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롱런을 바라며 건내는 네 가지 조언 – 강유미


2006년도를 가장 기쁘게 마감한 개그맨/예능인은 누가 있을까? 오랜 세월의 고생 끝에 최우수상을 수상한 박명수도 그렇고, 연애와 2년 연속 대상 수상의 겹경사를 안은 유재석도 있을 것이다. 수많은 안티들과 ‘쟤는 더 이상 안된다’는 말들의 잔치 속에서도 끝내 ‘형님뉴스’와 ‘마빡이’로 대상/최우수상을 수상한 강성범과 정종철도 돌아보면 가슴 벅찬 한 해였을 것이다. 데뷔 첫 해에 인기상과 신인상을 수상하고 대상 후보까지 오른 김미려도 빼놓아선 안된다. 하지만 역시 뒤돌아봤을 때 가장 행복했을 사람은 강유미가 아닐까. ‘고고 예술속으로’, ‘사랑의 카운슬러’, ‘봉숭아 학당’의 강기자 캐릭터까지 연타석 홈런을 날리는데 성공한 것도 모자라 주말 드라마 <소문난 칠공주>를 통해 원래 꿈이었다던 연기 영역까지 진출했고, 단짝 안영미와 함께 영화 대본작업에 참여함으로써 영화감독의 꿈에도 한발짝 가까이 다가간 사람. 더 부러운 것은 이 모든 일이 올 한 해 동안 축복처럼 쏟아져 내렸다는 것이다. 이번 칼럼에선 코메디부문 우수상을 수상하며 한해를 화려하게 마감한 강유미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그녀의 저력에 대해서. 그리고 조금은 말하기 껄끄럽겠지만, 혹시라도 그녀의 승승장구에 제동을 걸지도 모를 그녀의 취약점에 대해서도.



루키, 무섭게 홈런을 날리다.

2002년 KBS의 <한반도유머총집합>을 통해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예능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녀가 자신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선명하게 각인시켰던 코너는 아마 KBS 2TV <폭소클럽>의 ‘록기&루키’였을 것이다. KBS 신인 개그맨들을 시청자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코너였던 ‘록기&루키’는 ‘마른인간 연구소’의 유민상, ‘3.6.9’의 장동민, 유상무, <진실게임>을 통해서 이미 폭발적인 반응을 모은 바 있던 미국식 스탠드 코메디의 달인 삐에르 곽 등을 소개한 걸출한 코너였다. 이미 ‘여자 이야기’로 제법 오래 안방극장을 두들겼지만 마땅한 반응이 없었던 강유미는 동기 안영미와 팀을 이뤄 ‘영미&유미’라는 이름으로 도전했다. 이 팀이 선보인 ‘와우, 신선한데요!’ 라는 꽁트는 훗날 이 콤비가 선보이게 되는 ‘고고 예술속으로’와 비슷한데, 드라마 속의 식상한 장면들을 뒤집어서 ‘이런 상황이면 어떨까요? 정말 신선하죠?’라고 외치며 한껏 비아냥거리는 꽁트였다. 객석의 반응은 뜨거웠다. 마침 ‘한국 드라마 속 뻔한 장면들’이라는 게시물들이 인터넷을 떠돌던 때였고, 연기력이 출중한 두 사람 – 강유미는 정극연기와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아직도 가지고 있고, 안영미는 원래 코메디언이 아니라 탤런트로 데뷔하려고 했다고 한다 – 이 직접 보여주는 장면들에 시청자는 폭소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폭소클럽> 출신 예능인들이 앞서 그랬던 것처럼 마침내 정통 코메디 프로그램의 메이저리그, <개그콘서트>에 입성하기에 이른다.




