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독을 품고 빵끗 빛나는 별. 거성 박명수 : 2부. 한없이 이기적인 우리들의 초상 (2)



제자리에 서 있던 박명수 곁으로 흘러간 시대 (2) – 패배에 대해 수긍하기 시작한 시대

한편, 방송 밖에서도 세상은 빠르게 변했다. ‘갱제’를 최우선 순위로 생각하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꾸준히 ‘세계화’를 강조했다. ‘세계화’는 선진을 의미했고, 선진국으로 들어가는 당연한 순서인 것처럼 여겨졌다. 김영삼의 임기 말, 한국은 OECD 국가에 가입하는 데 성공했지만 바로 다음해 IMF의 직격탄을 맞았다. 그리고 정권교체.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영삼에 비하면 대중문화에 대해선 선구안이 있었지만 세계화의 기조는 변하지 않았다. 한국은 빠른 속도로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몸을 맡겼다. 정부 차원의 IT 산업의 육성과 카드 산업의 호조, ‘BUY KOREA’의 구호 아래 증권시장의 자금 유입과 같은 밝은 면만 보이는 것 같았지만, 양심수 출신의 대통령 치하에서 IMF의 권고에 따른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바람은 더욱 거세졌다.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엔 경쟁력이 없으면 도태된다는 것을 멀쩡하던 기업들이 하루아침에 픽픽 쓰러지는 것을 보며 체득했다. 세상에 밝은 일만 있진 않다는 걸, 어쩌면 잠시 반짝했던 90년대 초의 단꿈은 그냥 꿈일지도 모른다는 불온한 기운이 스멀스멀 사회를 감쌌다. IMF 조기 졸업에도 불구하고 복직되지 못한 사람들이 서울역으로 몰려들었고, 목숨을 스스로 끊어내는 모진 사람들의 행렬도 계속 되었다. 그래도 월드컵 개최와 남북정상회담은 새 시대의 희망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고졸의 인권변호사, 고집불통 노무현이 온갖 흑색선전과 선거 직전의 후보 단일화 결렬을 이겨내고 극적으로 당선된 것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인권변호사’ 출신 노무현 대통령의 시대는 유례없는 소용돌이다. 3김이란 단어가 함축하고 있던 보스정치의 시대가 청산되면서 사회를 감싸고 있던 권위 또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위에서부터의 권위청산’보다, 더 이상 상명하복의 서열과 권위가 자신의 생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당대 시민들의 ‘아래서부터의 권위청산’이 더 강력했다. 이제 나이가 많고 경력이 많은 것은 먼저 정리해고될 대상이라는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권위를 쫓아 줄을 서는 일들이 모두 무의미해졌다. 권위가 사라진 자리에 그 어떤 의사소통의 규칙도 대안으로 제시하지 못한 시대는 오로지 실리를 향해서만 달리기 시작했다. 권위의 빈자리에 토론과 국민의 활발한 정치참여라는 발판을 대고 새 시대를 열어보겠다고 자신 있게 출범한 노무현 행정부는 추진하던 개혁에서 연신 패배했다. 국가보안법도, 정치개혁도 실패했다. 심지어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사태까지 겪으며 꺼내든 대연정마저도 실패한 후, 노무현 행정부는 북유럽식 복지국가에 대한 비전과 함께 ‘토론과 참여’라는 모토까지 같이 패배했음을 사실상 인정하고 급속도로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몸을 맡겼다. 경제지표는 유례없는 성장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실제 내수 경제를 몸으로 체감하는 일반 서민들은 더욱 각박해진 삶을 살고 있다. 양극화가 가속화되면서 국가단위 경제와는 상관없이 일반 서민 대중의 삶이 더 처참해진 것이다.

