵 시즌마다 축구장을 찾아가 분석과 응원을 겸하는 코너로 바뀐 ‘이경규가 간다’는 이경규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코너가 되었고, ‘몰래카메라’에 이어서 이경규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코너가 되었다. 물론 비슷한 포맷의 코너는 많다. 하지만 이경규가 호들갑을 떨어가며 ‘엠, 비, 씨’ 라고 말할 때 시청자들로 하여금 ‘친숙한’ 그에게 집중하게 만드는 힘은 부인할 수 없다.








그의 활약은 <일밤>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오늘은 좋은 날>에서 새카맣게 어린 후배들 사이에 끼어 바가지 머리를 하고 ‘별들에게 물어봐’ 코너에서 영구와 맹구에 필적할 만한 바보연기를 선보인다. <일요일 밤의 대행진> 시절의 꽁트 코메디를 다시 시도하며 이경규는 자신을 정상으로 올려놓은 코너 ‘몰래카메라’에서 보여줬던 영민하고 약삭빠른 이미지를 철저하게 배반한다. 몸에 꽉 끼는 반바지에 색동줄무니 티셔츠를 입고 ‘별뜨레게~무러봐!’ 라고 외치는 이경규는 시청자들에겐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코너는 대성공이었고, 이경규는 자신이 명성을 얻기 전 몸담았던 꽁트 코메디의 영토를 수복하는데 성공한다. 인생의 오점이자 돌이킬 수 없는 실패처럼 여겨졌던 <복수혈전> 후 그는 더욱 더 능수능란해졌고 지능적으로 변했다. 그리곤 돌연 일본으로 떠났다.








일본 유학을 다녀온 후 더 깊어지고 더 풍부해진 개그의 폭을 자랑하던 이홍렬에게서 영향을 받았던 걸까. 1998년 11월. 그는 ‘예림이’와 ‘예림엄마’를 한국에 남겨둔 채 일본으로 떠났다. 정상의 자리에 서 있을 때였고, 김국진, 김용만과 함께 MBC 예능을 책임지고 있던 때였다. 스스로 한계라고 느꼈을까. 그는 자리를 비우며 김용만이 MBC의 간판스타가 될 계기를 만들어 주었고, 우리가 그를 잊어버리기 전에 돌아왔다. 1년 만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만 그를 위해 변명하자면, 한국 예능프로그램이 일본 프로그램을 베껴오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칭찬합시다’로 MBC 예능국의 간판스타가 된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가 도입한 ‘자막’ 역시 일본에서 먼저 시작하던 것 아닌가. <일밤>의 ‘요리왕’이라거나, <황금어장>도 일본의 <스마스마> 표절 의혹이 제기되었고, 국민 예능프로그램이 되어버린 <스펀지> 역시 표절 시비에 시달렸다. 어디 일본 뿐이겠는가. 근래엔 <웃찾사>의 ‘나몰라 패밀리’가 미국의 <데이비드 샤펠 쇼>를 표절했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남자 셋 여자 셋>, <순풍 산부인과>, <뉴욕 스토리> <뉴 논스톱>, <세 친구>, <똑바로 살아라> 등에서 멋대로 표절한 <프렌즈> 에피스드들만 모아도 두 세 개 시즌 정도는 거뜬히 재구성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이경규가 진행하던 프로그램들만큼은 그 표절 시비에서 자유로운 편이었다. <이경규가 간다>가 일본 TBS의 <전파소년>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다양한 아이템과 그 변용으로 인해 그 지적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일본 예능 프로그램들에서 그는 ‘아이디어’를 얻었고, 이는 외국 프로그램을 습자지에 대고 그리는 것처럼 똑같이 베끼는 여타 프로그램들의 몰지각함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돌아온 그는 <전파견문록>에서 여러 코너를 진행하다가 아이들과의 선문답같은 퀴즈로 정착한다. 아이들을 한없이 어리고 무지한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늘 눈높이를 맞추고 (그는 실제로도 아이들과 대화할 때 무릎을 꿇고 실제 눈높이를 맞춘다!!) 그들의 시선에서 대화를 나눴다. 아이들에게 친절하고 다정한 멋쟁이 신사의 이미지와, 조형기와 주영훈을 놀리고 게임의 룰을 멋대로 조율하는 장난꾸러기의 두 가지 이미지를 번갈아 보여주며 이경규는 ‘이경규 없으면 안되는 프로’를 또 하나 만들어냈다. 상상해보라. 전파견문록에 조형기가 없을 수도 있고, 주영훈이 없을 수도 있지만 이경규가 없다면 그 프로그램은 다른 누가 대신할 수 있겠는가? 반면 <일밤>에서 ‘건강보감’을 진행하며 건강에 목숨 건 중년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더니, ‘한다면 한다’와 ‘배워봅시다’를 묘하게 섞어놓은 듯한 컨셉의 코너였던 ‘대단한 도전’을 선보이며 김용만과의 찰떡호흡을 맞추며 온갖 종목의 체육을 섭렵했다. 그는 ‘건강보감’에 이어 이 코너에 이르기까지의 행보에서 그의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다. 바로 ‘날방’을 외치며 몸을 사리고, 욱하는 성질을 죽이지 못해 한참 아래인 동생 김용만과 바보처럼 티격태격 싸우는 ‘위기의 중년’ 이미지가 바로 그것이다.