강유미와 안영미가 내세웠던 코너 ‘고고 예술속으로’는 각종 대중예술 – 영화, 드라마, 출판만화, 애니메이션, 뉴스, 추적프로그램, 외화, 트레일러, 악극, 뮤지컬, CF, 홈쇼핑, 심지어 북한 선전영화까지!! – 들의 공식에 맞춰서 일상의 상황들을 비트는 컨셉의 코너였다. ‘와우, 신선한데요!’에서 ‘쟤는 이름이 뭐지’라고 생각했던 시청자들은 이 코너를 통해서 비로소 ‘아, 강유미 안영미구나’라고 이름을 외우게 되었다. 고상한 클래식 음악에 맞춰 발레(를 흉내낸 몸부림에 가까운 막춤) 동작과 함께 등장해, 뻔뻔스레 ‘종합예술인’ 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와 표정 하나 안 바꾸고 천연덕스레 장르 공식을 비트는 이 코너는 금방 <개그콘서트>의 최고 인기코너의 반열에 올랐다. 생각해보면 선보이자마자 흐지부지 사라지는 코너들이 또 얼마나 많은가. 편집에서 잘려나가 띄엄띄엄만 보여지는 코너들도 부지기수지 않은가. 그에 비하면, ‘여자 개그맨은 크게 대성하기 어렵다’, 혹은 ‘여자들끼리만 짠 코너는 오래 가지 못한다’는 통념에 굴하지 않고 최고 인기 코너의 자리를 거의 1년 가까이 꿰차고 군림하던 ‘고고 예술속으로’는 시청자들의 머리 속에 두 사람의 저력을 강하게 어필한 코너였다. 비록 데뷔 후 정식으로 KBS 공채 19기 개그맨이 되기까지 어렵고 힘든 시간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번에 MBC 연예대상 코메디/시트콤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정성호가 8년의 시간을 무명으로 버텼던 것을 생각해보면 (잘 기억해보라! 정성호가 처음으로 등장했던 코너는 무려 ‘울엄마’였다!! 필자의 기억에는 정성호가 김샘 김진수의 자리를 위협하는 남자로 나왔던 장면이 선명하다.) 강유미의 무명기간은 거의 없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진지한 연기, 섬세한 관찰력.

‘고고 예술속으로’에 시청자들이 열광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로 거의 정극 수준에 가까운 두 사람의 진지한 연기의 공이 크다. 80년대 CF를 재현해내며 듣고 있기 낯뜨거울 정도로 유치찬란한 광고 멘트를 진지한 바리톤 음색으로 읊는 강유미와 방긋거리며 뛰어다니는 안영미의 모습이 웃기는 이유는 두 사람이 한없이 진지하게 주어진 상황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어설픈 흉내에 그치는 코메디는 보는 사람들에게 짜증을 불러 오지만, 진지한 연기가 바탕이 되는 코메디는 언제나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기 마련이다. (이 점은 ‘울엄마’에서 경석엄마 조혜련과 김선생 김진수의 키스신을 보며 가슴이 짠하게 아렸던 경험을 가진 필자 또래의 분들이라면 아마 다들 공감하시리라.) 또 하나의 강점은 장르의 공식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사람들이 웃는 점을 알고 있다는 점에 있다. KBS 애니메이션 <TV동화 행복한 세상>을 패러디하면서 강유미와 안영미는 마치 동화 속 주인공 같은 선량한 목소리로 ‘이 녀석, 너도 싹수가 노랗구나’, ‘아버님, 누가 일제 앞잡이 집안 아니랄까봐 신고정신도 투철하시네요’ 따위의 험악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내뱉는다. 뉴스를 패러디하면서 가래 끓는 목소리를 탓하며 ‘담배 끊어야겠어’라고 중얼거리는 안영미, 소년만화 속의 열혈 주인공을 흉내내며 머리 뒤에 집중선을 그려넣는 강유미는 장르의 공식을 어떻게 비틀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의 ‘디테일을 잡아내는 관찰력’은 여기서 한껏 발휘된다. 한국에서도 뜨거운 인기를 얻었던 <긴급구조 911>의 성우연기를 고스란히 캐치해서 선보이기 위해 이들은 얼마나 오래 프로그램을 돌려보며 연구를 했을까. 손동작, 눈빛, 표정과 어조까지 하나 하나 섬세하게 재연해내는 두 사람은 장르의 공식을 ‘비틀기’ 위해 우선 장르의 공식이 ‘무엇인가’를 먼저 파악해야 했을 것이다.





