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독을 품고 빵끗 빛나는 별. 거성 박명수 : 1부. 거성의 탄생

 

















* 덧말 –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 할까요… 백가쟁명 예인열전 박명수 편 1부에 대한 반응 중, MBC FM4U <윤종신의 두시의 데이트 – 최작가의 스토킹>의 내용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화들짝 놀라서 다시듣기로 들어보니 부끄러울 정도로 내용이 비슷하더군요. 특히나 <놀러와>에 대한 부분은 습자지에 대고 따라 그린 것 같았습니다. 당혹스럽기도 하고 이유도 없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이래서야 제가 어떤 의심을 사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글을 쓰다보면 종종 이런 일들을 겪게 될 때가 있습니다. 다 쓰고 나서 보면 너무나 흡사한 글이 있어서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하는 경우 말입니다. <백가쟁명 예인열전 – 정형돈> 편을 쓸 때는 탈고하기 직전에 다른 평론가 분의 글을 접하게 되어 급하게 글을 수정했던 기억이 나네요. 다른 사람이 쓴 글이라고 하기엔 사용된 어휘부터 논지를 이끌어가는 방법까지 너무 흡사했거든요. 눈앞이 아찔하더군요. 그래도 업데이트 하기 전에 그 글을 먼저 발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최대한 그 글과 차별점을 둘 수 있도록 글을 다듬을 수 있었으니까요. 상도덕도 상도덕이지만, 그건 글 쓰는 사람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거든요. 이번 글은 업데이트 하고 난 뒤에야 이런 일을 겪게 되니, 자존심도 상하고 마음도 편치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민망하기 짝이 없고요.

<놀러와>같은 경우 ‘점점 높게’, ‘점점 낮게’ 포맷으로 방송할 때부터 쭉 애청해왔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박명수씨에 대한 반감을 반전시켰던 것도 <놀러와>였고요. 한 동안은 녹화를 떠서 두고 두고 볼 정도였습니다. 잦은 포맷 변경 때문에 어느 정도 애정이 바랜 구석이 있긴 하지만, CQ를 창간할 때 리뷰할 프로그램으로 <무한도전>과 <놀러와>를 놓고 저울질 할 지경이었으니까요. 글을 쓰면서 다른 프로그램에서의 활약에 대한 서술이 한 페이지 정도 더 있었지만, 탈고하는 과정에서 역시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박명수씨가 <놀러와>를 통해서 자신의 이미지를 멋지게 반전시킨 것에 대한 서술 하나면 충분하다고 여겼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표현까지 흡사한 결과물이 나왔는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당혹감에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쿵쾅거립니다.

논지 자체를 수정하기엔 비중이 컸던 지라 지나치게 흡사한 표현들만 현재 수정을 했습니다. 너무 흡사한 표현이 쓰여진 글이 버젓이 웹을 떠돌도록 방치하는 것은 다른 누구보다도 최대웅 작가님께 결례입니다. 그러더라도, 이러 이러한 부분에서 비슷했었고 그런 이유로 지적이 있었다는 사실은 명시를 해두는 것이 도리일 듯 해서 이렇게 길게 덧말 적어 둡니다.

제가 만일 자료조사를 좀 더 충실하게 했더라면 그 방송을 업데이트 전에 접할 수 있었을테고, 그랬다면 이런 일을 겪지 않았을텐데, 게으른 저의 불찰입니다. 읽으시는 분들께 일말의 의혹도 남겨선 안되는데… 독자분들 뵙기가 죄송하기 짝이 없습니다. 실망하시게 한 점, 독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 올립니다. 아울러 <윤종신의 두시의 데이트> 관계자분들과 최대웅 작가님께도, 혹시 이 글을 보고 계신다면 결코 의도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주십사 하는, 죄송하단 말씀 드립니다.


Tintin 드림.