이경규의 ‘외유’가 시작된 것이 바로 이 무렵이다. 영화로의 외유가 아니라, 고향과도 같던 MBC에서의 외유였다.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MBC 예능 오락프로그램의 무게 중심은 김국진 김용만의 황금콤비로 이동해있었다. <테마게임>에서 단순한 개그가 아니라 정극연기에 대한 가능성까지 발굴해 낸 김국진과 재간둥이 김용만의 콤비 플레이는 <21세기 위원회>, 그리고 독립해서 나온 <칭찬합시다>를 이끄는 힘이었다. 이경규는 후배들이 자리를 차지한 MBC 오락에서 자신의 자리를 억지로 넓히기보단 KBS로 눈을 돌렸다. 그 때 KBS의 간판 코메디언은 심형래의 뒤를 이을 주자로 손꼽히던, 서세원의 직계 심현섭이었다. 이경규는 심현섭과 함께 <이경규, 심현섭의 나이트쇼>, 그리고 그 후신이라 할 수 있을 <이경규, 심현섭의 행복남녀>를 진행했다. 결과가 그닥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 이후 그를 다른 방송사에서 보는 것이 한결 덜 어색해진 것이 사실이다. <테마쇼 인체여행>, <夜 한밤에>, <그랑프리쇼 여러분>이라거나(이상 KBS), <이경규의 거짓말 잡아내기>, <이경규의 굿타임>, <유쾌한 두뇌검색>, <도전 성공시대> 등의 (이상 SBS) 프로는 이경규에게 썩 잘 맞는 옷은 아니었지만, 그가 그저 MBC에만 안주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엔 모자람이 없어보인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요새 여기 저기에서 이경규가 위기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웃는 데이>의 실패도 그렇거니와, <강력추천 토요일>의 한 꼭지였던 ‘이경규의 이미지 서바이벌’, <일요 스타워즈> 등의 부진은 확실히 그의 시대가 점차 지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일밤>에서 선보인 ‘상상원정대’ 역시 별 다른 아이템 없이 코메디언들의 ‘짤방’만 생산해내다가 비난 속에 막을 내렸고, 그 스스로도 <무한도전>이나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 등에 패널로 출연해 ‘너희들도 이제 한 코너 가격에 세 코너 하게 될 날 그리 멀지 않았다’며 농담처럼 자신의 부진을 시인한 바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한국같은 방송 환경에서 26년간 생존한 코메디언이 누가 있는가? 故 이주일 선생과 故 김형곤 선생 이후 이렇게까지 긴 세월 동안 최고의 자리에서 군림하고 있는 현역은 없다. 전유성은 더 이상 방송에 나오지 않으며, 김미화는 시사정보프로그램과 토크쇼를 진행하며 한국의 오프라 윈프리를 꿈꾼다. 심형래는 영화에 미쳐 몇 년 째 <디-워>에 매달리고 있지 않은가. 그나마 현역이라 할 만한 사람은 최양락인데, 그 역시 이경규의 아성엔 미치지 못한다.








이경규는 <복수혈전> 이후에 오히려 더 빛나는 별이 되었고, 정상이라 생각될 때 일본 유학을 감행한 후 자신이 이루었던 최전성기를 뛰어넘었다. 그리고 최근엔 수많은 비난 속에서도 <몰래카메라>를 성공적으로 부활시켰다. 이번 월드컵 때 월드컵의 다양한 표정들을 가장 잘 잡아낸 코너는 <이경규가 간다>가 아니었던가. 난 이경규가 어떤 방식으로든 지금의 부진을 금새 이겨낼 거라고 기대한다. 후배 양성을 위해 물러나란 말은 그에겐 먹히지도 않을 것이다. 그는 현역인 시절, 최고이던 시절에 이미 강호동과 김용만을 키웠고, 심지어는 연결고리가 호통말고는 보이지 않는 박명수조차 그의 수제자를 자처한다.








물론 부진을 씻는 데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위기의 중년 이미지는 재미있지만 대중들이 ‘사랑’하기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유재석과 같이 패널들을 감싸안고 가는 힘이 그에겐 없다. 말재간으로야 쌩쌩한 김제동, 탁재훈을 이기겠는가. 이경규는 단독으로 나와서 프로그램을 장악할 때가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고, 확실히 근래에 사랑받는 타입의 예능인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가 패널의 자리를 덤덤히 수용한 <무한도전>과 <놀러와>는 또 얼마나 빛나던가. 어쩌면 ‘패널로 등장했을 때 가장 빛나는 예능인’으로의 변신은 이경규가 다시 정상을 되찾는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다른 패널들과의 화음을 이루는 방법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고 말이다. 그가 예전같지 않다고 슬퍼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몹시 서운하긴 하겠지만, 그는 MC라는 위치에서 보여줄 수 있는 수많은 모습을 지치지 않고 보여줬다. 그리고 그것은 한 개인이 보여준 것이라고 믿기엔 놀랄 정도로 방대한 스펙트럼을 그리고 있지 않은가. 이경규가 진행자의 자리를 어느 정도 포기하고 패널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탐색하기 시작한다면, 그의 방송 인생은 지금껏 이루어놓은 것만큼이나 오래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경규를 더 오래 보기를 원하는 나같은 시청자들은 그가 오래 오래 우리 곁에 있단 사실만으로도 만족할 것이다. 우리에겐, 아니 적어도 나에겐 아직 그가 필요하다.










출처 – tintin의 백가쟁명 예인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