최고의 자리에서 군림했던 콤비도 결국 소재의 한계를 느꼈던 것일까. 스스로도 ‘안 웃겨서 그만 뒀다’고 이야기한 강유미는 ‘고고 예술속으로’의 막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물론 <9시 뉴스라인>과 <TV동화 행복한 세상> 시리즈, 그리고 막바지에 선보였던 황우석 패러디까지 아직 사람들을 웃기는 것에선 둘째 가라면 서러울 코너였지만 자신의 코너가 자꾸 편집되고 사람들이 예전만큼 웃지 않으면 예능인으로서 그것만큼 자존심 상하는 일이 어디 있을까. <폭소클럽> 시절까지 더하면 근 2년간을 콤비로 활동해온 안영미와의 호흡은 아직 건재했지만, ‘2년이나 같이 해서 그림이 식상할까봐’ 하는 생각에 두 사람은 각자 활동하기 시작한다.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던 콤비 안영미의 자리를 대체할 파트너는 누구였을까? 바로 ‘봉숭아학당’의 복학생 캐릭터와 ‘장난하냐’, ‘착한 사람만 보여요’ 등의 코너를 통해 다양한 캐릭터를 너끈히 소화해낼 수 있음을 온 몸으로 증명해 낸 사내, 유세윤이다.

유세윤과 강유미가 애슐리 심슨의 <LOLOLOLOVE>에 맞춰 춤을 추면서 나와 거친 숨소리를 헐떡거리며 끈적한 대사를 주고 받던 첫 화에서부터 이미 관객들은 웃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예전에 웃음으로 홈런포를 날린 바 있는 두 사람이 세트로 나오는데 기대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유세윤과 강유미 두 사람의 연기력을 번갈아가며 볼 수 있었던 첫 화 ‘CF모델과 결혼한 여자 / 내숭이 전혀 없는 여자’ 편은 일요일 밤을 화려하게 수놓고도 모자라, 돌아온 월요일 모든 이들의 대화 주제가 되었다. 사람들 사이에선 ‘너 사랑의 카운슬러 봤냐’가 인사말이 되었고 인터넷 포탈에는 그 코너만 잘라낸 동영상들이 넘실대기 시작했다. 연타석 홈런에 성공한 것이다. 이 코너의 비결 역시 ‘고고 예술 속으로’의 성공비결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연기자 두 명이 등장해 갖가지 상황을 가정하고 꽁트 속으로 들어가 다양한 직종과 성격의 사람들의 특징을 집어내 천연덕스레 풀어내는 동안 ‘맞아 맞아’하며 박수치고 웃는 것이 이 코너의 인기비결이다. 특히나 두 사람이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연기해낸 ‘아주 오래된 연인’의 경우 그 소름끼치는 디테일에 수많은 네티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덥고 끈적거리까 스킨쉽은 하지 말고 입술만 대고 뽀뽀하자’는 오래된 연인들의 무덤덤한 대화는 아주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복 터진 사람. 질투나는 사람.

비록 경력의 굽이굽이를 화려한 트로피들로 수놓지는 않았지만, 길지 않은 그녀의 커리어는 더할 나위없이 훌륭한 파트너들과의 찰떡호흡을 자랑하며 누구나 부러워할 법한 내용들로 채워지고 있다. 요즘 코메디언들 중에선 연기력으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안영미, 유세윤과 차례로 호흡을 맞추며 연타석 홈런을 날리는가 하면, 단짝 안영미와의 영화 대본감수 작업을 통해 영화감독의 꿈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었고, 비록 공동 주연에 발탁되었던 MBC 4부작 특집극이 무산되는 아픔을 겪긴 했지만, 시청률 40%대를 넘나들며 절정의 인기를 구가한 – 그렇지만 필자 개인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불쾌함을 산 – KBS 주말드라마 <소문난 칠공주> 후반부에 투입돼 감초 연기를 선보이면서 배우로서의 꿈의 첫발을 떼었다. (안영미도 연기를 시작했다. MBC 드라마넷의 자체 제작 시트콤 <빌리진 날봐요>에서의 배역이 감초연기 이상을 필요로 하는 배역인지는 미지수지만, 시작이 과히 나쁘지 않다. 본디 탤런트가 꿈이었다던 그녀의 도전도 부디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기를 바란다.) 문영남 작가가 강유미의 팬을 자처하며 강유미의 출연을 강하게 고집했다고 했던가. 강유미는 본인의 주특기인 ‘모사’를 <소문난 칠공주>에서도 유감없이 뽐냈다.