경쟁에서 유리하다면 초등학생 아이의 혀를 째서라도 영어 발음을 잘하게 만들어주는 게 부모의 사랑인 시대. 서서히 사람들은 희망이라는 것에 대해서 심각한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관심마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들이 노부모를 잔인하게 살인’, ‘독거노인 죽은 지 두 달 만에 악취 때문에 발견’ 따위의 뉴스는 이제 놀라운 축에 끼지도 못했다. ‘죽은 지 삼일 된 시체가 찜질방 수면실에서 뒤늦게 발견되었다.’라는 뉴스 정도는 되어야 대중들의 기억 속에 잠시 각인될 뿐. 이제 아무리 예능프로그램에서 ‘세상은 밝고, 우리의 이웃들은 선량하며, 우리는 힘들더라도 꿈과 희망을 품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라고 떠들어대 봐야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날, 한참 인기의 상승 곡선을 그리던 유재석은 파탄의 지경에 빠진 MBC 토요일 저녁 버라이어티의 구원투수로 스카우트된다. 그 탄생은 심히 창대했으나 끝은 미비하기 짝이 없었던 비운의 2시간짜리 버라이어티 쇼, <토요일> MC 군단의 일원으로 말이다.





유재석은 자신이 <외인구단>에서 보여준 바 있었던 ‘유재석식(式) 오합지졸물(物)’의 연장선상인 코너 <무(모)한 도전>을 맡는다. 말 그대로 황소와 줄다리기를 한다거나, 순간 스퍼트로 전철과 달리기 시합을 하는 따위의 무모하기 짝이 없는 도전들을 하는 것이 코너의 포맷이었고, 처음엔 어느 정도 인기를 얻는 듯했던 이 프로그램은 연이은 도전 실패와 산만하기 짝이 없는 구성 때문, 그리고 <토요일>이라는 프로그램 자체의 실패로 말미암아 4%라는 민망한 시청률로까지 전락했다. 쫄쫄이를 입은 30대의 남성들이 매주 전철 / 유람선 / 동전분류기 / 자동세차기 / 배수구, 수도꼭지 따위와 싸워서 패배하곤 하는 모습을 대중들이 즐겁게 보는 건 가능하지만, ‘매주’ 패배하는 것을 ‘열광적으로’ 즐겁게 봐서 실질적으로 시청률이 상승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무(모)한 도전>은 <토요일>이 <강력추천 토요일>로 바뀌면서 덩달아 <무(리)한 도전>이 되었다. 그리고 아마 보통의 프로그램이었다면, 그렇게 자연소멸했을 것이다. (실제로 <무한도전>이 오래가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예능국에선 이미 대체할 프로그램에 대한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한다. 매주 패배하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더 이상 이 사내들이 성공할 거라고 예상하면서 쇼를 보지 않았다. 남아있던 4%의 매니아들은 이 쇼에서 새로운 쾌락 중추를 찾아냈다. 어차피 패배할 건데 뭐. 새로 주어지는 도전과제의 황당함과 이 사내들의 한심한 작태를 즐겨보자 하는 심산으로 TV 앞에 앉은 사람들에게 제작진들은 희망을 걸었다. 점점 훈련은 도전과 아무 상관없이 허무한 웃음을 유발하는 데만 치중하며 무의미의 영역을 향해서 달려갔다. 턱없이 말도 안 되는 도전과제 앞에서 패배는 더 이상 쓰디쓴 게 아니었다. 패배는 당연히 찾아올 예상된 결과였다. 그리고 차츰 이 막장 루저들의 리그라는 개념은 강력해져서 <무(리)한 도전 시즌 2 – 거꾸로 말해요 아하>에 이르러선 노골적으로 ‘저희는 좀 많이 모자랍니다. 육체도, 정신도.’가 쇼의 모토가 되었다. 더 이상 예의 차리면서 세상의 밝음과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도 않았고, 젊고 아름다움의 찬란함과 선량함의 가치에 대해서 강조하지도 않았다. 지켜야 할 규율을 상실한 세대에게 예의범절 따지며 선량한 가치를 설명하는 건 무의미한 일이었다. 이미 슬슬 <야심만만>의 감동 도가니 눈물 고백에 진력을 내는 사람들이 등장하던 때였다.





