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독을 품고 빵끗 빛나는 별. 거성 박명수 : 2부. 한없이 이기적인 우리들의 초상 (1)









들어가기 전에

짧게나마 늦어진 이유에 대해서 해명하고 넘어가야 할 거 같다. 박명수 글 1부를 올리고 나서 1부의 내용 중 많은 부분이 <윤종신의 두 시의 데이트> 중 <최작가의 스토킹> 박명수 편에서 언급한 것과 비슷하다는 지적을 발견하게 되었다. 들어본 결과 글을 쓴 내가 들어도 환장하도록 흡사했고, 실제로 어떤 부분은 그 라디오를 들은 지인으로부터 전해들은 말을 언급한 것이니 그 방송의 자장 아래 있었다. 해명을 한다고는 했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난 게 아니다. 내가 2부에서 언급할 핵심적인 내용들 역시 방송에서 이미 짧게나마 언급이 된 부분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고민은 계속 되었다. 다른 관점을 새로 잡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패배를 자인하고 그냥 1부로 불명예스럽게 글을 마쳐야 하는가? 아무리 필자가 형편없는 아마츄어 글쟁이라 해도 자신의 글이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그냥 넘어가고 말 일은 아니었다. 사실 어떻게든 그냥 넘어가야겠단 생각으로 2부 글을 거의 완성하기도 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분개하신 것처럼, (실제론 지켜지지 않은) 업데이트 일정을 고지해드리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읽어본 그 글은 그저 방송에서 언급되지 않은 점들만을 비추기 위해서 내 스스로도 동의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억지로 끌어낸 것에 불과했다. 글 쓴 사람 스스로도 믿지 않는 이야기를 독자들이 믿어주고 동감하길 바라는 건 사기 아닌가.

업데이트 시일을 번번히 어기는 양치기 소년이 될지언정, 스스로도 믿지 않는 글을 생산하는 엉터리가 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필자는 거진 다 완성한 글을 다 밀어버렸고, 아주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그 글을 여러분들께 띄워보낸다. 심하게 늦어버린, 하지만 부끄럽지 않은 ‘필자만의’ 글을. 언제나 소망했던 것처럼 이 글을 즐겨주시길, 그리고 이 글이 박명수라는 예능인에게 누가 되지 않기를 감히 바라본다.


서(序) – 캐릭터論

복학생. 사모님. 뺑코. 호빵. 화살코. 옥동자. 메뚜기. 벼멸구. 천하장사. 딱따구리. 약골. 뚱보. 뚱뚱보. 배추머리. 태릉선수촌…. 태반이 일반 명사인 이 단어들이 이 칼럼에 등장하는 순간 아마 독자들의 머릿속에선 몇몇 얼굴들이 스쳐 지나갈 것이다. 코메디 프로그램을 꼬박꼬박 챙겨보지 않는 분들이라 하더라도 아마 위에서 거론한 단어 대부분에 딱 맞는 얼굴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수많은 예능인이 자신들의 캐릭터를 설정하고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아주 운이 좋거나 타고난 재능이 숨 막히게 번쩍이지 않는 이상 캐릭터의 이름들은 그저 일반 명사로만 남을 뿐이다. 고정적인 캐릭터 없이 성공하는 케이스들도 있지만, 캐릭터를 통해 자신의 얼굴을 각인시키는 케이스들에 비하면 턱없이 소수다. 캐릭터만큼 효과적인 간판이 어디 있는가. 한번 캐릭터를 만들어 놓으면 그 캐릭터는 아주 오랫동안 예능인의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지속적으로 대중들에게 예능인을 각인시켜주는 역할을 해준다. 신인들이 새롭게 무대에 올려지는 캐릭터에 사활을 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다 보면 예능인의 본명보다 캐릭터의 이름이 먼저 떠오르는 경우들도 생겨난다. 물론 이 칼럼을 꾸준히 읽고 계신 분들이나, DC 코갤러 여러분이라면 예능인의 이름을 외우지 못하는 일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들의 부모님이라면, 삼촌이나 나이 많은 사촌 형제라면 어떨까. 어지간한 애정을 가지고 예능프로그램을 지켜보는 사람이 아니라, 힘든 하루를 끝내고 소파에 시체처럼 쓰러져서 리모컨을 돌리다가 우연히 멈춘 채널에서 코메디 프로그램을 보는 장삼이사들에게 그들의 이름을 외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금은 불공평한 예. 독자 여러분은 ‘미스터 빈’이 익숙한가, 아니면 ‘로완 앳킨슨’이 익숙한가? ‘오스틴 파워’와 ‘마이크 마이어스’는 어떤가? 국외라 불공평하다 생각된다면, ‘육봉달’, ‘노량진박’을 연기한 예능인의 본명이 기억나시는가? 남자가 남자다워야 남자라고 외치는 ‘길용이’는 어떤가? 그 얼굴을 봤을 때 먼저 떠오르는 건 그의 이름인가, 그가 연기한 캐릭터의 이름인가? 여기서 딜레마가 시작된다. 캐릭터가 대중들에게 소구될 수 있는 유효기간을 넘기고 나면, 자칫 예능인 본인의 커리어 전체가 폐기처분되는 역전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캐릭터가 어느 순간 간판이 아니라 족쇄로 작용하는 것이다.