‘짭퉁 미칠이’ 안공주 역할을 맡으며 강유미가 선보인 연기는 사실 본인만의 독립적인 캐릭터 연기라기보단 미칠이 최정원의 연기에 대한 충실한 모사에 가까웠고, 비록 ‘이게 드라마인지 시트콤인지 구분이 안간다’는 불평섞인 반응들이 있었지만 본디 모사의 달인이었던 그녀는 드라마의 종영까지 큰 위화감 없이 제 몫을 수행했다. 그리고 그 보답으로 강유미는 연예대상 우수상을 받는 자리에서 같은 작품에서 공연했던 대선배 윤미라에게 애정어린 포옹을 받았다. 코메디언/예능인 출신 배우들이 연기력으로 칭찬받는 일이 아주 드문 일은 아니지만, 첫 작품에서부터 선배의 칭찬과 옹호를 받으며 출발하는 일은 역시나 주목할 만한 일이다.





조언 하나 – 본인만의 ‘오리지널’을 더 개발하라

이렇게 잘 나가는 강유미를 볼 때마다 필자는 밀려오는 각양각색의 감정들을 주체할 수 없다. 뜨거운 애정과 넘실대는 찬탄, 슬며시 고개를 드는 질투. 하지만 요즘 들어 가장 강하게 드는 감정은 ‘불안함’이다. 사실 그 불안함이 필자로 하여금 이 글을 쓰도록 만들었다. 이 코너 첫 머릿글에도 말했던 것처럼, 그 중에서도 개그맨/예능인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외줄 위에서 저글링을 하고 재주넘기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려운 일이다. 잘 나가던 예능인들이 정상에서 슬럼프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눈깜짝할 사이다. 스타가 되기를 꿈꾸는 무서운 신인들은 도처에 깔려 있고, UCC시대의 도래로 굳이 개그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아도 안방에 앉아서 전국의 네티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방법은 널리고 널렸다. 정성호나 오랜 무명의 시기를 거친 유재석처럼 데뷔 후 자신의 존재증명을 할 날만을 노리며 호흡을 고르고 있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잠시 삐끗한 사이 그 자리를 치고 올라올 사람들이 부지기수라는 소리다. 예능인들 중 슬럼프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몇이나 되랴. 필자가 보기엔 강유미가 정상에 서 있는 바로 지금이 그녀가 빠질지도 모르는 슬럼프에 대한 경고를 하기에 가장 적당한 때로 보인다.

강유미는 섬세한 관찰력과 뛰어난 연기력을 토대로 지금의 명성과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그녀를 ‘천부적인 순발력의 소유자’라고 부르기엔 미심쩍은 부분들이 있다. 실제로 ‘고고 예술속으로’나 ‘사랑의 카운슬러’도 코너 종반에 갈수록 점점 편집에서 들려나가는 분량이 늘어났거나, 늘어나고 있다. 코너 자체의 성격이 기본적으로 기존 장르에 대한 패러디나 특정 직업/성격의 소유자들에 대한 캐리커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보니 매너리즘에 빠지는 주기가 빨리 찾아오는 감이 없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물론 그녀의 모사 연기는 보는 이들의 말문을 막히게 할 정도로 훌륭하지만, 정작 그녀만의 오리지널 캐릭터는 흐릿하지 않은가? 물론 모든 코메디 연기가 모사를 기반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강기자 캐릭터가 그녀의 오리지널 캐릭터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되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외에 그녀가 보유한 오리지널 캐릭터들을 둘러보자. ‘독창적으로 살아 이 자식아!’를 외치던 ‘마이걸’이나, 남자 같은 성격과 외모라는 전형적인 설정으로 밀어부치던 ‘신 동작그만’에서 강유미는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결국 그녀의 강점인 모사와 캐리커처를 제하고 나면 내세울 카드가 애매해진다.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는 유세윤이 보유하고 있는 캐릭터의 다양함을 생각해보면 강유미가 새로운 캐릭터를 개발해야 한다는 생각은 더욱 절실해진다.




