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자룡의 뛰어난 무예는 어떻게 얻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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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성(山東省) 제성현(諸城縣)의 옛 현성(縣城)에서 남쪽으로 25리 되는 곳에 상산(常山)이라고 부르는 산이 있으며 산 뒤편에 있는 석애(石崖), 즉 돌 바위로 된 벼랑에는 샘구멍이 하나 있어 지금까지도 철철 거리며 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이런데서 샘물이 나오는 것은 매우 신기한 일인데 전설에 의하면 이 샘구멍은 조자룡(趙子龍)이 장창(長槍)으로 뚫은 것이라고 한다.



조자룡은 소싯적부터 무예를 연마하기 좋아하여 칼이며 창이며 활이며 좋아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특히 장창은 밥 먹을 때나 잠 잘 때에도 품에 안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명성이 없는 평범한 스승의 지도를 받았기에 15세가 되도록 창법(槍法)은 크게 진전되지 못하였다. 자룡의 아버지 또한 무장(武將) 출신으로 일심으로 아들이 뛰어난 무예를 습득한 진용(眞龍)과 같은 인물이 되어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기를 언제나 염원하였다. 때문에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뛰어난 스승을 구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자룡을 자기 앞으로 오도록 하더니 수염을 쓰다듬고 웃으며 말하였다.

“얘야, 너는 참으로 복도 많구나. 뛰어난 스승을 나는 결국 찾아내고야 말았으니. 여기에서 동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산 하나가 있는데 상산(常山)이라고 한다. 그 산 위에는 도인 한 분이 계신데 사람들은 운산도사(雲山道師)라고 부른다. 무예가 매우 뛰어났지만 성격이 괴팍하여 쉽게 제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는구나. 그러니 너는 반드시 그 분에게 제자로 받아달라고 간절히 애걸하여라. 네가 뛰어난 무예를 익힐 수만 있다면 3년이 아니라 그 두 배 세 배 되는 세월이 걸리더라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오늘 즉시 출발하도록 하여라.”



말을 마친 아버지는 곧 사람을 시켜 자룡의 행장을 챙겨주라고 하였다. 자룡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매우 기뻐하더니 행장을 등에 지고 준마(駿馬)에 올라타고 장창을 움켜쥐더니 아버지에게 작별을 고하고 동쪽을 향해 치달렸다. 길을 떠난 지 9일이 되던 날, 앞에 산이 하나 보이기에 알아보았더니 바로 이 산이 상산 이었다. 이에 자룡은 급히 말을 끌고 정상까지 올라갔다. 정상에는 반듯한 집 한 채가 있었으며 그 안에는 기와로 된 세 동의 건물이 늘어서 있었는데 잿빛의 기와며 담장이 창연한 나무숲으로 둘러 쌓인 것이 매우 외지고 고요하였다. 대문 앞에 이르니 돌로 된 걸상 위에는 눈같이 하얀 눈썹과 수염에다 푸른 도포를 걸친 노인이 정좌하고 있었는데 그는 붉은 얼굴과 가슴을 반쯤 치켜들고 실눈을 뜬 채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위에는 도동(道童)들이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이 분이 바로 운산도사라고 판단한 자룡은 그에게 다가가 공손하게 읍을 하고 말하였다.

“도사님, 조자룡이 스승으로 모시려고 이렇게 찾아 왔습니다. 단지 도사님이 저를 제자로 거두어 무예를 전수해 주신다면 설령 칼산을 오르고 불바다에 뛰어들라 하시더라도 달게 여기고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노인은 천천히 눈을 뜨면서 자룡을 한동안 세심히 살펴보더니 그때서야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하였다.

“나의 제자가 되려한다면 조건이 있다. 우선적으로 나를 위해 한 가지 일을 해주어야만 한다. 이 일은 매우 고되고도 어려워 빨라야 3년, 늦으면 5년이 걸리며 의지가 약하면 아예 평생이 걸려도 마칠 수가 없을 것이다. 이 일을 다 마친 후에야 비로소 무예를 배울 수 있다. 그러니 네가 원하여 머무를 것인지 떠날 것인지는 스스로 판단하여 정하여라.”

말을 마친 노인이 일어나 집안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자 자룡이 급히 물었다.

“저는 머무르기를 원합니다. 어떤 일을 해야하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자 그 노인, 즉 운산도사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말하였다.

“물어볼 필요도 없다. 내일이면 자연히 알게 될 터이니.”