그리고 그들은 어느 순간 ‘패배하는 게 뭐 어때’ 하면서 패배를 수긍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무한 경쟁의 시대, 그 경쟁의 장에서 낙오된 패배자들이 스스로를 자조하던 그때, 시청률 막장, 멤버 구성 막장, 전적 막장의 기묘한 루저들의 리그가 ‘패배하는 건 당연하다.’라면서 손을 내민 것이다. 그리고 그 패배를 향해서 몸부림치는 루저들의 행렬에 시청자들은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기 시작했다. 서로 아옹다옹 잡아먹을 듯 싸워도 결국 의지할 곳이라곤 서로뿐인 이 ‘참 못난’ 사람들은 차츰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게 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비방하는데 거리낌이 없고, 오로지 살아남는 것에만 중점을 두며, 누구 하나 낫다고 하기엔 다들 눈부시게 막장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승리를 바라는 것도 아닌 것만 같은, 자기 파괴적이고 퇴행적이기까지 한 루저들의 리그는 그 뒤로 기적적으로 시청률 반등에 성공하고, 나아가 독립편성되어 매 순간 카멜레온처럼 포맷을 변신하면서도 동 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고야 마는 MBC 예능국의 절대강자, 시청자들의 금지옥엽, 주말 버라이어티계의 일인자가 된다. <무한도전>의 탄생이다. 그리고 바로 그 루저들의 리그 한가운데, 패배자 인생이라면 둘째도 서러울 자기 파괴적인 사내, 인생이 <무한도전> 그 자체인 사내 박명수가 있었다. 그렇게 정말이지 기적적으로, 긍정적인 가치만을 부르짖던 시대가 패배를 수긍하는 순간 박명수와 조우한 것이다.



MC 꿈나무 박명수의 울렁증 발원지. 최고의 파트너 유재석

여기서 박명수의 오늘을 가능케 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파트너, 유재석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필자는 CQ에서 연재하던 <무한도전> 리뷰 서문에서 유재석에 대해 ‘늘 수모를 당하는 피해자’ 컨셉이라고 말한 바 있다. 유재석이 진가를 발휘하는 순간은 자신보다 강한 캐릭터 옆에서 상대방의 구박과 위협 속에서 위태위태하게 중심을 잡고 자신에게 날아오는 수많은 공격에 휘청거리면서도 어떻게든 난장판을 정리하곤 유려하게 마무리를 짓는 그 과정 자체에 있다. 그는 난장판을 조직하고, 그 난장판에 휩쓸려 한바탕 정신없이 놀다가 어느 순간 정색하고 그 난장판을 정리하는 데 탁월한 소질을 보인다. 그런 식으로 유재석은 쟁쟁한 선배 이경실, 이성미가 진행하던 <진실게임>을 자기 친구들과 벌이는 수다와 참가자들의 장기자랑 쇼로 유재석화했고, 캐릭터 강하기로는 첫 손에 꼽히는 강호동과의 황금 호흡을 과시하며 와 <엑스맨>을 성공적으로 런칭했다. 유약하고 덤벙거려서 타인의 공격에 쉽게 휘청거리지만, 동시에 재빠르고 날쌔게 도망치고 반격하는 유재석은 <톰과 제리>의 제리와 같은 캐릭터다. 이런 캐릭터는 옆에 자리한 톰이 얼마나 ‘톰’답게 티격태격을 할 수 있는가에 따라서 실력발휘를 하는 정도가 달라진다.





비록 제리 캐릭터이긴 하지만, 성공적으로 유재석과의 티격태격 구도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 <해피투게더-학교 가는 길>의 김제동이나, 적재적소에서 유재석의 급소를 공격하면서 궁지로 몰아넣는 <진실게임>의 송은이, 김한석도 유재석의 훌륭한 파트너다. 하지만 상대가 좀 더 강하게 나올수록, 요컨대 <놀러와>의 김원희처럼 좀 더 짓궂게 유재석을 몰아붙일수록 파트너쉽은 더욱 강력해진다. 상대가 강호동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강호동과 함께라면 굳이 방송이 아니더라도 일상 자체가 만담이고 코메디인 경지에 이른다. (궁금하신 분들은 MBC 홈페이지 <정선희의 정오의 희망곡> BEST 다시 듣기 코너에서 ‘자양강장 토크쇼’를 다시 듣기 해보시라. 라디오 다시 듣기는 회원가입만 하시면 공짜다.) 상대방이 강하게 몰아붙이면 몰아붙일수록 유재석이 곤란함을 모면하기 위해 벌이는 쇼는 더욱 화려해지고, 유재석이 잽싸게 반격했을 때 터져 나오는 웃음의 강도 역시 더 강력해진다. 유재석이 사랑하는 야구로 비유하자면, 유재석은 상대방의 장점과 강함을 잘 받아주는 포수인 동시에 상대방의 약점을 적시에 공략하는 기습번트의 달인이고, 난장판 전체를 펼치고 정리하는 과정을 총괄한다는 점에서 팀의 감독인 셈이다. 그리고 박명수가 대중들의 시야의 한가운데 서게 된 그 시절, 박명수의 옆에서 박명수의 파괴적이고 저돌적인 개그를 받아주면서, 박명수의 단점을 가장 효과적으로 웃음의 요소로 승화시켜준 파트너가 다름 아닌 유재석이다. 강호동만큼이나 유재석과의 합이 맞아떨어지는 가장 이상적인 파트너. 가장 파괴적인 조합인 것이다.