장면 1.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 나오며 시청자들의 숙면을 유도하는 방송이 주를 이루는 밤 10시 라디오. 갑자기 ‘걱정마세요, 조금 있다가 또 제가 물어뜯는 시간이 있으니까. 그 때 또 한껏 물어뜯기시면서, 그러시면 됩니다.’라는 살벌한 멘트가 흘러 나온다. 디제이 부스 안 멀찍이서 낄낄거리며 뒹구는 소리도 들린다. 아니, 이런 살벌한 멘트가 뭐가 어디가 좋다고?
장면 2. 역시나 같은 주파수 같은 시간대. 18년 관록의 디제이 배철수가 ‘사실, 저는 제가 생긴 게 김C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거든요.’라고 말하자, 옆에서 심기가 심히 불편한 듯한 목소리가 튀어나와 면박을 준다. ‘저기요, 그런 생각은 제발 좀 버리시길 바라겠고요.’ 배철수 특유의 꺽꺽거리는 웃음이 그 뒤를 잇는다.
혹자는 이 사람이 뜬 건 운이 좋아서라고도 하고, 혹자는 이 사람 성질도 더러운데 왜 떴는지 모르겠단다. 그랬거나 어쨌거나, 요새 이 사람,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못 생긴 얼굴에 인상을 써도 사람들이 웃고, 인성 검사에서 ‘비사회적, 비규범적, 비도덕적’이라고 결과가 나와도 시청자들은 배를 잡고 뒹군다. 심지어는 초등학교 생활 기록부에 ‘남의 흉을 잘 이야기하며, 소견이 좁고 옹졸하며 자기 주관이 없음’이라고 참혹하게 적힌 결과를 보고도 사람들이 껌뻑 죽는다. 나이가 많다는 거로 웃기고, 몸이 부실하다는 것으로 웃기고, 머리숱이 적은 것으로 웃기고. 이제 그가 뭘 해도 사람들은 웃는다. 온 몸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이 남자. 스스로를 거성으로 칭한다 해서 그 아무도 무례하다 욕하지 않는 남자. 그의 이름은 박명수다.

시계를 조금만 돌려보자. 2006년 MBC 방송연예대상 쇼/버라이어티 부문 남자 최우수상. 수상자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다들 말은 안 했지만, 박명수가 수상할 거라는 건 거의 기정 사실이나 다름 없었다. 본인도 어느 정도 예상은 했는지, 시상식이 열리기 전에 촬영되었던 <무한도전> 촬영장에서 미리 감사의 멘트를 날리는 여유까지 보여줬다. 기실 그럴 법도 했다. SBS <엑스맨>에서의 활약도 활약이지만, 친정 MBC 예능 프로그램에서 박명수는 그야말로 종횡무진이었다. 예능계의 기린아 <무한도전>은 물론이거니와,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 <일요일 일요일 밤에 – 동안클럽>까지, 주말 저녁 버라이어티에서 독설을 아끼지 않으며 뛰어다녔으니 그가 상을 받지 못한다면 그게 더 이상할 노릇이었다. 미리 준비한 플래카드 앞에서, 역시나 미리 준비한 듯한 유려한 수상소감을 읊는 박명수. ‘호통개그다, 못된 개그다, 버럭개그다… 사실 좀 우울한 시대상을 좀 반영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좌중 폭소) 나라의 경제가 밝고, 미래가 환하다면 호통개그나 버럭개그가 나오지 못 했을 겁니다. 저는 항상 똑같았지만, 시대가 변해서, 제가 또 이렇게 각광받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본인조차도 말한 후에 멋쩍은 듯 키득거렸던 이 수상소감. 농담같지만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다. 데뷔할 때부터, 어딘가 억울한 표정으로 주먹을 치켜 올리며 ‘우씨’로 일관하던 때에도 그는 분명 성질을 부리고 있었다.





