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거친 정글을 입담으로 헤쳐 온 우리들의 언니 – 정선희










정선희가 처음으로 데뷔를 한 것은 1988년 KBS <비바청춘>을 통해서였다. 당시 염광여고 대표로 김지선과 함께 출연했던 정선희는 훗날 자신이 인기를 모으게 되는 ‘인민배우’ 캐릭터의 원형 격인 ‘북한이 바라본 남한의 88년’이란 주제의 꽁트를 선보인다. 이때 정선희를 눈여겨보아둔 SBS 이풍호 PD의 권유로 그녀는 1992년 SBS 공채 1기 개그맨이 되었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유명인들도 보고, 선배들에게 찬사도 들을’ 것을 상상하며 뛰어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희극인의 길이 그렇게 쉬운 길이라면 애초에 이 코너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문 매니지먼트도 없고 선후배 간의 위계질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공고하던 시절, 그녀는 무명의 세월을 견디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동료 남자 코메디언들이 지명도를 쌓아가며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며 초조해 하던 그녀는 늘 아이디어는 칭찬받았지만 성과는 없던 시절이라고 이 시기를 회고한다.



고등학교 때 잠시 선보인 바 있던 ‘인민배우’ 컨셉으로 서서히 인기를 모을 때 쯤, MBC 예능국에서 출연제의를 받고서는 아무 고민없이 제안을 승락한 정선희는 그로 인해 SBS를 떠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기존에 출연하던 코너와 같은 시간대에 방영되는 경쟁 프로그램에 멋도 모르고 나갔으니 그것이 용납될 수 있는 일이었겠는가. 아무리 경력이 쟁쟁한 사람들이라도 도의상 피하는 일을 새파랗게 어린 신인이 저지른 것이다. 그렇다고 MBC에서 자리를 잡았는고 하니 그것도 아니었다. 출연하던 코너가 어그러지자 그녀는 데뷔 3년 만에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 이런 저런 과정을 거쳐 간신히 KBS에 자리를 잡고 불안한 미래를 헤쳐나가던 그녀는, 자신을 좋게 봐 준 당대 최고의 개그우먼 이영자의 응원에 힘입어 KBS 예능프로에 닥치는 대로 출연하기 시작했다. <코메디 1번지>, <코메디 세상만사>, <폭소대작전>을 종횡무진하던 그녀는 마침내 1997년, <슈퍼 선데이>의 부속 코너였던 시트콤<금촌댁네 사람들>에서 임창정의 아내 역할로 백상예술대상 여자코미디연기상을 받으며 자신의 재능을 세상에 증명하게 된다. 재미있을 거 같다는 단순한 동기로 이 정글 같은 예능계에 뛰어든지 5년 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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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백상예술대상 여자코미디연기상 수상, 1999년 한국방송대상 여자코미디언상 수상에 빛나는 경력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녀가 이런 경력들을 훈장처럼 달고 있단 사실에 놀라곤 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벌써 15년이나 됐어?’라고 반문한다. 과연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한국 예능계에 장수하는 여자 코메디언이 많지도 않을 뿐더러, 그들에게 허락된 필드조차 넓지 않은 현실에서는 같은 수준의 경력을 지닌 남자 코메디언만큼 두드러지기란 쉽지 않다. 아직까지 쇼 프로의 단독 사회자로 남자를 여자보다 더 선호하는 것이 방송계의 현실이기도 하고 말이다. 게다가 ‘천만의 말씀, 만만에 콩떡’ 외엔 이렇다 할 유행어 하나 없는 그녀는 강하게 각인되는 종류의 캐릭터는 아니다. 그렇다고 이경실만큼 뿜어져나오는 기운이 세다거나, 조혜련만큼 부담스러울 정도의 분장을 감수하면서까지 망가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도 아니다. 서경석-이윤석이나 강호동-유재석, 이경규-김용만처럼 콤비 플레이를 즐기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지 않은가. 이렇게 쭉 써놓고 보니 신기하지 않은가? 그녀는 순간 순간 번뜩이는 재치와 잘 조련된 감각, 화려한 말솜씨만으로 15년째 이 거칠고 위태로운 바닥을 헤쳐나가고 있는 것이다.



말이 자신의 최대 무기인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그녀는 다독가로 정평이 나 있다. 수필, 소설, 시, 심지어 심리학 서적까지 종류를 불문하고 잡히는 대로 읽는 것으로 유명한 그녀는, 책에서 얻은 아이디어와 통찰들로 꾸준히 스스로를 재충전한다. 단순한 입심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FM 라디오 DJ로서 ‘찰진’ 진행을 계속 할 수 있었던 비결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사실 그녀 이전에 <정오의 희망곡>을 진행했던 그 쟁쟁하던 DJ들을 떠올려보면, 코메디언 출신 여자 DJ의 장수를 예상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정선희 직전의 DJ는 폭발적인 입담의 소유자 김원희 아닌가. 열성적인 팬들을 보유했던 김원희의 후임으로 온다는 것은 그것이 누구든지 부담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처음에는 ‘김원희를 돌려내라’라는 의견도 있었다. 제 아무리 산전수전 다 겪은 정선희라 하더라도 그런 반응에 마냥 초연할 순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가족 같은 애청자들을 거느리고 만 3년 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자 코메디언 출신 단독 DJ로는 초유의 기록이다. 지난 3년 간 그녀의 말에 함께 웃고 울었던 청취자들은 평상시에도 정선희를 ‘선희언니’라고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다. 오후의 나른함을 날릴 발랄함 뿐만이 아니라, 사연 하나 하나에 진지한 조언과 진심어린 말을 건낼 줄 아는 깊은 속내까지 겸비한 사람이 어디 흔한가. 이것이 언니처럼, 누나처럼 곰삭은 상처를 도닥여 위로해주는 법을 아는 정선희의 힘이다.