작품에 맞춰서 자신의 캐릭터를 바꿀 기회를 얻는 탤런트들이나, 싱글 단위로 컨셉을 바꿔서 활동할 수 있는 가수들과는 달리 예능인들은 한번 구축한 이미지를 바꾸는 것이 어렵다. 휴식기를 가지며 자기개발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다른 방송인들과는 달리, 예능인들은 조금만 길게 대중들의 시야에서 사라지면 제자리를 찾는 게 어려운 게 사실 아닌가. (물론 한 작품에 10여 년을 출연하면 탤런트들도 캐릭터에 갇힐 순 있다. <프렌즈>의 여섯 친구들–조이, 모니카, 챈들러, 피비, 로스, 레이첼–이나, <전원일기>의 양촌리 사람들처럼. 하지만 어지간한 단막극으로는 우리가 말하는 수준의 캐릭터 고착이 일어나진 않는다.) 게다가 많은 예능작가와 PD들 역시 한번 구축된 캐릭터의 힘을 프로그램의 힘으로 소비하기 위해 캐릭터에 맞게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일이 많다. 이재룡은 서애 유성룡 역을 하고 나서도 불륜의 주인공 역할을 두 차례 연속으로 맡을 수 있고, 서인영은 골반이 드러나는 옷을 입고 춤을 춘 뒤에도 <가르쳐 줘요>를 부를 수 있다. 하지만 김기사의 귓전에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던 ‘사모님’ 김미려는 <거침없이 하이킥>에선 윤호의 귓전에 숨결을 불어넣으며 더 빨리 달리라고 자신의 캐릭터를 변주해야 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거물들이라고 해도 상황이 크게 다른 건 아니다. 아니, 어쩌면 자리를 잡은 거물들이 더 어려울 수도 있다. 획기적으로 새로우면서도 독한 캐릭터를 선보일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이상-이를테면, 조혜련처럼 전신 타이즈를 입고 골룸을 흉내 내며 기존의 캐릭터를 모두 버릴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이미 굳어진 캐릭터를 상쇄할 만한 새 캐릭터를 개발하는 건 어렵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강호동이 남의 개그를 공손하게 받아준다거나, 식신 정준하가 비실거리며 약골 캐릭터를 연기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아마 별다른 일이 없는 이상에야 서경석은 앞으로의 커리어 내내 ‘화살코’라고 불리며 콧잔등에서 화살을 쏘아 보내는 시늉을 하고 살아야 할 것이고, 정선희도 심심찮게 ‘에헤헤 헤헤’하는 루니 툰 속 딱따구리 흉내를 내야 할 것이다. 정종철이 2006년 KBS 연예 대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다들 옥동자 이후에 안 될 거라고 했다’며 오열한 게 그냥 그럴싸해 보일 거 같아서 오열한 건 아니지 않은가. 옥동자를 넘어서기 위해선 그보다 한층 더 강력한 개그가 필요했고, 정종철은 이마가 시뻘겋게 부어 오르고 사지육신에 경련이 올 때까지 자해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벌인 뒤에야 비로소 ‘옥동자’ 대신 ‘마빡이’라는 별칭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누가 상을 받는 순간 울컥하며 그 시련의 시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세대를 뛰어넘는 설득력을 지닌 캐릭터를 만드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오락프로그램의 조류가 바뀌면서 꽁트 코메디와 시사 코메디의 시대가 지고, 버라이어티의 시대가 오자 코메디언들이 MC로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이주일과 같은 대선배부터 이경규나 주병진, 이홍렬, 서세원과 같은 코메디언 출신 MC 1세대들은 말할 것도 없고, 김국진, 김용만, 남희석, 박수홍, 신동엽 같은 신인들도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MC 자리로 포지션을 옮겼다. 이런 변화를 이겨내지 못한 코메디언들은 차츰 우리의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9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배일집, 배연정 콤비, 김한국과 같은 꽁트계의 베테랑들은 90년대 후반이 되면서 점차 설 자리를 잃어만 갔다. 김형곤, 엄용수와 같은 시사 코메디의 거목들 역시 공개 코메디 클럽으로 무대를 옮겨야 했다. 심지어는 새로 방송에 데뷔하는 신인들은 아예 꽁트 코메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버라이어티로 투입되기도 했다. 예능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전혀 다른 캐릭터로의 변신을 꾀하거나 자신의 캐릭터를 시대에 맞게 업데이트 해야 했다. 이경규나 신동엽처럼 당대의 코메디 조류를 타고 자신의 캐릭터를 변주하면서 살아남아 온 베테랑들이 지금은 거물이 되어 예능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비결이 바로 거기에 있다.