어떤 분들은 ‘앞으로도 꾸준히 그 방면으로 파면 되지 무슨 걱정이냐’고 되물으실 것이다. 하지만 코메디에는 주기가 있다. <개그콘서트> 같은 공개방송 코메디 역시 20-30여년 전 인기를 끌었다가 어느 순간 역사의 뒤켠으로 사라졌던 적이 있었고,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던 실내 녹화 형식의 코메디도 <헤이헤이헤이>나 <황금어장>의 포맷을 통해서 다시 안방극장을 두들기고 있다. 시사 코메디의 시대가 있었고, 슬랩스틱 코메디의 시대가 있었으며, 코메디 방면에서 가장 전방위적인 실험을 하고 있는 KBS 예능국이 <타짱>을 통해 선보이고 있는 가면 코메디와 얼굴에 생크림을 뒤집어 쓰는 가학 코메디의 시대도 분명 우리 앞을 적어도 두세 차례 지난 바 있다. 과연 강유미는 본인 스타일의 코메디가 시류에서 멀어져간 후에도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그렇게 생각하고 말 일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이미 강유미는 흡사한 컨셉의 코너를 세 개나 연달아 선보였다. ‘와우, 신선한데요!’와 ‘고고 예술 속으로’, ‘사랑의 카운슬러’까지. 모두 정색하고 인사하면서 등장해서 특정한 상황에 대해 진행자처럼 상세히 설명을 깔아놓고, 슬며시 연기자가 되어 꽁트 속에 들어가 연기를 펼치고는 다시 한 발 물러나 연기자의 입장이 되어 자신의 연기에 대한 촌평을 날리는 식의 코너를 세 편이나 선보였다. 슬슬 식상하다는 의견이 고개를 내미는 지금이 바로 그녀의 변신이 필요한 순간이다. 본인이 인정했던 바 있듯, 그녀는 내세울 개인기 하나 없이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박준형은 고비에 몰리면 무를 갈면 되고, 정선희는 고비에 몰렸을 때 딱따구리 흉내라도 내면 된다고 하지만, 강유미가 고비에 몰렸을 때 내세울 카드는 무엇인가?



조언 둘 – 진지하게 연기를 생각한다면 시련의 시기를 각오하라.

그녀는 앞으로도 코메디와 연기를 병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은 그냥 해보는 소리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필자는 경망스럽게도 걱정이 앞선다. 물론 발군의 연기를 선보인 바 있지만 예능인이 한 명의 연기자로서 인정받는 일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경실이 <사랑과 야망>에서의 연기로 칭찬을 받았을 때 필자는 ‘참 새삼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이경실의 연기력이 빛나기 시작했던 것은 90년대 초반 MBC 인기드라마였던 <파일럿>에서부터였기 때문이다. 그때도 이경실의 연기력은 평단의 칭찬을 받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이경실이 한 명의 진지한 연기자로서 인정받기까지는 얼추 10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이경실이 <사랑과 야망>에서 인정받기 직전 맡았던 캐릭터는 <불량주부>의 우스꽝스러운 부녀회장 캐릭터였다.