명민한 예능인들이 많이들 그런 것처럼, 그녀 역시 세심하고 예민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다. 쉽사리 인터뷰를 해주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고, 본인의 신앙에 어긋나는 활동은 단호하게 거절하는 원칙주의자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단련하고 계발하는 그녀는 이홍렬이나 이경규, 이봉원 등의 쟁쟁한 선배들이 유학을 목적으로 가던 일본으로의 ‘진출’을 모색하기도 한다. 유머의 코드도 다르고 경쟁도 훨씬 치열하지만, 다른 것을 떠나 말을 무기로 삼은 정선희에게 언어의 차이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장벽일 터였다. 이미 일본 진출의 첫 발을 뗀 조혜련과는 달리, 정선희는 이미지와 몸짓 만으로 웃기는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꾸준히 일어를 배워온 정선희는, 이젠 남들에게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능숙한 일어를 구사한다. 자기계발에 부지런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조혜련조차 ‘항상 꾸준히 뭔가를 준비하고 노력한다.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고 고백한다. 뭔가를 결정하고 결심하는 데는 심사숙고하지만, 일단 결정을 내리고 나면 자신의 선택을 믿고 전념하는 그녀의 스타일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본인이 하고자 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은 기어코 해내고야 마는 그녀의 진면목은 <황금어장>에서 더 빛을 발한다. 정선희는 지금 MBC가 야심차게 선보인 예능 프로<황금어장>에서 매 화 다른 역할로 변신하며 꽁트 코메디를 선보이고 있다. 시청자들의 고민을 꽁트로 재현하고 해결방안을 고민해본다는 포맷 자체는 신동엽과 김원희가 선보였던 <헤이 헤이 헤이>와 흡사하다. 그러나 사실 스튜디오 코메디는 MBC가 꾸준히 고집해왔던 ‘정통 코메디’ 아닌가. SBS와 KBS가 스튜디오 코메디 포맷을 폐기하고 공개 코메디로 수 년간 코메디 전성시대를 이끌어가는 것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봐야 했던 MBC 역시 <웃는day>를 포기하고 <개그夜>를 선보였다. 정선희는 그런 가운데에서 강호동이라는 거물과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고 균형을 맞추면서, 코메디 연기가 전무한 임채무와 정통 코메디 연기는 처음인 신정환과 함께 쇼를 성공적으로 견인했다. MBC가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한 정통 코메디를 부활시킨 주역이 된 것이다. MC로 직종을 전환한 예능인들이 흔히 하는 말, ‘저도 언젠간 꼭 정통 코메디에 다시 도전하고 싶어요’라는 말에 어떤 이들은 ‘여긴 경쟁이 치열해서 돌아와도 적응할 수 없을 것이다. 가서 MC나 열심히 하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렇지만 정선희는 자신의 말을 의례적인 말로 묻어 두지 않고 실행에 옮겼으며, 그리고 멋지게 성공했다. 이젠 한 물 갔다고 여겨지던 스튜디오 꽁트 코메디로 말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지난 세월 정선희를 정말 여러 창구로 만났다. 특별히 항상 같이 다니는 콤비는 없어도, 자신과 호흡을 맞추고 말을 원활하게 주고 받을 수 있는 파트너들과 함께 힘을 조절해가면서 몇 년째 쇼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부드러움을 보라. 유재석처럼 모두를 감싸안지는 않아도, 이경규처럼 좌중을 사로잡고 쇼를 ‘지휘’하지는 않아도, 강호동처럼 넘어지고 구르면서 상대를 확 끌어당기지는 않아도 그녀는 대화의 흐름, 쇼의 흐름을 읽고 적절한 부분에 들어가고 웃음의 코드를 증폭시킬 줄 안다. 들어가야 할 부분과 빠져야 할 부분을 정확하게 읽고 있는 그녀는 기본적으로 상대의 대화, 상대의 유머를 돋보이게 하는 방법을 구사한다. 반면 몸을 쓰는 프로그램에서 그녀는 촉새처럼 상대를 공격하고 자신을 과시한다. 그것도 큰 힘을 들이지도 않고 말 몇 마디로 경제적으로 해치운다. 그녀는 그 프로그램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 자신의 말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경지에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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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시. 첫 번째 문단과 동어반복이 되겠지만, 그녀의 활동 범위를 살펴보자. 그녀는 일요일 아침 10시부터 12시까지 채널을 갈아 타며 아침시간을 장악하고, 저녁 6시부터 속사포 같은 입담으로 상대를 제압한다. 평일엔 12시부터 2시까지 청취자들의 귓가를 간지럽히며,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3시면 어김없이 찾아와 음악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목요일 저녁 7시 30분엔 소비자 권익을 위해 뛰며, 금요일 밤 9시면 영화 소식을 전해주고는 쉬지도 않고 11시부터 꽁트 코메디를 선보인다. 읽기만 해도 숨이 차는 스케쥴. 매일 매일을 초단위로 쪼개서 달리면서도 힘든 내색은 커녕 시청자들에게 활력소가 되고자 쉬지 않고 달리는 데뷔 15년차 코메디언 정선희. 그녀는 더없이 바쁜 지금도 끊임없이 꿈을 꾼다. 연극 무대에도 오르고 싶고, 본격적인 일본 진출도 이루고 싶은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찬란한 미래를 낙관하고 도전하는 것이 비단 철부지들만의 특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에 동감한다. 그런 정선희를 지지한다.









출처 – tintin의 백가쟁명 예인열전

http://www.maisondequartet.net

Dr.kchris

Hello, I'm Dr.kchris, a neuroscience researcher. I love studying and trying new things and also love challenging myself. Have a great d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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