하지만, 박명수는 어떤가? 애초에 처참할 정도로 무명인 적도 없었고, 그렇다고 대중들의 환호 속에서 커리어를 꾸려온 것도 아니었다. 획기적인 캐릭터의 변신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처음부터 사랑받은 캐릭터였던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그저 열심히 하다가 어느 순간엔가 갑자기 대중들의 절대적인 지지 한 가운데 서게 된 것이다. 이상하리만치 갑작스러웠던 그의 부각. 그 경위에 대해서 우린 1부를 통해 간략하게 살펴본 바 있다. 그의 캐릭터는 그대로였으되 시대의 조류가 그를 웃기는 사람으로 만들었던 그 기가 막힌 경위 말이다. 그러나 미처 그의 캐릭터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분석하진 못 했다. 그 ‘변하지 않’았다는, 십수 년째 ‘자연인 박명수’ 위에 덧씌워진 ‘예능인 박명수’의 캐릭터를 파악하지 않고선 우리는 박명수를 잘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그의 개그를 두고 ‘성질 개그’, ‘호통 개그’ 등등의 수식어를 붙여서 그의 캐릭터를 파악하려고 한다. 그러나 단순히 그런 몇 마디 말로 박명수의 캐릭터를 다 파악할 순 없을 것이다. 그가 개그를 던지는 타이밍, 그와 성공적인 조화를 이루는 파트너들, 그가 대중들에게 접근하는 방식과 대중들과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비법. 그가 꾸준히 확장하고 있는 그의 캐릭터가 빚어낸 우주에 대해서, 필자는 지금부터 다시 각 잡고 살펴본다.



상식의 저항선을 돌파하는 지독함. 자신에게 결핍된 것들에 대한 노골적인 욕망.