자룡이 어찌 감히 다시 물을 수 있겠는가. 그저 마음속으로만 생각하였다.

“어째서 아버님이 이 노인이 괴팍하다고 말씀하셨는지를 알겠구나. 그러나 내 이미 무예를 배우기를 작심하고 왔으니 어떤 일이 있더라도 참아가면서 3년 또는 5년 아니 10년 이상이 걸리더라도 결코 해내고 말 것이다.”

이렇게 다짐을 한 자룡은 급히 노인을 따라 집안으로 들어와 말안장을 부리고 행장을 풀고는 그날부터 산 위에서 살기 시작했다. 다음 날 새벽, 자룡이 막 일어나 보니 운산도사는 문 앞에 서서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나를 따라 오너라.”

라고 말하고는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 나갔다. 자룡은 바짝 그 뒤를 좇아 한 걸음 한 걸음 길을 따라 하산하여 산 뒤쪽의 어느 지점에까지 이르렀다. 이곳이 바로 상산 배후에 있는 대협곡의 위쪽으로 동서로 두 가닥의 산줄기가 가로막고 있었다. 남쪽 산기슭에는 1장(丈)이나 되는 돌 바위로 된 벼랑이 있었으며 그 북쪽에는 사방 1무(畝)가 되는 개간된 평지가 있었는데 잡초가 무성한 것이 매우 외진 곳이었다. 자룡은 마음속으로 생각해 보았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며 무슨 일을 할 수가 있을까?”

이 때에 운산도사는 낮은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얘야, 이 바위 안에는 물이 있는데 너는 여기에 샘 하나를 파야만 한다. 샘을 파는 위치는 사람이 말을 타고 있을 정도로 높아야한다. 가로와 세로와 깊이는 한 뼘만큼 되어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릴 정도가 되어야한다.”

자룡이 즉각 응하는 몸짓을 하자 도사는 손을 내저으며 말하였다.

“서두르지 마라, 어려운 일은 아직 또 있다. 이 샘을 파는 법은 매우 특별난 것이다. 첫째, 추나 끌이나 정과 같은 것이 아닌 창으로만 파야 한다. 둘째, 땅위에서 파면 안되며 반드시 말을 타고 한 바퀴 돈 다음 목표를 겨냥하여 한 창에 한 번씩 찔러서 파야지 두 번 이상씩 찌르면 안 된다. 셋째, 둥글게 파서는 안 되며 반드시 네모 반듯하게 사방 한 뼘의 길이와 높이로 파되 모서리가 반듯해야만 한다. 오늘은 시작하지 마라. 내 집 후원에 9필의 말과 99개의 반룡금창(蟠龍金槍)이 있는데 모두 네가 사용토록 해라. 다만 말을 먹이고 창을 가는 일은 네 스스로 해야 한다. 샘을 다 파는 날이 무예를 배우기 시작하는 날이니 이제부터는 네가 알아서 시행토록 해라.”

말을 마친 도사는 자룡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곧 몸을 돌려 돌아가 버렸다.



이렇게 되니 어린 자룡으로서는 참으로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1장이나 되는 바위와 1무나 되는 평지를 바라보고 다시 예리한 창끝을 보면서 샘을 과연 어떻게 뚫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니 절로 탄식만 나왔다. 그러나 다시 문득 아버님께서 당부하신 말씀과 샘물을 뚫어야 만이 무예를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자 그는 즉시 혼신에 용기가 일어 행장을 수습하러 나는 듯이 산 위로 달려갔다.



그 날부터 자룡은 샘을 뚫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바위에 사방 한 뼘만큼 되는 정사각형의 과녁을 그렸으며 그 높이는 사람이 말을 타고 있는 정도로 하였다. 그리고 나서 말에 올라 창을 잡고는 평지를 한 바퀴 돌아서 바위 앞으로 왔을 때 호흡을 가다듬고 정신을 모아 과녁을 향해 첫 번째 창을 찔렀다. 이 첫 번째 창은 별 문제 없이 불꽃이 사방으로 튀면서 과녁을 맞추었다. 그러나 산골짜기에서 ‘치아악’하며 메아리가 울려올 때 자룡은 두 팔은 마비가 되듯 얼얼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과녁에 바짝 다가가 살펴보니 바위에는 단지 하얀 흰 점만이 남아 있었으며 과녁으로부터도 2,3촌(寸) 정도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확인되자 자룡의 마음은 무겁게 내려앉았다.