다시 시간을 훌쩍 뛰어 넘어서, 1993년. 스물 네 살의 나이로 MBC 개그 콘테스트로 데뷔한 그의 초창기 커리어는 암울하다. 때는 부담없고 예의바른 이들이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 동기 중에는 엘리트 콤비였던 서경석, 이윤석이 만담 개그의 맥을 이으며 대중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고, 옆 방송사에서는 박수홍이나 신동엽처럼 반듯한 외모의 청년들이 시청자들에게 어필하고 있었다. 완력의 상징 강호동마저도 어린아이 분장을 하고 해맑게 뛰어다니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조르던 때였고, 독한 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이영자 역시 그 시절엔 자신의 살덩이를 부여잡고 뒹굴면서 자학성 개그를 구사했었다. 어디 그 뿐인가. 성질 개그로는 가히 원조격이라 불리는 이경규 역시 그 시절만 하더라도 까불거리며 사람들을 속일지언정 정중하고 매너있는 신사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갔었다. 예의바른 개그가 득세하는 시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시절에 박음질 덜 된 쌍꺼풀을 들이밀며 성질을 냈던 그는,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시청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개인기라고 밀었던 이승철 모창과 엄기영, 서세원 성대모사는 어딘가 2%정도 모자랐었고, 복없이 생긴 외모에 아무리 봐도 바보스러워 보였던 그가 이렇게 성공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최양락이 MBC로 옮겨와 <코메디 하우스>를 진행하던 시절 이회창 성대모사를 구사하며 인기를 얻기도 했고, 2집 타이틀곡 <바다의 왕자>로 가수로서의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지만, 그는 언제나 대중의 관심에서 한 뼘 정도 멀리 있었다. 기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바다의 왕자>는 그에게 이경규의 <복수혈전>과 같은 존재였다. 본인이 얼마나 프라이드를 느끼는가와는 전혀 관계 없이 내내 웃음거리가 되어 인구에 회자되는 인생의 오점 말이다. 물론 개그맨이 남들을 웃길 무기가 하나 더 생긴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개그맨은 웃기는 사람이지 우스운 사람이 되어선 안 되는 거 아닌가. 박명수가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서 승부를 본다거나 쇼를 진행한다거나 하는 일은 좀처럼 없었고, 그의 커리어는 그렇게 비웃음거리 만년 패널로 지는 것만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KBS <개그콘서트>의 등장과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등장으로 공개 코메디의 시대가 도래해버렸다. 종종 조혜련의 ‘골룸’이라거나 배칠수, 김학도, 김미진 라인업으로 화려하게 이어지는 최양락 사단의 10분 토론이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차츰 MBC 코메디의 시대는 저물어갔다. 시효가 지난 스튜디오 꽁트에 웃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심지어 방청객까지도 좀처럼 웃지 않았는데, 집에 앉아 TV를 보는 시청자들은 오죽했겠는가. TV를 바라보기가 면구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2004년, MBC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가 시작되었다. 한 때는 자신보다 인기가 없이 빌빌거리던 동생 유재석의 팀원으로 들어간 박명수는 그 프로그램에서 처절한 개그 감각으로 조롱거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 무렵 iMBC <놀러와> 게시판에 가본 적이 있는가? 검색어 ‘박명수’로 검색해보면 박명수를 퇴출시키라는 이야기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물론 이런 의견은 지금도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긴 하지만.) 박명수가 말하는 이야기엔 사람들이 좀처럼 웃지 않았고, <놀러와>에서 박명수의 포지션은 웃기는 포지션이 아니라 생뚱맞은 포지션으로 굳어졌다. 친구 조혜련이 오버액팅으로 분위기를 띄우고, 유재석이 물심양면으로 리액션을 던지며 박명수를 받쳐주었지만 박명수의 개그에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었다. 사람을 못 웃기는 개그맨만큼 초라한 것이 또 있을까. 심지어 새로 수혈된 젊은 피 노홍철에게도 밀리는 박명수는 점점 막장의 대명사로 굳어져만 갔다. 그리고 그 때, 박명수는 드디어 시대와의 불화를 정면 돌파한다. 다른 이들도 아닌 방청객에게 역정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놀러와>가 룰렛을 돌려서 나온 숫자를 넘기는 수의 방청객의 지지를 받아야 살아남는 포맷을 유지하던 때였다. 방청객들이 버튼을 눌러 재미있었노라 지지해줘야 하는데, 박명수가 꺼내는 이야기들은 좀 심할 정도로 재미가 없었다. 이야기를 할 기회라도 생기면 다행이지, 아예 룰렛이 벌칙을 가리키면 박명수는 입도 한번 못 떼보고 벌칙실로 들어가야 했다. 이게 쌓이고 쌓여서 방청객의 반응이 냉담의 극을 달리자 박명수는 급기야 방청객들을 야단치기 시작했다. ‘사람이 먹고 살려고 망가지는데 이렇게 안 도와주느냐’며 죽어가는 목소리로 호통을 치는 박명수는 사실 절박했었다. 그 절박함과 다급함에서 우러나온 역정이 돌파구였다. 세상 그 어떤 개그맨이 쇼를 방청하러 온 방청객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가. 그것도, 자기가 못 웃겨 놓고 안 웃기다고 하면 화를 내니, 상식적인 반응은 절대 아니지 않은가. 그 누구도 넘은 적 없는 금기를 박명수는 훌쩍 뛰어넘었다. 상식을 벗어난 그의 행동에 놀랍게도 방청객들은 환호하기 시작했다. 역정을 부리는 박명수를 보고 싶었던 것일까. 박명수의 이야기를 지지하는 방청객들의 수는 날로 줄어 급기야 한 자리 수까지 떨어졌고, 방청객들을 야단치고 역정을 부리는 박명수의 모습은 편집되지 않은 채 브라운관을 타고 바로 안방으로 전달되었다.