MBC <무(모)한 도전>이나, <놀러와>만큼이나 SBS <엑스맨>이나 <반전드라마>로 쌓아둔 두 사람의 호흡은 이미 어느 정도는 완성 단계였다. 박명수는 예전 <강호동의 천생연분>에서 윤정수나 신정환이 도맡아 하던 괴짜 폭탄 멤버의 역할을 <엑스맨>에서 톡톡히 해내며 적당한 시점에 적당한 난장판을 펼쳐주었고, 육체의 부실함과 암울한 외모 등에서 MC 유재석과 시의적절하게 비교할 수 있는 좋은 거울 상이 되어 주었다. (같은 프로그램 안에서 박명수와 강호동 간에 아무런 화학반응이 없었던 것과 비교해보라. 강호동이 욱하고 일어서면 그대로 깨갱하며 움츠러드는 박명수, 박명수의 막말에 보는 사람이 무안할 정도로 일그러지던 강호동 간의 그 거대한 빈 칸.) 정준하의 뒤를 이어 투입된 <반전드라마>에서도 박명수는 종종 출연하던 지상렬과 함께 외모와 괴팍한 성미를 무기 삼아 극에 긴장감을 조절하는 캐릭터로 훌륭하게 활용되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유재석과의 호흡을 완성단계로 이끈 것은 역시 <놀러와>와 <무한도전>이었다. 박명수가 재미있는 이야기랍시고 썰렁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를 던지며 ‘이게 끝이에요. 이게 다라니깐요?’라며 좌중을 얼어 붙이면 바로 다음 타이밍을 적절하게 치고 들어오며 ‘네, 좋은 소식 감사합니다.’라고 박명수의 이야기를 단신뉴스쯤으로 처분해버리는 유재석의 상황정리. 그리고 뒤이어서 격분한 박명수의 난장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두 사람 간의 기본적인 티격태격 구도다. 박명수가 상식의 저항선을 끝없이 돌파하려 하며 쇼의 흐름에 자극을 주면, 유재석이 이를 가라앉히기 위해 박명수에게 반격을 가하고 상황을 수습하고, 그러면 다시 박명수가 난장을 피우고 다른 멤버들이 가세해서 박명수를 공격하는 식의 호흡은 <무한도전>에도 이어졌다. (이런 호흡의 결정판을 볼 수 있는 건 <놀러와> 100회 특집, 영화 <비열한 거리> 출연진과 이경규, 지상렬 등이 출연했던 방영분이다. 기회가 닿는다면 확인해봐도 좋을 것이다.)