“아뿔싸! 너무 힘 주는 데만 의식했기에 제대로 과녁에 맞지도 못했구나. 우선 정확할 ‘준(準)’자부터 염두에 두고 연습해야만 하겠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샘을 깊게 뚫는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어쩔 수 없이 다시 자룡은 말에 올라 창을 잡고는 한 바퀴 돌았다. 이렇게 50번 가까이 창 질을 해대자 비로소 ‘차악’하는 소리를 내며 과녁 안에 적중되었다. 자룡은 거듭 쉬지 않고 창 질을 하였으며 해 저물 무렵이 되자 10번에 8번 정도는 정확하게 과녁 한가운데를 적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겨우 하루를 하였는데도 그의 정력은 고갈되었다. 손아귀는 찢어지고 팔은 부어 올랐으며 허리는 시큰거렸다. 그러나 결단코 무예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일자 그는 파김치가 된 몸으로 말에게 먹이를 주고 창을 뾰족하게 다 간 후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자룡은 다시 어제처럼 바위 아래로 와서 창 질을 하였다. 이렇게 계속하기를 3달이 지나자 몸은 점점 적응이 되어 팔도 허리도 아프지 않으면서 정확도는 크게 높아졌다. 창 질을 할 때마다 과녁 안에 명중됨은 물론, 과녁 안의 어느 부분이건 자신이 원하는 곳을 겨냥하여 찌르면 영락없이 그곳에 적중되는 것이 털끝만큼의 오차도 없게 되었다. 그러자 자룡은 생각하였다.

“이 정도면 ‘준(準)’자 관문은 통과한 셈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역(力)’자에 대해 신경을 써서 연마하여야겠는데 찌르고 나면 그저 흰 점만 그려질 정도이니 어느 세월에 샘물이 나올 수 있겠는가?”

이에 그는 다시 이 점에 대해 머리를 써서 말은 이전보다 빨리 달리도록 창을 찌를 때에는 더욱 힘이 들어가도록 유의해서 연습하니 과연 흰 점은 이전보다 더욱 크고 깊게 되었다. 이렇게 무수히 창 질을 해대기를 다시 3달 동안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자룡은 여느 때처럼 한동안 창 질을 하다 말을 멈추고 과녁을 찬찬히 관찰하며 그 안에 쌓인 돌가루를 털어 내어 보았다. 반듯하게 패인 구멍은 비록 손가락 세 개가 들어갈 만큼 되었지만 이제까지처럼 창 질을 할 때마다 약간의 돌가루만 생길 뿐 손톱 정도의 돌 조각조차 안 생긴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었다.

“단지 힘에만 의지한 창법으로는 안 된다. 보다 교묘한 방법, 즉 ‘교(巧)’자 관문을 통과해야만 할 것이다. 장작을 패는 데도 비법을 터득해야 되는데 하물며 창으로 바위를 뚫는데 있어서야 어찌 이 정도로 되겠는가! 내 나름대로 한 번 비법을 연구해 시행해 보아도 무방하겠지.”

이렇게 마음을 정한 자룡은 즉각 다시 말에 올라 창을 움켜쥐고는 바위를 향해 치달렸다. 그리고 창끝이 과녁에 닿는 순간, 두 팔에 더욱 힘을 쥔 채 단전에 힘을 모으고 기합 소리를 지르면서 창 자루에 압박을 가하였다.



처음 시도해 본 이 방법은 과연 효과가 있었으니 딱딱한 바위가 움푹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손끝에 전해지면서 손톱 크기의 돌 조각이 한 움큼 파여져 나오는 것이었다. 이에 자룡은 매우 만족하였으며 다시 쉬지 않고 창 질을 해댔다. 그러자 샘구멍은 점점 깊어만 갔으며 자룡은 어쩔 줄 모르게 기뻐하였다. 이런 식으로 한 번 또 한 번, 하루 또 하루, 쉬지 않고 창 질을 해 댔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왔으며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와서 어느 덧 만 3년이 지나가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자룡은 샘이 이미 1척(尺)이나 깊이 파여져 바위 속에서 가느다란 물줄기가 천천히 흘러 나와 땅위로 떨어지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창으로 찌를 때에도 이전처럼 ‘차악’하는 소리가 아닌 ‘두웅’하는 둔탁한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이제는 대략 수맥(水脈)에서 매우 가까워 졌을 것이다.”