박명수의 역정에 대해 처음부터 모두가 환호했는가 하면 또 그건 아니었다. <놀러와> 게시판이 아주 난리가 났던 것이다. ‘방송에서 어떻게 저런 식으로 말하느냐’부터 시작해서, ‘박명수는 원래 성질이 더럽다’, ‘박명수, 유재석한테 묻어가는 것도 모자라서 남 욕 해가면서 떠야 하느냐’까지 온갖 비난이 난무했다. 하지만 박명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늘 높은 지지를 얻어내는 노홍철을 향해 ‘내가 너 꼭 반드시 죽인다. 언제까지 가나 보자. 근본 없는 놈’라고 시기어린 언사를 일삼고, 방청객들에게도 ‘오늘 무사히 집에 가고 싶지 않느냐’며 공중파 수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협박을 쏟아냈다. 하지만 박명수라고 해서 본인이 이렇게 뜨리라고 생각했을까. 참다가 참다가 성질을 버럭 부린 것 뿐인데 사람들이 왜 자기를 좋아하는 걸까 하고 초조해하진 않았을까. 대중처럼 변덕스러운 존재가 어디 또 있으랴. 좋아해주다가도 어느 순간 ‘재미없고 무례하기만 하다’고 내칠 수도 있는 게 대중 아닌가. 십 수년을 선배들의 자리를 치고 들어가지도 못 하고, 신인들보다 앞서 나가지도 못 한채 생계형 연예인으로 살아온 그로서는 갑자기 쏟아지는 환호가 퍽이나 놀랍고도 한편으론 불안했으리라.

하지만 이미 박명수에 앞서서 버럭 버럭 성질을 내는 것으로 사람을 웃기는 선례를 세운 캐릭터가 있다. MBC 코메디의 대부 이경규의 ‘위기의 중년’ 캐릭터가 바로 그것이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 – 대단한 도전> 에서 이경규는 이 캐릭터로 단단히 재미를 본 바 있다. 건강은 점점 부실해지고,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의 공격은 받아쳐야겠고, 김용만과 함께 티격태격하면서 난장을 벌이는 등 나이에 걸맞지 않는 유치함으로 일관하던 이경규는 잔머리만 진화한 부실한 중년 캐릭터로 제 입지를 탄탄하게 구축했다. 그러고 보면 낯익지 않은가? 부실한 육신도 그렇거니와, 나이를 앞세워 소리를 지르고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온갖 억지를 부리고, 만고에 놀림거리가 된 커리어의 오점이 있으며(<복수혈전>/<바다의 왕자>), 툭하면 자기 위주로 편집해줄 것을 요구하고 조금만 힘이 들어도 쉬었다 가자, 방송이 이러면 안 된다는 둥 날방을 외치는. 그렇다. 박명수는 이경규의 ‘위기의 중년’ 캐릭터를 그 누구보다도 효과적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그것도 자기 식으로 변주해서 말이다. (이로서 이경규 글에서 말했던 ‘호통 치는 것 외엔 닮은 것이 없다’ 고 했던 필자의 과오에 대해 정정한다. 독자 여러분들과 박명수씨, 박명수씨 팬들에게 모두 죄송하단 말씀 드린다.)




