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기구한 박대표 집안…

[김진의정치Q]



[중앙일보 김진] 7대 대통령선거를 앞둔 1971년 4월 25일 서울 장충단공원. 공화당 후보 박정희 대통령이 유세를 했다. 대통령을 한 발짝이라도 가까이서 보려고 인파가 연단 쪽으로 몰려들었다. 경비요원들의 스크럼이 출렁거렸다. 스크럼이 뚫려 관중이 와르르 쓰러지면 압사사고가 날 판이었다.


유세를 마치고 청와대로 돌아온 박 대통령은 김정렴 비서실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유세 때마다 보지만 참으로 걱정이야. 북한 간첩이 수류탄이라도 터뜨리면 어떻게 될까. 특히 만약 야당 집회에 테러를 해놓고 여당이 했다고 해버리면…. 유세장은 정말 위험해.” 박 대통령은 이듬해 대통령간선제를 포함하는 유신헌법을 만들었다. 유신의 핵심 목표는 박정희 1인 장기집권체제였다. 그러나 유세장 돌발사태에 대한 걱정도 간선제를 택한 이유 중 하나였다고 김 전 실장은 주장한다.


장충단 유세 후 35년이 지난 20일. 형태는 다르지만 아버지가 우려한 유세장 테러는 딸의 얼굴을 강타했다. 충격적인 우연이다.


박정희가(家)는 테러 악몽에 시달려 왔다. 68년 1월엔 북한 특수부대가 청와대 턱밑까지 왔다. 70년 6월엔 북한 무장공비가 국립현충원 정문에 폭탄을 장치하다 실수로 폭사(爆死)했다. 박 대통령의 현충일 참배를 노린 것이다. 테러는 결국 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를 데려갔다(문세광 저격사건).


장녀 박근혜는 당시 서강대를 졸업하고 프랑스에 유학 중이었다. 박 대통령은 충격에 빠진 딸을 마중하러 직접 김포공항에 나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는 딸에게 어머니가 왜 어떻게 죽었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는 세 자녀에게 “사람들에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아들 지만씨는 목욕탕에서 수돗물을 틀어 놓고 울었다고 한다.


79년 10월 26일 이번엔 김재규 정보부장이 박 대통령을 시해했다. 김계원 대통령비서실장이 근혜양에게 대통령 유고(有故)를 알렸었다. 근혜양은 “전방엔 이상이 없습니까”라고 물었다고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은 전한다. 70년대 청와대부속실에서 근무했던 김두영씨는 “박 대표는 아버지에게서 사생관(死生觀)을 배웠다. 그렇게 얼굴을 칼에 찔리고도 침착할 수 있었던 것은 몸에 밴 사생관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중 일부 발췌





2006.5.20  7시 20분경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 대표가 괴한에게 피습을 당했다.



……저떄당시 난 신촌에 있었다.. -┍



친구들을 만나러 신촌현대백화점 앞에서 기다릴때만 해도 그냥 아 선거철이구나(정작 선거때문에 일이 많아서 죽어날판이다)하고 시끄럽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냥 평소때처럼 놀다가 집으로 들어갔는데. 무심코 보던 뉴스에 박근혜대표 피습 60바늘 꿰매.. 등등의 기사가 나왔다.



티비로 여러 상황들을 지켜봤는데. 얼굴을 칼에 찔리고도 그렇게 침착하게 있을수 있다는것에 상당히 많이 놀랐다.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허둥지둥 했을거같은데… 상처부위를 감싸쥐고 주위를 노려보는 박대표 모습에.. 뭐랄까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박정희 전대통령때부터 이어온 테러.. 박정희 육영수 박근혜.

민감한 정치판에 섣불리 판단내릴순 없지만 혼자 이것저것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Dr.kchris

Hello, I'm Dr.kchris, a neuroscience researcher. I love studying and trying new things and also love challenging myself. Have a great day! :)

Leave a Reply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