두 사람의 대결구도는 박명수가 인기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더욱 유효해졌다. 박명수는 끊임없이 과거엔 자신이 유재석보다 인기가 높았음을 상기시키고, 유재석에게 ‘너 한때는 나 닮았다는 이야기 들었잖아. 나처럼 뜨고 싶어했잖아.’라고 참 굴욕스러워 보이는 질문을 던져서 유재석을 공격한다. 또한 자신의 현재 인기를 자랑하며 ‘너도 얼마 못 간다. 6개월 남았다.’라고 유재석에게 시한부 선언을 하는, 1인자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2% 부족한 2인자 캐릭터로 확장시키는 데 성공했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끊임없이 자극을 받고 변화하며 프로그램이 뻗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확장시킨 것이다. 2인자 캐릭터는 더욱 외연을 확장해서 막내 하하가 무한재석교 신자에서 벗어나 1인자 자리를 차지하려는 찬탈 극을 벌일 때마다 달려가서 굽실거리며 2인자 자리를 보장받으려 하는 식의 기회주의자 캐릭터로 뻗어나갔다. 박명수의 캐릭터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툭 하면 밤무대 행사 진행했던 가락이 흘러나오는, 울렁증에 시달리는 만년 MC 꿈나무 캐릭터까지 확장됐다. ‘국민 MC’로 인정받는 유재석 옆에서 자신도 잘할 수 있다고 우기면서 호시탐탐 단독 MC의 꿈을 키우는 캐릭터는 실제로 <무한도전>의 중심적인 역할을 유재석과 분담해서 맡고 있는 박명수임에도 터무니없어 보였다. 그 터무니없음은 박명수식 개그의 핵심인 ‘상식의 저항선’에 도전하는 모습으로 비춰지며 시청자들을 설득한다. 유재석의 말에 주눅이 들던 과거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유효했던 두 사람의 티격태격은, 급기야 박명수가 유재석의 목젖에 당수를 날려 말문을 막아버리곤 MC 멘트를 차지하려 달려드는 지경에 이르자 육탄전을 동반한 전신(全身)만담의 경지에 도달했다. 이 모든 캐릭터의 확장은 옆에서 그 모든 돌발행위를 받아 주는 유재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심지어 MC 꿈나무 캐릭터는 단순 캐릭터로만 끝나지 않는다. 실제의 세계와 조응하면서 박명수의 진행에 울렁증을 더해준다. 아니, 박명수의 울렁증과 서툰 진행까지도 대중들의 환호 속에 소비될 수 있게 한다. 첫 단독 MC 프로그램이었던 tvN의 <단무지>가 박명수로 MC를 교체한 지 3개월 만에 폐지된 것조차 ‘MC 꿈나무’ 박명수 캐릭터를 더욱 강력하게 해주는 ‘명성’일 뿐, 그것을 두고 박명수의 무능을 탓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심지어는 교통방송에서 청취율의 사각지대 2시 타임에, 이미 <노사연, 지상렬의 두 시 만세>와 <윤종신의 두 시의 데이트>가 굳건하게 자리 잡은 틈바구니를 뚫고 <박명수의 두 시가 좋아>를 정석대로 성실하게 진행해서 청취율을 높이는데 성공한 전례가 있음에도, 방송국을 옮겨 진행하고 있는 <박명수의 펀펀라디오>는 들으면 들을수록 예측 불허의 난장판이다. 진행을 못 하던 사람이 나아지는 경우는 봤어도, 그럭저럭 잘하던 사람의 진행이 난장판이 되는 건 또 무슨 경우란 말인가. 더 기가 막힌 건, 그걸 두고 걱정하는 사람은 많아도 그의 진행이 미숙한 것을 비난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거다. 그가 진행을 못 한다는 사실 자체가 웃음의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방송을 시작한 지 1년이 넘어가도록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툭하면 코너가 바뀌며 어떻게 존속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세인들의 걱정을 사는 <박명수의 펀펀라디오>. 심지어 2007년 6월 12일 방송분에선 아예 오프닝 멘트로 박명수의 진행이 불안불안하다는 사연이 소개된다.


“춘천에서 정OO 양이 이런 사연을 보내주셨습니다. ‘박거성 요즘 어디 아파요? 어제 오프닝 멘트, 목소리 너무 불안했어요. 거사모, 거성을 사랑하는 모임의 대표인 제가 급응원합니다. 거성님, 아프지 말아요!’ 자, 저기 저, 정OO양, 생각해주는 마음은 고마운데, 저는 오프닝만 불안한 게 아니죠. 방송하는 두 시간 내내 불안하고, 아주 불편해요. 그러니까, 좀 참고 들으시던가, 정 못 참겠으면은, 어디 딴 데 뭐 들어야지 뭐 어떻게 하겠어. 자, 다른 건 다 완벽한데, 이 리딩이 좀 불안한 박거성의 <펀펀라디오>. 제가 말 좀 더듬어도 꾹 참고 들어주실 분들과, 오늘도 불안불안한 방송. 어떻게, 함께 할래요?”
가뜩이나 대놓고 두 시간 내내 불안불안하다고 수긍하고 시작하는 그날 방송엔 하필이면 유재석이 나와서 진행중독증세를 뽐내며 박명수의 불안함을 자극했다. 출연하는 모든 프로그램마다 도대체 누가 진행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수다를 떨고 가는 유재석이지만, 똑같이 진행의 주도권을 주거니 받거니 해도 정선희가 유재석의 진행에 탄복하며 웃어넘기는 반면에 박명수는 바짝 긴장하고는 자신이 쇼의 호스트임을 윽박질러 강조한다. ‘너는 왜 여기까지 나와서 진행을 하려고 하느냐’며 거침없이 반말을 쏟아내는 박명수의 과민반응은 상대가 유재석이기에 설득력이 있고, 유재석이기에 용납이 되는 것이다.