박명수의 개그는 기본적으로 ‘독하다’. 데뷔 때부터 독했다. 주변 사람들의 증언대로라면 실제로는 소심하고 숙맥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박명수지만, 방송에서만큼은 독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그의 개그의 독함은 이영자나 강호동처럼 덩치와 힘에서 오는 위압감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기 긍정이나 활력에서부터 오는 것도 아니다. 그 독함은 보통 사람들이라면 할 수 없을 거라 생각되는 일들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해치우는 과단성에서 오는 독함이고, 자신에게 결핍된 것을 채우기 위한 노골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독함이다. 잘 생각해보라. 그가 주먹을 들어 ‘우씨’라고 외치는 순간은 그가 남을 시기하거나 위협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이 위협은 다른 슬랩스틱 코메디언들처럼 그 주먹으로 누군가를 쥐어박는 행위로 연결되지 않는다. 박음질 덜 된 쌍꺼풀을 노골적으로 노출하면서 자신의 외모를 극단적으로 일그러뜨리고 투정 조로 ‘우씨’라고 외치는 그 행위만으로 모든 위협은 끝난다. 굳이 말하자면 발화 자체가 결단인 행위인 셈이다. 썩 유쾌하다 하진 못 할 자신의 외모를 십분 발휘한 이 위협은 발화만으로 끝날 욕망을 상징하고, 그 욕망을 실행에 옮길 배포가 없는 억눌린 캐릭터를 구축했다.





외모를 위협의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자학적인 개그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론 자신의 단점을 공공연하게 과시하는 파괴적인 개그였다. 똑같이 단점을 개그의 도구로 사용하더라도 박명수는 남들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보라, 김국진이 혀짤배기소리로 ‘여보세요?’라고 말할 때 그는 자신의 단점을 드러내면서 그 단점으로 상대방과 의사소통을 시도하지만, 박명수는 자신의 얼굴을 일그러뜨려 상대방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강제종료하려 한다. 자신을 희화함으로써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에게 접근하려 하는 개그와, 남들은 쉽게 드러내지 않을 자신의 단점을 발가벗겨서 타인을 제압하는 개그. 공손한 김국진의 개그에 비하면 박명수의 개그는 흡사 동네 깡패들을 만나자 자기 배에서 창자를 꺼내서 줄넘기를 함으로써 상대를 겁에 질리게 만들어 제압했다는 최불암 시리즈의 주인공 같지 않은가? 이 확연한 차이는 점잖은 신사들이 나와서 교양과 예능의 접목을 시도하던 MBC 버라이어티의 황금기에 김국진에게 날개를 달아준 대신 박명수를 대중의 시야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동시대에서 박명수에 비견될 만큼 독한 개그를 선보인 사람이라고 해봐야 일본 애니메이션 여주인공들의 드레스를 입고 다니며 나사 빠진 표정으로 위험천만한 실험에 임하던 <호기심 천국>의 호기심 해결사, 기인이란 소리를 들었던 김경민 정도였다. 그리고 다들 아는 것처럼 김경민은 세인들로부터 ‘시대를 너무 앞서간 개그맨’이라는 평을 들으며 점차 대중들의 시야에서 멀어졌다. 어찌 보면 당연한 순서였으리라. 대중들이 두고두고 오래 즐기기엔 그의 옷차림은 지나치게 독했으니까. 사지육신 멀쩡한 남자가 <웨딩피치>나 <카드캡터 사쿠라> 코스튬을 입고 나오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매주 그러고 나오면 질리지 않았겠는가. 오래 두고두고 즐길 수 있는 밥 같고 물 같은 개그가 아니라 강렬하고 독한 할라피뇨 같은 개그라고 할까. 어쩌면 박명수의 독한 개그가 김경민의 개그에 비해서 오래갈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그가 자리를 잡은 곳이 비교적 오랫동안 실내 꽁트 코메디의 전통을 이어온 MBC였기 때문이리라. 방송국 개국부터 버라이어티에 올인하다시피 했던 SBS는 김경민에게 이상적인 일터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MBC가 어느 순간 실내 꽁트 코메디보다 버라이어티 쪽에 힘을 주기 시작하면서, 박명수 역시 소비되는 빈도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독한 개그가 꽁트에선 먹혀도 버라이어티에선 쉽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역할’ 뒤에 숨어서 바보도 될 수 있고 악당도 될 수 있는 꽁트와는 달리 버라이어티엔 ‘역할’이라는 안전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대본이 없는 것도 아니고 연출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배역의 이름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걸어놓고 ‘역할’이라는 중간 지점이 없이 바로 시청자들을 대해야 하는 버라이어티에서 독한 캐릭터로 승부를 보는 것은 당시만 하더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이야 노홍철과 같은 떠버리 캐릭터나 지상렬과 같은 산만하고 공격적인 캐릭터가 환영받는 시대지만, 버라이어티가 시대의 주류가 되기 시작하던 그 시절은 ‘모든 프로그램들은 기본적으로 교양적인 면모를 갖춰야 한다.’라는 강박에 시달리던 시기였다. (물론 아직도 그런 상업성과 교양성 간의 딜레마는 존재한다. 아직도 토요일 오후 12시면 MBC와 SBS가 약속이라도 한 듯 옴부즈맨 프로그램을 방송하며 자사의 프로그램에 대해서 비판하는 목소리를 소개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모든 예능인들은 예의 바르거나 스스로를 낮출 줄 알아야 했다. 지금처럼 타인을 비방하고 상대에게 면박을 주는 게 용인이 되는 시대가 아니었다. 게다가 박명수의 독함의 밑바탕이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육체의 건강함(덩치)이나, 정신의 건강함(자기 긍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기에 더더욱 프라임 타임에 가족 모두가 즐기는 대상이 될 순 없었다.

