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각 나라별 오대장! -오나라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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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대장 : 우금 장료 서황 장합 악진

오대장은 조조의 피붙이를 제외한 장수 중에서 정했는데,

(이를테면 조인, 조홍, 조진, 하후돈, 하후연 등 쟁쟁한 장수들.)

역시 피붙이들은 이미 오대장보다 사실상 높은 직위에 있었다.

– 오호대장군 : 관우 장비 조운 마초 황충

…익히 들어서 알고있다.

자 그렇다면 의 오대장은????

주유의 아들 주윤

주유는 아들 둘에 딸 하나가 있었다. 딸의 배필은 태자 손등이었다. 아들 주순은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여 기도위로 제수되었고 주유의 풍모가 있었는데, 요절했다. 주순의 동생 주윤은 처음에 흥업도위로 임명되었고 종실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으며, 병사 1천 명을 인솔하여 공안에 주둔했다. 황룡원년(229), 도향후로 봉해졌으며, 후에 죄를 범하여 여릉군으로 옮겼다.

적오 2년(239), 제갈근·보즐이 이름을 나란히 하여 상소를 올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인이 된 장군 주유의 아들 주윤은 지나친 칭찬을 받아 장군으로 봉해짐을 받았었습니다. 그는 특별히 두터운 대우를 받을 수 없을때는 공을 세우려고 생각하였으나, 도리어 방종하고 사용에 집착하여 매우 빨리 죄를지어 처벌을 초대하게 되었습니다. 신들의 사사로운 생각으로는, 주유는 과거 총애와 신임을 받았고, 안으로 들어오면 심복이 되었고, 밖으로 나가면 보좌하는 장수가 되었으며, 명을 받아 출정하면 죽음을 보고 돌아오는 것처럼 했습니다. 때문에 오림(적벽)에서 조조를 패배시키고, 영도(강릉)에서 조인을 도망치게하여 국가의 위험과 은덕을 떨쳐 전국이 진동하였으며 우매한 만형 중에 복종하지 않는 자가 없도록 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주의 방숙, 한의 한신인 영포일지라도 진실로 그를 뛰어 넘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대체로 적군을 꺾고 국가의 어려움을 막아낸 신하로서 옛날부터 제왕들에게 귀하게 여겨지고 중요시되지 않은자는 없었습니다. 때문에 한고조는 작위를 봉하는 서약서에서 말하기를, ‘설사 황하가 허리띠처럼 되고, 태산이 마모된 돌처럼 되더라도 그들의 봉국은 영원히 존재하도록 하여 후배 자손들에게 전하도록 한다’고 했습니다.

아울러 붉은 글로써 맹서 의식을 융숭히 하고, 종묘속에 넣어 두고 영원히 전해지게 했습니다. 이것은 공신의 후배들로 하여금 대대로 계승하여 자손뿐만 아니라 더욱 먼 후대까지도 관심을 기울려 신하의 공덕에 보답하고 표창하려는 것입니다. 간절하게 이와 같은 경지에 이르려고 하는 것은 후세의 사람들에게 권하고 경계하여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신하가 되어 죽어도 후회가 없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하물며 주유가 죽은지 오래되지 않았는데, 그의 아들 주윤을 강등시켜 평민이 되게 하였으니, 더욱더 슬픕니다. 저희들의 생각으로는, 폐하께서는 고대의 일을 고찰하여 정사를 영명하게 처리하며, 제후국을 일으키고 후계자를 세우는 것을 매우 중시하고 있으므로 주윤을 위해 청하니, 그의 죄를 사면시켜 주시고 병사들을 돌려주고 작위를 회복시켜 주어서 아침을 잘못알린 닭으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울 수 있도록 하고, 죄지은 신하도 이후에 효락을 펼 수 있도록 하여 주십시오.

손권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심복이 되어 이전에공을 세우고 나의 함께 협력하여 일을 한 자 중에는 주공근이 있었는데, 확실히 잊지 못하오, 옛날 주윤이 나이가 어렸으며, 처음에는 공로가 없었는데도 정예 병사를 받아 지휘하고 왕후 장군의 작위로 봉해진 것은 주공근을 생각하여 주윤에게 미쳤던 것이오. 그런데 주윤은 이러한 것에 기대어 주색에 빠져 스스로 방자하였으며, 앞뒤로 몇 차례 말하여 깨우치게 하였지만, 일찍이 고친 일이 없었소. 나와 주공근과의 정의는 당신들 두 사람과의 것과 똑같은데, 주윤이 성취하는 것이 있기를 바라는 심정이 어찌 멈춰 있겠소? 주윤의 죄악을 구명하여 즉시 돌아오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것은 그로 하여금 고통을 받게 하여 스스로 알도록 하려는 것이오. 지금 당신들 두 사람이 한고조의 황하와 태산의 맹서를 간절히 인용하니, 나는 부끄럽소. 비록 나의 덕행은 한고조와 같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오. 주공근의 자식이고 두 사람이 중간에 있으니, 고치도록 할 수 있다면 또한 무슨 근심이 있겠소!”

제갈근과 보즐은 누차 표를 올렸고, 주연과 전종 또한 함께 진술하여 요청하였으므로 손권은 비로서 이를 허락했다. 이때 주유는 병으로 죽었다.

한당의 아들 한종

황무 2년(223), 한당은 석성후로 봉해졌고 소무장군으로 승진했으며, 관군태수를 겸임하였다. 후에 또 도독의 칭호를 더했다. 감사군과 해번병 1만 명을 인솔하여 단양의 도적들을 토벌하러 가서 무찔렀다. 마침 질병으로 사망했다. 아들 한종이 후작을 계승하여 군대를 통솔했다.

이 해, 손권은 석양을 징벌하러 가면서 한종에게 상사가 있었기 때문에 무창을 지키도록 했다. 그러나 한종은 음란하였으며 정도를 따르지 않았다. 손권은 비록 그의 부친때문에, 힐문하지는 않았지만, 한종은 내심 두려웠다. 그는 부친의 영구를 수레에 싣고 어머니와 식구들과 수하의 남녀 수천 명을 데리고 위나라로 달아났다. 위나라에서는 그를 장군으로 임명하고 광양후로 봉했다. 그는 여러 차례 변방 지역을 침입하여 백성들을 살해하였다. 그래서 손권은 항상 이를 갈았다. 동흥 싸움에서 한종이 선봉이었는데, 참패했다. 제갈각이 그의 머리를 베어 보내서 손권의 묘에 바쳤다. —————–> 독수리 오형제 사이에서도 왕따…

감녕의 아들 감괴

아들 감괴(甘 )는 죄를 범하여 회계군으로 이주되었다가 오래지 않아 죽었다. –>이게 다야…?

반장의 아들 반평

반장은 가화 3년(234)년에 죽었다. 아들 반평은 품행이 좋지 않았으므로 회계군으로 쫓겨났다. –> 이친구도 무관심…

제갈근의 아들 제갈각

제갈각전을 읽어보면 될듯… 너무 길어서 이거까지 올리면 스크롤의 압박이… 파성넷의 제갈각전에 리플이 하나 달려있는데 그 내용이 압권….  —>아버지의 염원을 받들어 충실했군요^^

집안을 망칠 놈이다 라고 해서 진짜로 망쳤다는 뜻 ㄲㄲㄲㄲ

아 안습……. 굴욕의 독수리 오형제 ㅠㅠ

이름있는 아비에 안습한 아들들…

이렇게 오에는 인재가 없었단 말인가.

Dr.kchris

Hello, I'm Dr.kchris, a neuroscience researcher. I love studying and trying new things and also love challenging myself. Have a great d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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