유재석은 당대 최고의 예능 MC였던 자신의 위치를 십분 활용해서, 박명수의 캐릭터가 가장 성공적으로 소비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고, 그 캐릭터의 무한한 변주를 가능케 해주었으며 나아가 유재석없이 독자생존 할 수 있는 길까지 열어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박명수가 없었다면 유재석 혼자 오늘날의 <무한도전>을 일굴 수 없었을 것이다. 아직까지 출연자들이 서로에게 존댓말을 꼬박꼬박 사용하며 적당히 내외하던 <무한도전>의 초창기, 거침없이 폭언과 비난, 반말과 필살기를 날리며 세트장을 생존 경쟁의 정글로 만들었던 박명수가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무한도전>이 가능했겠는가. <무한도전>이 더 이상 석탄을 나르거나 욕탕에서 물을 퍼내지 않고 단정한 정장 차림을 하고 실내 세트에 얌전히 앉아 <아하>를 하던 시절, <무한도전>이 예능계의 3D 프로그램이라고 주장할 수 있던 유일한 근거는 박명수였다. 그는 침을 흘리고 콧물을 떨구며 지저분함의 극한까지 프로그램을 밀어붙였고, 피해 가기 어려운 날 선 공격을 감행하며 위험 수위의 한계에 도전했으며, 알아듣기 어려운 헛소리들을 주워섬기며 멤버들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은 물론 기본적인 진행마저 어렵게 했다. 물론 그의 이런 헛소리들이 치고 뻗어나간 삼천포행 곁가지들이 <무한도전>의 쓸데없이 오지랖 넓고 대책 없이 주책 맞은 특성을 확립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물론이다. 오늘날 우리가 유재석을 이야기할 때 자동적으로 <무한도전>을 떠올리는 것, 유재석의 가장 성공적인 커리어로 <무한도전>을 가능케 한 것은 사실 박명수의 공이 크다는 이야기다. 유재석이 없는 <무한도전>은 애초에 성립이 안 되겠지만, <무한도전>에 박명수가 없었다면 아마 그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무한도전>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유재석과 박명수는 서로의 황금기를 일궈주었고, 지금까지도 가장 성공적인 파트너로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다.



결(結) – 박명수論

벼멸구. 치킨 CEO. 악마의 아들. 아버지. 4집 가수. 악덕사장 박사장. MC 꿈나무. 내일모레 마흔. 아이 오브 살쾡이. 그리고 거성. 사람들은 이제 박명수를 거성이라 부른다. 한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부르는 단어인 ‘거성’은 어지간한 위치의 사람이 아니면 쉬이 붙을 수 있는 수식어가 아니다. 그리고 일견 당연한 일이겠지만, 박명수에게 붙은 ‘거성’이라는 꼬리표는 박명수 스스로 붙인 거라고 한다. 제정신 가진 사람이 자기에게 붙인 거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오만한 호칭이지만, 다른 사람이 아닌 박명수이기에 우리는 그를 기꺼이 거성이라 부른다. 처음엔 그저 치킨 사업을 그만 둔 후에도 ‘박명수=치킨’이라는 인식이 너무 강해서 ‘치킨명수’라는 별명을 떼어내기 위한 일환으로 고안해 냈다는 거성이라는 별명은 지금의 박명수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 중 하나가 되었다.