이처럼, 예능인 출신 배우들이 진지하고 비중있는 역할을 맡아서 연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연기력하면 크게 뒤질 것도 없을 정준하가 <장길산>에 출연했을 때 시청자들은 진지한 연기를 하는 정준하를 끝내 못 미더워 했고, 결국 종영에 이를 때까지 정준하는 좋은 소리 한번 들어본 적이 없었다. (최근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이순재 선생의 칭찬을 들었다고 한다. 정준하가 그간의 마음고생을 조금이라도 씻었으면 좋겠다.) 김영철은 <부모님 전상서>에서 김수현 선생의 칭찬을 들어가며 자기 몫을 챙기는데 성공했지만, 그 이후에 뚜렷하게 연기자로서의 행보를 이어나가는 데는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MBC 출신 개그우먼 중 최고의 연기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김효진을 보라. 연기를 위해 본업을 일부 접기까지 했지만 결국 그녀에게 돌아가는 배역은 억척스러운 주인공 친구 역할이 전부가 아닌가. ‘안성댁’ 박희진은 어떤가? <달콤한 스파이>에서 최불암과 호흡을 맞췄던 김준호는 어떤가? 필자가 또 다른 예를 더 들어야 하겠는가? 이것이 그들의 정극연기 실력이 모자라기 때문만이라고 말하는 건 불공평하다. 이런 현상의 기저엔 한국에서 유달리 더 심한, 예능인들에 대한 천대와 무시가 어느 정도 깔려있는 것이다. 임하룡이나 이경실과 같은 성공 사례가 그렇게 많은 것이 아니다.




물론 강유미는 발군의 연기력으로 이런 상황을 잘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자칫 균형잡기에 실패하고 나면 본업인 코메디의 무대로 돌아가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오랜 외도 끝에 한동안 설 무대가 없어서 힘든 시간을 겪어야 했던 정준하나, ‘나 다시 개그할 테니까 좀 출연시켜달라구요’ 라고 자조적인 개그를 던지는 김효진을 돌이켜보면 새삼스레 다시금 가슴이 아프다. 그 가슴아픈 모습을 강유미에게서도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것이 내 솔직한 바람이다. 강유미가 진실로 진지한 연기자가 되고 싶다면 이 점을 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할 것이다.



조언 셋 – 버라이어티에서 적응할 수 있겠는가?

또 한 가지. 정선희가 험난한 버라이어티계에서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니라 그녀의 장기가 예술의 경지에 오른 말재간이기 때문이었다. 쏜살같이 말을 주고 받고 티격태격하면서도 남의 몫을 배려해야 하고 자신의 몫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정글 같은 버라이어티계에서 강유미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와이드 연예뉴스> 등과 같이 주어진 몫이 정해져 있는 안전한 프로에서 보여주는 모습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다. 물론 ‘평생 코메디만 하겠다’는 정종철이나, ‘마빡이’에서 재담을 담당하며 사실상 코너를 함께 견인하고 있는 김시덕처럼 꾸준히 정통 코메디만 하면서 커리어를 이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모두 아는 것처럼, 그것은 벌이가 그다지 좋지 않다. 정통 코메디만 하면서도 충분히 인기있을 사람들이 왜 꾸준히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문을 두들기고, 나와서 제대로 된 인상 한번 박지 못하면서도 패널으로라도 출연하고 싶어하겠는가? 아직까지 우리나라 현실에선 정통 코메디’만’ 고집했을 때 거둘 수 있는 수익이라는 것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그 점은 강유미 본인도 잘 알 것이다. 실제로 많은 예능인들이 인기나 유명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별 볼일 없는 월급을 받으며 일주일 내내 대학로 소극장 공연을 병행하고 있다. 오죽하면 박준형이 본인회사 ‘갈갈이 패밀리’를 차린 이유가 ‘친구들 후배들 돈 걱정없이 코메디 하라고’ 였겠는가. 결국은 활동 영역을 전방위로 넓히기 위해서, 생계를 위해서, 장기적인 전망을 위해서는 언젠가는 강유미도 버라이어티계로의 진출을 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미 ‘스펀지’를 통해 진출을 시도했던 바 있다. 결과는 다 짐작하시겠지만, 썩 좋지 않았던 듯 싶다. 박준형도 버라이어티쇼로의 진출을 타진해봤지만 큰 수확이 없었고, 함께 공연하고 있는 유세윤 역시 MBC 버라이어티로의 진출을 노려봤지만 실패였다. <개그콘서트>를 몇번이나 들었다 놓았다 했던 ‘고음불가’의 이수근이 지금 <해피투게더 프렌즈>에서 주목할 만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가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나마 <개그콘서트> 출신 중 가장 빠르게 버라이어티에 적응한 정형돈 역시 근래에 재기의 희망을 보여주기 전까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위기상황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슬럼프를 겪어야 했다.