이경규야 아무리 이빨 빠진 호랑이 흉내를 내더라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MBC 예능의 터줏대감이지만, 박명수는 호통 이전의 모든 커리어가 비웃음거리이지 않은가. 이경규는 그 캐릭터와 자연인 이경규를 분리할 수 있지만, 박명수는 자연인 박명수와 캐릭터가 거의 혼연일체이다. 당장 자기 커리어 관리가 급한 박명수가 ‘내가 너 죽일거야! 새벽 4시 뉴스 하고 싶어? 내가 MBC 사장님께 말해서 새벽 4시 뉴스 만든다!’라고 협박한다고 해서 누가 겁을 먹겠는가. 본인이 적극 활용을 한 건지 아니면 기가 막히게 운이 좋았던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점조차 박명수에게 득으로 작용한다. 박명수의 독설이 날로 신랄해질지언정 아무도 박명수의 그런 말에 심각하게 다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못하는 허장성세. 박명수 본인의 울렁증과 만성피로조차 이에 절묘하게 도움이 되는데, 버럭버럭 성질을 내다가도 상대가 더 세게 나오면 양손을 초조하게 만지작거리며 우물쭈물 꼬리를 내리고 마는 모습은 성질만 남은 중년의 루저 캐릭터를 더욱 견고하게 했다.

더군다나 이 작고 초라한 중년 남자의 관심사는 팍팍한 세상살이에 지친 장삼이사의 우리들의 그것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 한 때나마 정선희에게 마음이 있었노라 고백하는 자리에서도 ‘그 때 집 평수는 몇 평인지, 집에 빚은 없는지’를 물어놨노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가 하면, <무한도전> 멤버들 모두가 베일 속에 가려진 앵커 마봉춘의 외모를 상상하며 온갖 수사를 동원해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을 거라고 떠드는 가운데 홀로 ‘집안이 좋아’라고 말한다. 당장에 내 입에 붙일 오늘의 한 끼를 걱정하고 내 주머니에 넣을 동전 한 닢이 더 급한, 극에 달한 현실적인 사고방식은 털털한 수준을 넘어 거의 자포자기 수준의 솔직함이 아닌가. 이는 박명수가 오랫동안 생계형 연예인이었던 탓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는 데뷔 때부터 그다지 윤택하다 할 순 없을 집안의 생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 환갑잔치에서부터 밤무대까지 가리지 않고 뛰었다. 오랜 시간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했던 자의 고단함과 자부심이 온 몸에 밴 박명수는 방송에서 거침없이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다.

위선도 가식도 없이 욕망에 솔직하며, 강한 사람 앞에서 움츠러들고 약한 사람 앞에서 역정을 내고 잘난 척 하는, 남은 건 성질 밖에 없는 중년. 시청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박명수에게 감정이입을 하기 시작했다. 잘 나고 예의바른 선남선녀들이 등장해 칭찬 일색의 자막과 함께 연애놀음 하는 것 구경도 하루 이틀이지, 단 것도 너무 오래 먹으면 질린다고 시청자들은 지난 몇 년간 버라이어티계를 장악하던 메이저리거들의 파티에 진력을 냈다. 바야흐로 <무한도전>으로 대표되는, 루저들의 마이너리그가 대세로 떠오르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렇게 시청자들은 차츰 어딘가 나와 닮은 것 같기도 한, 머리숱 없는 중년의 루저에게 환호하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주먹을 든 채 볼멘 소리로 ‘우씨!’ 라 외치며 성질을 부리던 생계형 예능인 박명수는 비로소 오랜 시대와의 불화를 청산하고 드디어 대중들의 레이더 한 가운데에 입성했다. 거성의 길을 향한 첫 발을 뗀 것이다.





(2부에서 계속)

정리 | tintin
출처 : 사용자 삽입 이미지

Dr.kchris

Hello, I'm Dr.kchris, a neuroscience researcher. I love studying and trying new things and also love challenging myself. Have a great d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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