지금은 대중들의 시야 한가운데에서 최정상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박명수지만, 그의 파괴적인 개그는 아직도 <무한도전>이나 <놀러와> 등에서 매주 확인할 수 있다. 선생들로부터 잔인한 수준의 평가를 받은 초등학교 생활기록부를 공개하면서 자신의 뿌리깊은 성격파탄을 과시하거나, 부실한 육체를 카메라 앞에 공개하길 꺼리지 않으며 아직 40대도 채 안 된 자신의 노쇠함–탈모, 하체부실, 만성피로 등등-을 거듭 강조한다. ‘양쯔강 유역 계단식 영농 이모작 베이베’ 따위의 말도 안 되는 가사의 랩을 부르거나 어느 상황에서건 ‘유쥬 라익 썸씽 투 드링크’ 같은 뜬금없는 영어회화를 시도함으로써 자신의 무식함을 만천하에 자랑한다. 남들은 차마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꼭꼭 숨기는 악몽과 같은 단점을 그는 겁내지 않고 계속 공개하고 잊을 만하면 다시 상기시킨다. 치킨이나 피자와 같은 자신의 부업을 기회만 되면 들먹이면서 자신의 노골적인 상술을 공개해 듣는 이들의 얼을 빼놓는가 하면,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서라면 멀쩡한 자신의 집안을 ‘화목하지 않은, 문제가 아주 많은’ 집안으로 전락시키기까지 한다. 가히 피도 눈물도 없는 수준의 파괴적인 개그는 자기 파괴로 이제 그치지 않는다. ‘우씨’라고 주먹을 들어 보일 뿐 실제로 누구도 차마 때리지 못했던 억눌린 캐릭터 박명수는 이제 남들에게 발길질, 주먹질은 물론이거니와 당수 날리기, 풍차돌리기 같은 상상치도 못한 필살기까지 개발해가며 공격본능을 발산한다. 동료 정준하를 두고 ‘술장사하던 놈을 데려와서 방송시켜줬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라고 실생활에서조차 꺼릴 법한 폭언을 날리는가 하면, 현실계에선 비견할 만한 모욕이 몇 없을 ‘근본 없는 놈’ 정도의 말들은 아예 입에 달고 산다.