예능인의 캐릭터가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소비되기 위해선 대중들이 무엇을 보고 싶어하는지 읽어내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본디 연예인의 일이라는 것이 대중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대중의 욕망을 간지르는 것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기에 시대가 급격하게 흐르는 요즘과 같은 세월엔 예민하게 레이더를 세우고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박명수는 그가 직접 말하는 것처럼, 그의 동료들이 증언하는 것처럼 지난 15년간 변한 것이 거의 없다. 물론 자잘한 캐릭터의 분화와 확장을 변화라 생각한다면 변화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는 시대에 맞춰서 변했다기보단 시대가 그를 알아볼 때까지 숨죽이고 기다렸다. 박명수는 부정적인 것, 욕망에 솔직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터부시하던 세월이 모두 흐르고 패배를 자조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우리 시대가 되어서야 환호를 받을 수 있었다. 그의 말처럼 ‘열 명 공채로 뽑혀서 3년 뒤에 두 세명 남아 있으면 잘 된’ 거친 연예계에서, 알아봐주는 사람도 없는 상태로 계속 버티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고 고단한 일이다. 물론 변하지 않은 캐릭터로 계속 살아남은 예능인들도 많다. 기 세고 강단있는 이경실, 넘치는 활력과 화려한 옷차림으로 뛰어다니는 홍록기, 화려한 언변으로 정글 같은 연예계를 헤치고 살아남은 정선희. 하지만 박명수처럼 오랜 세월을 변화없이 박수도 없이 버텨내고 성공한 예능인은 흔치 않다. 오랜 무명의 세월을 뚫고 정상에 오른 유재석조차도 데뷔시절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언변이 어눌했으며 시선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몰라 보는 이들까지 무안케 만들었다. 박명수처럼 변화없이 십수 년을 견딘 사람은 박명수 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박명수의 이기적이고 치졸하면서도 스스로 루저됨을 인정하길 꺼리지 않는 모습은 한편으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과 겹친다. 욕망에 솔직하고 상식에 발목 잡혀 머뭇거리지 않는 그는 대한민국 예능 역사상 최초의 안티 히어로다. MBC 최문순 사장과 예능국 국장을 만난 자리에서 난데없이 <무한도전> 뉴욕 특집으로 촬영을 가자며 공적인 방송을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려는 욕망까지 숨기지 않는 그에게 형식적인 권위는 큰 의미가 없다. (혹시나 모르실 몇몇 분들을 위하여. 박명수의 여자친구는 현재 뉴욕으로 유학을 가 있다. 박명수가 뉴욕 특집을 제안한 것은 확연하게 사적인 욕망의 발현이다.) 초면이라고 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라면 거침없이 다가가 ‘죽을래?’라고 폭언을 퍼붓는 박명수는 우리가 입 안에 담아두고 차마 꺼내지는 못 하는 말들을 대신 토해낸다. 일단 나만 살아남고 보자는 식의 그의 언행은 무한 경쟁의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속내를 숨기지 않고 폭로한다. 그는 대기실에 들어서는 순간 동료들을 향해 ‘오늘 다 죽여버릴거야’라고 말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선의 예의범절을 박살낸다. 오늘 방송에서 나만 단독샷 받아서 주목 받겠다는 욕망, 그 단순한 욕망을 향해서 상식까지 폐기처분하는 그의 모습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가장 솔직한 풍속화다. 그래서 필자는 과감하게 이렇게 쓴다. 우리는 박명수를 통해서 우리 스스로를 본다. 우리가 예의바른 모범청년 유재석을 통해서 우리의 이상을 본다면, 박명수를 통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계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을 본다. 그리고 그 둘이 티격태격하면서도 조화롭게 지분을 나눠갖는 <무한도전>을 통해 우린 우리의 삶과 화해할 수 있었다. 그것이 <무한도전>의 주요한 동력이었고, 박명수가 우리의 곁으로 성큼 다가와 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별, 거성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이다.

박명수는 언젠가 자신의 별명 ‘거성’의 유래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가장 흔한 뜻으로 큰 별 거성(巨星)이란 뜻도 있지만, 복식호통의 큰 목소리 거성(巨聲)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사실 거성이란 호칭은 <무한도전> 멤버들이 ‘거지 같은 성격’의 준말로 부르던 거라고 말이다. 그 ‘거지 같은 성격’으로 그는 거성(巨星)이 되었다. 세상이 다시 예쁘고 착하고 긍정적인 가치들만을 앵무새처럼 되뇌이는 가식의 시대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그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오래, 최고의 자리에서 반짝이고 있을 것이다.






글. 정리 | tin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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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kch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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