라고 단정한 자룡은 다시 말에 올라 한 바퀴 돌고는 더욱 힘차게 창 질을 하였는데 갑자기 ‘펑’하는 소리와 함께 창대가 바위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창을 뽑아내니 즉각 한 가닥의 맑은 물줄기가 ‘쏴악’하는 소리와 함께 힘차게 땅위로 흘러 내렸다. 끝내는 샘물이 뚫리고 만 것이다! 이에 자룡은 눈물이 나도록 기뻐하면서 다시 연이어 몇 번의 창 질을 하여 샘구멍을 반듯하게 만든 후, 사부(師傅)에게 알리기 위해 쏜 살 같이 산 위로 달려갔다.



소식을 들은 운산도사는 크게 기뻐하며 산 아래로 내려와 살펴보았다. 과연 바위에는 하나의 반듯한 샘구멍이 뚫렸는데 정확하게 사람이 말을 탄 것만큼 높았으며 시원한 물줄기가 안에서 쏟아져 나와 땅위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에 운산도사는 이 장쾌한 모습을 연신 쳐다보면서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크게 터트리더니 말하였다.

“애야, 애당초 너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네가 의지가 굳은 인물임을 간파했었는데 오늘에야 과연 내 눈이 틀림없었다는 것이 증명되었구나. 네가 3년 동안 이 샘을 판 것은 비단 나를 위해 일을 해준 것일 뿐만 아니라 이곳 백성들을 위해 큰 일을 해준 것임을 알아야 한다. 너도 알다시피 이 상산 일대는 10년 동안 9번이나 가물어 해마다 이곳에 와서 기우제를 지내곤 하였다. 심할 때는 먹을 물도 구할 수가 없었지. 이제 샘물이 생겼으니 이 부근의 몇몇 마을은 시름을 놓게 되었구나. 또한 너에게 샘을 파도록 시킨 것은 물을 얻기 위함만이 아니었다. 더욱 중요한 목적이 있었으니 이는 바로 너에게 고도의 무예를 연마하기 위해 이렇게 힘든 일을 시킨 것이다. 이제 너는 창법의 ‘준(準)’자, ‘역(力)’자 뿐만 아니라 ‘교(巧)’자의 비법까지 터득하게 되었다. 이를 기초로 하여 초식상(招式上)에 약간의 기술만 보탠다면 어떤 무기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다. 이제 내일부터 무예를 배우도록 하자.”

이때서야 자룡은 크게 깨우치면서 사부의 애당초 뜻을 알게 되었으며 마음속 깊이 크게 감격하였다. 그리고 자룡은 다시 산 위에서 반년을 머무르면서 도(刀),창(槍),검(劍),극(戟) 등, 십팔반무예(十八般武藝)를 모두 습득하였다. 특히 장창은 72개의 초식을 귀신처럼 구사하여 말 위에서건 말 아래에서건 원하는 곳이면 어떤 자세에서라도 백발백중인지라 사부조차 눈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자룡이 하산하는 날, 사부는 그를 산아래 냇가까지 전송하며 천천히 읊조리듯 말하였다.

“얘야, 이 샘물의 명칭은 내가 이미 운천(雲泉)이라고 지었다. 이는 나의 도호(道號)인 운산(雲山)에서 따온 것으로 너의 이름도 이를 따라 조운(趙雲)이라고 하여라. 그리고 아명(兒名)인 자룡(子龍)을 자(字)로 하여 구름을 넘나드는 용과 같은 인물이 되어라. 이제부터는 어디에 있던지 너의 무예가 어떻게 연마하여 얻어진 것인가를 잊지 말고 절대로 허송세월해서는 안 된다.”

자룡은 기쁜 마음으로 황급히 대답하고 사부에게 이별의 절을 올린 뒤 상산을 떠났다.



그 후, 자룡은 과연 뛰어난 무예와 인내심과 강직함으로 큰공을 이루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장판파(長坂坡) 전투로 아두(阿斗)를 품에 안고 단창필마(單槍匹馬)로 겹겹이 쌓인 포위망을 치고 나와 만고에 미명(美名)을 남긴 것이다. 그는 또한 은사(恩師)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전투에 임할 때마다 상대가 그의 이름을 물으면 곧 당당하게 외쳤다.

“상산(常山)의 조자룡(趙子龍)이다!”

그러나 그가 상산에서 샘을 판 사실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매우 드물기에 여기에 소개해 본 것이다.

Dr.kchris

Hello, I'm Dr.kchris, a neuroscience researcher. I love studying and trying new things and also love challenging myself. Have a great d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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