다른 한편으론, 1부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그의 노골적인 욕망은 점차 더 부각이 되었으면 되었지 결코 세월에 마모되지 않았다. <무한도전>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지금도 동생들이 조금만 길게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니들이 너무 오래 끄니까 내가 준비한 상황극을 펼칠 수가 없잖아’라고 맥을 자르는 거로 시작해서 말하고 있는 사람 목젖에 당수를 날려 억지로 말문을 끊어버리고 자신이 카메라의 중심에 잡히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거나 하는 모습은 어떤가. 자신에게 시선이 주목되지 않으면 초조해하고, 노홍철의 집에 놀러 가서도 자신이 선물해 준 스테레오 스피커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그는 꾸준히 주목받기를 욕망하고, 시선의 중심에 서기를 욕망한다. 그리고 그 욕망을 숨기기는커녕 모든 이들이 알 수 있도록 광고하고 다닌다. 욕망의 종류도 ‘강호동, 유재석보다 내가 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제일 적다. 더 해야 한다.’라거나 ‘정선희에게 대쉬하면서 집은 몇 평인지, 자기 건지 전세인지 확인했다’는 식의 말들에서 보이는 물질적인 욕망이 한 축을 이루고 있는가 하면, 잘 생긴 순위에서 꼴찌를 차지한 응당 당연한 설문에서조차 격분하면서 귀엽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버티는 외모에 대한 욕망까지 다양하다. (오해 마시라. 이 욕망들은 자연인 박명수가 그렇단 이야기가 아니다. 캐릭터로서의 박명수가 그렇단 소리다. 자연인 박명수가 어떤 사람인지 필자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전무하다.) 식욕, 명예욕, 물욕, 미에 대한 추구, 공격욕…. 단독 MC에 대한 간절한 욕망까지, 어떤 종류의 욕망이든지 박명수는 걸러내지 않는다.

박명수의 캐릭터는 그렇게 상식의 저항선을 돌파한다. 평범한 우리들이라면 체면을 챙기느라 차마 넘지 못할 선을 파괴하면서 시청자들의 욕망을 대리 충족시킨다. 자신의 치부를 까발리고, 타인을 욕하고 비방하고 육체적인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자신에게 득이 되는 일이라면 그게 무엇이 되었든 가리지 않고 일단 저지르고 보는, 오로지 자신에게만 충실하고 자신의 욕망에만 솔직한 박명수 캐릭터는 시청자들의 욕망의 대리자로 기능 한다. 마음속에 담아두기만 할 뿐, 해소할 수 없이 득시글거리는 욕망들을 박명수는 거침없이 내지른다. 방송에서 욕설을 퍼붓고, 육체적인 폭력을 행사하는가 하면 자신의 비밀한 콤플렉스들을 만방에 떠들고 다니며 금기를 넘는 쾌감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한다. 시청자들은 박명수가 상식의 저항선을 돌파하며 기행을 벌이는 것을 보고 어이없음에 일차적인 폭소를 터뜨리지만, 그 폭소의 뒷맛은 자신은 차마 하지 못하는 일을 박명수가 대리인으로서 ‘저질러’ 주는 것에 대한 쾌감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지난 십수 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기에 외면당했던 박명수 캐릭터가 이렇게 당당히 대중들의 욕망의 대리인 노릇을 할 수 있게 된 것일까? 필자는 다음 문단에서 이 점을 살펴보기 위해, 왜 박명수가 제대로 소비되지 못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는 의도적으로 중간과정을 생략했다. 시대는 도대체 박명수 옆을 어떻게 지나간 것일까? 버라이어티에선 독한 개그가 먹히지 않던 시절은 어떻게 흘러간 것일까. 1부에서도 간략하게 살펴본 바 있지만, 여기서 잠시 좀 더 자세하게 살피고 넘어가 보자.