정통 코메디에서 잔뼈가 굵은 것이 버라이어티로 가는 황금티켓을 주지는 않는다. 어차피 언젠가 진출을 노려야 할 분야라면, 강유미 역시 만반의 준비를 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네몫 내몫이 따로 없는 버라이어티계로의 적응은 ‘차차 겪어가면서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분야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그녀는 <스펀지>로의 시도에서 맛봤던 씁쓸함을 다시 맛보게 될지도 모른다.



조언 넷 – 영화를 하고 싶다고?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점은, 새삼스레 들추기도 조심스러운 문제다. 서세원이 <납자루떼>로 짊어져야 했던 온갖 비웃음. 인생의 오점으로 낙인찍힌 이경규의 <복수혈전>. 신지식인에서 졸지에 사기꾼으로 대접이 바뀌었던 심형래의 <용가리> 등, 예능인 선배들이 만들었던 많은 영화들을 돌이켜봤을 때 한국에서 아직 성공한 ‘예능인 출신 감독’은 없는 것 같다.





서세원의 인생을 잠시 흔들리게 했던 문제의 영화 <납자루떼>


영화 자체의 질의 문제도 ‘절대로’ 무시할 수 없겠지만, 아무래도 웃기던 사람들이 나와서 진지하게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해도 관객들이 그걸 그렇게 받아들여줄 것인가 하는 문제도 무시해선 안 될 것이다. (지금 보면 유치하기 그지없지만, 당시 만들어지던 유사 홍콩영화들을 나란히 줄세워놓고 비교했을 때 <복수혈전>이 유달리 더 모양새가 처진다거나 유치한가 하면 그건 절대로 아니다.) 물론 강유미는 직장생활을 할 때도 영화작법에 대한 책을 구석에 숨겨놓고 읽던 영화학도였고, 학창시절 때도 입만 열면 할리우드 이야기 뿐이었던 시네키드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렇다면 이경규의 영화에 대한 애정이 강유미의 영화에 대한 애정에 뒤진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경규의 개그인생을 심각하게 위협했던 영화 <복수혈전>


결국 두번째와 일맥상통하는 이야기겠지만, 출발을 예능인으로 끊었다면 결국 그 사람이 훗날 어디서 무엇을 하건 간에 사람들은 그 사람에게서 ‘웃기는 것’을 기대하게 될 것이다. 특히나 한국 사람들은 지나가다가 개그맨을 만나면 은근히 마음 한 구석에서부터 그 자리에서 웃겨주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다. 술자리에서 ‘한번만 웃겨봐’ 라고 시비를 거는 취객들을 만났다는 이야기는 예능인들의 주된 푸념 아닌가. 심지어는, 당시엔 예능인도 아니었던 신정환마저 군대 내무반에서 자다가 말고 선배가 ‘한번 해봐’ 라고 시키면 각기춤을 춰야 했던 판에 사람 웃기는 것이 직업인 강유미가 진지한 영화를 만들어 제대로 된 평가를 받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코메디 영화도 마찬가지다. ‘웃기는 놈이 만들었으니 얼마나 웃기겠어’ 라고 생각하는 관객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킬 수 있겠는가. 예능인들이 손꼽아서 말하는 ‘가장 웃기기 어려운 관객’이 다름 아니라 팔짱끼고 ‘자, 난 준비됐으니까 어서 어디 한번 나를 웃겨봐’라고 각잡고 앉은 관객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러니 영화감독의 꿈 역시 꼭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감독은 쉬운 일이 아니고, 그렇다면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해가 바뀌며 그녀는 한국 나이로 스물 다섯이 되었고, 서서히 준비하기에 아주 이른 시기는 아닌 듯 싶다.