제자리에 서 있던 박명수 곁으로 흘러간 시대 (1) – 밝은 세상에 대한 강박의 시대


박명수가 데뷔한 93년은 전 사회에 걸쳐서 긍정적인 비전이 펼쳐져 있던 때였다. 형식상으로나마 민주화 세력은 승리했고, 대표적인 재야 정치인이었던 김영삼은 마침내 대통령이 되었으며, 한국에서 최초로 만국박람회가 개최되었던 해였다. 경제는 개발독재 시절만큼은 아니더라도 빠른 속도로 선진국의 대열을 향해 달리고 있었기에 모두 버블의 수렁에 빠져있던 일본과의 격차를 줄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랜 투쟁과 정치의 시대가 지나간 자리에 ‘문화’가 시대정신의 한가운데 들어서기 시작했다. 쟈니 윤처럼 ‘미국에서도 성공한’ 연예인이 미국식 토크쇼를 진행하며 스탠드업 코메디를 선보였고, 서태지가 등장해서 우리 대중음악이 뉴키즈 온 더 블록이나 마이클 잭슨과 같은 팝스타들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 찼던 시절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임권택의 <서편제>는 단성사 단관 개봉만으로 200만 관객을 모으며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입증’했으며,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세간에 알려지면서 문화가 지리멸렬한 정치 담론의 영역보다 우월하다는 식의 사고방식마저 싹트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문화의 세기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이 ‘문화’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참 기형적으로 뒤틀려 있었다. ‘<쥬라기 공원> 한 편이 현대자동차 1년 수출실적’이라는 경제논리에 입각, 새 시대의 부가가치 산업의 첨병이 문화산업이라는 결론까지 도달하는 데는 아무도 이의가 없었다. 한편, 무엇이 문화적인 건가에 대한 인식은 창작자와 소비자 간 불일치의 연속이었다. 일본문화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개방하면 안 된다는 식의 인식이 사회 전반을 뒤덮고 있었고, 만화 역시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심심찮게 유해만화 추방대회가 열려서 지금은 절판되어 구할 수도 없는 우리 만화의 귀중한 자산들이 불태워지는 무시무시한 풍경도 볼 수 있던 시기였다. 자신들의 가치관을 전 사회의 동일한 가치관인 것처럼 착각하는 이들 덕분에 다양한 문화적 자산에 가치의 차등을 두어서 고급문화, 저급문화를 가르던 시기, 피해를 본 사람들은 한 두 사람이 아니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아이들에게 질 낮은 영화만 보여줄 것인가. 우리도 <나 홀로 집에> 처럼 질 높은 아동영화를 만들어 경쟁할 수 있지 않은가.’ 하는 기괴한 생각은 김청기 감독, 남기남 감독과 심형래 감독 같은 한국 아동영화의 선구자들을 싸잡아 ‘질 낮은 영화로 코 묻은 돈이나 훔칠 생각을 하는 엉터리들’ 로 격하시키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따위의,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들이 우리 시대에 벌어졌었다.

가뜩이나 부정적인 뉘앙스가 가득하던 대중들의 코메디에 대한 인식은, ‘문화적’이라는 단어에 기형적인 뉘앙스를 덧씌우던 90년대 들어 더 이상하게 비틀리기 시작했다. 소위 ‘문화적’인 것에서 거리가 먼, 단순 웃고 즐기기 위한 오락은 그저 위안거리가 될 뿐,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기에 오락 역시 격조 있고 공익을 생각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만 했다. 사람들은 공적인 자리에서 드라마나 코메디, 연예오락 프로그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꺼렸다. 누군가와 처음 만나서 자신의 취향을 소개하기 위해서 키에슬로프스키나 타르코프스키, 왕가위와 같은 이름들을 주워섬기는 건 아무렇지 않았지만, <웃으면 복이 와요>라거나 <코미디 일번지>같은 프로그램의 이름을 들먹이는 건 자신의 문화적 소양의 척박함을 드러내는 일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에 비하면 지난 10여 년간의 변화는 얼마나 아찔하게 빠른가. 요즘 세상에 초면인 사람 앞에서 <무한도전> 대신에 장률, 홍상수, 김기덕이나 주제 사라마구 같은 이름들에 대한 애호와 지지를 침이 마르게 떠들어 대는 사람은 상대로부터 호감을 사기보단 지적 속물 취급을 당하기 십상이지 않은가.) 예능프로그램에 대해 언급을 하려면 <칭찬합시다>나 <신장개업>처럼 공익적이거나, <이경규가 간다>처럼 전 국민이 지켜보는 블록버스터급 프로그램이어야 했다. 예능프로그램 역시 점잖거나 격조가 있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게 나쁘단 이야기는 아니다. 보면서 희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뭐 그렇게 잘못되었단 말인가. 다만, 온 시대가 강박적으로 공익에 목을 매고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그 이전이야 개발독재의 횡포 아래였기에 그랬다 치지만, 90년대 초반부터 심지어 IMF에 이를 때까지 예능프로그램은 몸에 굳어진 대로 ‘세상은 희망차고 우리는 어려운 고난들을 극복할 수 있다’고 떠들어댔다. 현실에 대한 그 어떤 자조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망해가는 가게들에 대박집의 비법을 일러주고 인테리어까지 말끔하게 고쳐주는가 하면, 무너져가는 집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동안 집안 내에 불화까지 어떻게든 봉합해보려고 용을 써서 사람들에게서 감동의 눈물을 뽑아내는 것을 통해 ‘보세요. 세상은 이렇게나 밝고 희망찹니다.’라고 반복해서 설득해야 했다. 책을 읽으면 미래가 보이고 희망이 보인다고 설득했고, 그리운 아버지 어머니에게 지금이라도 전화 한 통이라도 하고 이번 주말엔 고향에 내려가 보라고 떠들어댔다. 돈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 만 원짜리 한 장으로 일주일을 버티게 하는 쇼가 주말 버라이어티에 자리를 잡았다. 심지어는, 과학적인 호기심을 다양한 실험으로 해소해보는 것이 주요한 오락의 일부였을 지경이었다. 필자가 종종 <무한도전>의 전신인 <무(모)한 도전>과의 비교대상으로 삼는 <대단한 도전>조차 ‘노력하면 누군가는 도전에 성공한다. 설령 아니더라도 도전하는 모습은 아름답다.’라는 점을 쇼의 주요한 쾌감 중추로 삼았던 프로그램이었다.

희망과 용기를 주고 공익을 상기시키는 것도 그래도 하루 이틀이지, 어느 순간 예능 프로그램들은 깐깐한 주임 교사로 돌변하고 말았다. <칭찬합시다>로 교양과 예능의 가장 성공적인 만남을 일궈낸 ‘쌀집 아저씨’ 김영희가 몸담고 있던 MBC가 가장 그 정도가 셌는데, 그 덕분에 지난 몇 년간 MBC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은 단순하게 웃고 끝날 수 있는 배설 행위가 아니었다. 그 웃음은 ‘건강한’ 웃음이어야 했고, 그래서 ‘건강’하기 위해 우리가 발 딛은 세상은 얼마나 희망찬가에 대해서 쉴 틈 없이 상기시켰다. 그 수많은 교훈과 의미에 질린 시청자들은 단순하고 빠른 웃음을 찾아서 시대의 새 조류인 공개 코메디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과거 공개녹화 코메디의 전성기를 맛본 적 있던 KBS가 그 선두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개그콘서트>를 성공적으로 궤도 위에 올리고 KBS 코메디의 부활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상업적인 감각엔 둘째라면 서러울 정도로 감각이 섬세한 SBS 역시 <웃음을 찾는 사람들>을 런칭했고, 몇 차례의 부침을 겪은 후 <웃음을 찾는 사람들> 역시 <개그콘서트>의 아성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올라섰다. 공익적 웃음에 사활을 걸다시피 한 MBC가 드물게 시도했었던 선남선녀 연예인들의 연예놀음은 SBS가 강호동을 스카우트해가면서 SBS의 전유물이 되다시피 했다. 시대는 빠르게 변했다.

2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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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kch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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