그녀의 롱런을 다시금 기원하며

쓴소리가 너무 길었다. 예상했던 원고량의 두배를 써내려 가면서 필자는 너무 쓴소리만 해댄 것은 아닌가, 잘 하고 있는 사람에게서 없는 약점을 만들어내서 꼬집은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또 다시 시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모든 쓴소리와 충고들이 사실은 다 그녀를 조금이라도 더 자주, 오래, 많이 많이 만나고 싶은 필자의 욕심과 애정에서 나온 것임을 독자 여러분들께서, 또 강유미 본인이 잘 살펴주시길 바란다. 애정을 가진 대상이 힘든 일없이, 거침없이 순탄하게 성공가도를 달리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어떤 인터뷰에선가 그녀는 박미선이나 김미화, 이경실 같은 대선배들을 꼽으며 ‘선배들처럼 오래 장수하는 여자 코메디언이 되고 싶다’고 말한바 있다. 지금의 강유미를 사랑하는 모든 시청자들의 바람도 그것일 것이다. 나는 나아가 그녀가 만든 영화를 기꺼운 마음으로 보러 가고 싶다. 그녀가 선보이는 새로운 캐릭터를 보고 지금처럼 배를 잡고 땅바닥을 뒹굴고 싶고, 그녀가 진지한 연기를 선보일 땐 같이 마음이 흔들리고 눈시울이 붉어졌으면 좋겠다. 이렇게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욕심이 많다. 욕심이 너무 많아서 탈이고 바라는 것이 너무 많아서 탈이다. 새해 시작부터 너무 무리한 요구들일 수는 있겠지만, 부디 그녀가 오래 오래 이루고자 하는 것들을 다 순탄하게 이루는데 성공했으면 싶다. 이렇게 그녀에게 거는 기대가 크고도 많은 사람이 비단 필자 뿐인가? 필자는 강유미가 새삼 다시 부럽다. 오늘의 그녀에겐 이렇게 자신을 걱정하고 챙기고 싶은 사람이 넘치고 넘치니 말이다.












건강 상의 문제로 지난 호는 백가쟁명 예인열전을 한 회 쉬었습니다. 게다가 이번 호는 해외에 나가있는 동안 마감을 진행하는데 한계가 있어서 해를 걸러서야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걱정해주신 분들, 재촉하고 채근해주신 분들께 모두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또 한 가지 조금은 송구스러울 만한 일이 있습니다. ‘백가쟁명 예인열전’과 비슷한 컨셉의 코너를 이르면 1월 10일부터 인터넷 서점 YES24( www.yes24.com )의 문화웹진 ‘채널예스’ 에서 ‘땡땡의 요주의 인물’ 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진행하게 될 예정입니다. 워낙 빠른 시간에 결정된 일이라 저 역시도 아직까지 실감이 나지 않고 얼얼합니다. 여러분께 진작에 말씀 못드려 죄송하고, 지금 쓰고 있는 코너도 건사 못하면서 일만 크게 벌리는 듯해 민망합니다. 사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얘가 이거 하느라고 CQ에 소홀하구나, 돈 받고 쓰는 글에만 전념하는 거구나’ 하는 소리를 듣게 될까 하는 겁니다. 나태해질 때마다, 글을 쓰기 어려워질 때마다 늘 그런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다잡게 됩니다. 충실하고 성의있는 글, CQ에 보내주신 분에 넘치는 애정과 성원에 보답하는 글을 쓰겠습니다. 늘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tintin 드림

 

Dr.kchris

Hello, I'm Dr.kchris, a neuroscience researcher. I love studying and trying new things and also love challenging myself. Have a great d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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